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신도 왕도 섬기지 않고 속세의 과학, 곧 천박한 기계 산업에만 열중하는 이 족속의 영향력은 얼마나 끔찍한가! 위험한 패거리들! 그들을 이 지식과 발명과 개량의 악령에 내맡겨둔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리.” -폴 루이 쿠리에
--- p.5
그는 1860년대의 비루한 파리 상황과 19세기 프랑스의 한심한 상황을 경멸하는 어조로 언급했다. 그리고는 이 시대에 누리는 혜택에 대해 감탄과 칭찬을 늘어놓았다. 수도 파리의 곳곳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빠르게 연결되고, 열차가 아스팔트 대로를 누비며, 동력이 가정으로 공급되고, 탄산이 증기를 대신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바다가, 대서양이 그르넬 기슭까지 들어와 그 물결을 출렁이게 되었다. 연설은 엄숙하고 서정적이고 지나치게 찬양일색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경이로운 20세기의 문명이 19세기에 발아한 것임을 부당하고 어이없게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 p.22
자동차는 역마다 설치된 가스충전소에서 필요한 수소를 공급받게 되어 있었다. 새로운 개량에 힘입어, 자동차 실린더를 식히기 위해 과거에는 꼭 필요했던 냉각수도 이제는 필요 없었다. 따라서 자동차는 편리하고 ‘단순하고 다루기 쉬운 것’이었다. 운전자는 자리에 앉아 핸들만 움직이면 되었다. 발밑에 설치된 페달로 자동차의 진행과 멈춤을 즉각적으로 조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38
스타니슬라스 부타르댕은 이 산업사회의 시대가 낳은 자식이었다. 그는 대자연이 아니라 보호막이 쳐진 온실에서 성장했다. 무엇보다도 매우 실리적인 인간으로 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유용성을 극히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했다. 호라티우스의 말대로 실리와 역겨움이 결합된 인물이었다. 그의 말투는 자만에 차 있고, 태도는 더더욱 그러했다. 자기 그림자가 자기를 앞서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을 그램과 센티미터로 표현했고, 언제나 계측자를 갖고 다녔다. 숫자를 통해 사태를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술을 철저하게 무시했는데, 그 사실로 그가 예술의 존재를 알기는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아는 회화는 담채화까지였다. 그에게 있어서 데생은 설계도, 조각은 주조물, 음악은 열차 소리, 문학은 증권거래소의 게시판일 뿐이었다.
--- p.46
미셸은 인문 서적들이 소장된 건물을 찾아냈다. 상형 문자처럼 어지러운 낡은 층계를 올랐다. 일꾼들이 곡괭이질을 하며 계단을 수리하고 있었다. 인문학 책들이 있는 방이 나왔다. 방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열의를 가진 사람들로 붐비던 지난날보다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오늘의 현실이 더 흥미로웠다.
--- pp.62~63
50대 남자가 깃털 펜을 귀에 꽂고 신중한 걸음으로 금고들을 따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미셸은 그가 숫자로 세상을 보는 사람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은행의 현금 출납원이었다. 남자는 정확하고 절도 있고 딱딱하고 무뚝뚝한 태도로, 현금을 금고에 넣을 때는 기뻐했고 금고에서 꺼낼 때는 고통스러워했다. 돈을 꺼내는 것이 그에게는 도둑질처럼 느껴지는 듯했고 넣는 것은 원상회복으로 여기는 듯했다.
--- p.74
“웃지 마세요, 딱한 친구 같으니라고! 카스모다주 은행에서 웃음은 금지된 행위예요! 보세요! 내 표정은 돌멩이라도 쪼갤 듯 단단하고, 태도는 7월에도 튈르리 정원의 분수 물을 얼게 할 듯 차갑잖아요! 과거 미국의 자선가들이 포로를 가두어두는 지하 감옥을 둥글게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포로들에게 네 귀퉁이 중 하나로 몸을 피하는 여유조차 주지 않으려고 말이에요. 그런데 미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바로 그 둥근 감옥 같아요. 별다른 이유 없이 끔찍하다고요!”
--- p.99
“이 친구는 시인이야, 자크! 그러니 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돈 버는 것이 인간의 제일가는 의무인 지금 세상에서 말이야!”
--- p.110
“라마르틴이군요. 위대한 시인이에요.” 청년이 말했다. “상징 문학의 거장이자 햇빛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멤논의 거상 같은 존재지! 가엾게도 그는 고매한 이유로 재산을 모두 잃고 배은망덕한 도시의 거리를 떠돌며 하프를 뜯었지. 자기 재능을 채권자에게 팔아 생푸앵 마을 사람들을 저당의 고통에서 구해주었지. 그는 자기 친척들이 터를 잡고 있는 그 땅을 철도회사가 강제 매입하는 것을 보며 고통 속에서 죽었단다!”
--- p.162
“개인의 용기는 대포와 더불어 사라져버렸어. 사람이 싸우는 게 아니라 기계들이 싸우는 거니까. 그렇게 되자 전투라는 게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이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지. 나는 아직도 사람이 몸과 몸을 서로 부딪치며 싸우던 시절을 기억한단다.”
--- p.187
“틀림없는 사실이야. 미셸. 지난 세기부터 가능하면 자녀를 적게 가지려는 추세가 부상했지. 결혼한 여자가 빨리 임신을 하면 어머니들은 노여워했고 남편은 그런 서투른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했지. 오늘날 합법적인 관계에서 낳은 아이들의 숫자는 사생아에 비해 현저히 줄었어. 사생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사생아들은 곧 프랑스의 주역이 되어 친권을 밝히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할 거야.”
--- p.204
“그런 수고를 할 만하죠. 요컨대 이제 조각가도 없습니다! 그럼 음악가는 있을까요? 미셸, 넌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미 알 거야. 문학에 열중하겠다고? 하지만 과연 지금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소설을 쓰는 사람들조차도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걸 문체를 보면 알 수 있어! 그래! 모든 게 끝났어, 이미 끝났어, 몰락해버렸어!”
--- p.229
이제는 문명화된 사람들에 맞도록 모든 작품이 주문 제작되었다. 작가는 공무원 신분으로 창작의 산고를 치르지 않고도 충분한 대우를 받았다. 이런 사태에 끝까지 항의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 불우한 천재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개성을 죽이고 대중의 요구에 맞는 문학작품을 공급하는 이런 조직체 속에서 누군들 상황을 개탄하는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 p.244
해고 통보를 받고 미래가 또다시 우연의 처분에 내맡겨지자 미셸은 몹시 낙심했다. 사람을 지치게 하고 조롱하고 환멸을 안겨주는 밑바닥 삶이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는 끔찍한 순간을 겪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가 초라하고 쓸모없고 낙오된 존재로 여겨졌다.
--- p.265
“오! 끔찍한 과학! 끔찍한 기계 산업 같으니라고!” 그가 소리쳤다.
--- p.285
파리국립도서관에 틀어박혀 구체적인 과학 지식을 공부했던 쥘 베른은 그의 창조적 ‘상상’이 깊이 있는 감각 체험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치밀한 자료조사가 필요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과학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론과 수치의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백척간두에 오르는 것, 그리고 그 끝에서 허공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었다. 초인의 ‘진일보’는 한 세기를 뛰어넘어 우리 앞에 내려앉는다.
---「옮긴이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