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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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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26g | 135*210*20mm
ISBN13 9788961092678
ISBN10 8961092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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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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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안중식
와세다대학원 석사 및 게이오대학원 박사 졸업.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만월의 밤, 모비 딕이》, 《비오는 날 돌고래들은》 외 다수가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키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그녀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내가 볼 것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도 알래스카에서도, 지중해에서도 남극해에서도,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웅대한 경치에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며, 어떤 아름다운 광경도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한다. 보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 내가 살아가는 것에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나와 함께 살아주지 않는다.
--- p.9

이상한 일이다. 같은 길도 혼자서 걸으면 길고 따분하게 느껴지는데, 둘이 이야기하면서 걸으면 언제까지라도 걸어가고 싶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잔뜩 넣은 가방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생각한 적이 있다. 혼자서 살아가는 인생은 길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느새 갈림길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 p.31

“자신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면 돼. 자신만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으면 돼. 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자신보다도 상대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 먹을 것이 조금밖에 없으면 나는 내 몫을 아키에게 주고 싶어. 가진 돈이 적다면 나보다 아키가 원하는 것을 사고 싶어. 아키가 맛있다고 생각하면 내 배가 부르고, 아키한테 기쁜 일은 나에게도 기쁜 일이야. 그게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 이상 소중한 것이 달리 뭐가 있겠어? 나는 떠오르지 않아. 자신의 안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을 발견한 인간은 노벨상을 받은 어떤 발견보다도 소중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해. 그걸 깨닫지 않으면, 깨달으려고 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는 편이 나아. 행성에든 뭐든 충돌해서 빨리 사라져버리는 편이 낫다고.”
--- p.74

“어느 쪽이 행복한 걸까?”
“뭐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하고, 다른 사람과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줄곧 생각하는 것하고.”
“그거야 함께 사는 쪽이지.”
“하지만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의 나쁜 점도 눈에 보이잖아. 하찮은 일로 싸우기도 하고. 그런 일이 매일 쌓이다 보면 처음엔 아무리 그 사람이 좋았더라도 몇십 년 후에는 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게 되지 않을까?”
확신에 찬 듯한 말투였다.
“꽤나 비관적이네.”
“사쿠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나라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거야. 지금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다고 하자. 10년 후에는 좀 더 좋아하게 될 거야. 마지막에는 싫었던 점까지 좋아하게 돼. 그리고 100년 후에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좋아하게 될 거라고.”
--- p.77~78

나는 길 위에서 발을 멈춘 채 한동안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여름방학에 둘이서 섬에 갔을 때에 보았던 적란운을 떠올렸다. 아키의 흰 피부와 건강한 육체는 모두 과거로 밀려나 버렸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뒤에서 울리는 자전거의 따르릉 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조금 전의 구름은 햇빛 때문에 조금 그늘이 깊어진 듯했다. 시간은 얼마나 급하고 비극적으로 흐르는가. 행복은 마치 시시각각으로 모습을 바꾸는 구름과도 같다. 금색으로 빛나거나 잿빛으로 가라앉거나 하면서 한시도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빛나는 시간도 그저 변덕쟁이처럼, 장난처럼,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린다.
--- p.135

“그때 여름을 기억해?”
바람이 불어서 꺼지려던 불씨가 다시 밝아지듯이 그녀는 말했다.
“작은 배로 바다를 떠돌던…….”
“기억하고 있어.”
아키는 입속으로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지만 더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버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깨진 유리 조각 같은 추억만 남기고 그녀가 가버리는구나.
머릿속 가득 새파란 여름 바다가 펼쳐졌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추억을 만지려고 하면 내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린다. 그대로 영원히 떠돌고 싶었다. 그리고 아키와 둘이서 바다의 반짝임이 되고 싶었다.
--- p.163

“인생에는 실현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할아버지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실현된 것이라면 인간은 금방 잊어버리지. 그런데 실현되지 않은 것은 언제까지고 소중하게 가슴속에서 키워간다. 꿈이나 동경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모두 그러한 것이지. 인생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실현되지 않은 일을 생각하기에 생겨나는 게 아닐까? 실현되지 않은 일이 있다 해도 아무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사실은 아름다움으로 이미 실현되어 있는 거란다.”
--- p.181~182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오랜 시간 찾지 못했던 물건이 어느 날 아침 문득 원래 두었던 장소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잃어버렸을 때보다 오히려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마치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소중하게 간직해두고 있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그녀의 마음도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까?
--- p.20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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