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이야기들을 썼다. 이후 삼십 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했다. 중남미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살았으며, 현재 스페인과 영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2004년에 《수상한 할아버지》로 에데베 문학상을, 《그림자》로 바르코 데 바포르 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몇몇 작품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시집도 한 권 출판했는데, 이 시집으로 1994년 라사리요 어린이 문학상 2등 상을 수상했다.
역자 : 김정하
한국 외국어 대학교와 대학원,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을 공부했다. 스페인 어로 된 좋은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집으로 가는 길》, 《숲은 나무를 기억해요》, 《아버지의 그림 편지》,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 《사춘기 트위스트》 등이 있다.
바보 같은 파토는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갑자기? 그럴 수는 없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계시는 거야. 추첨에서 당첨된 것처럼 갑자기 나타날 수는 없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할아버지랑 엄마랑 조금 거리를 두고 살았었대. 그건 멀리 살았고 사이가 안 좋았다는 말이래.”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고?” 파토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둘 중 한 사람이 뭔가 잘못했고 다른 사람이 그걸 용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말일 거야.” 수산나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절대로 뭔가 잘못할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전에 나를 한 번 때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는 엄마가 울어 버렸어.” “그러면 네 할아버지가 잘못했겠지.” 나는 그 회색 눈빛의 노인이라면 뭔가 잘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맞아, 할아버지일 거야.” …… (중략)……
“어떤 보석 가게에 무장 괴한이 들어가서 강도질을 저질렀습니다…….” 뉴스 진행자가 말하고 있었다. “‘저지렀다’는 게 뭐야?” 내가 물었다. “‘저-질 -렀-다’라는 건…….” 엄마가 말을 고쳐 주었다. “뭔가 나쁜 일을 했다는 말이야. 범죄 행위를 했다는 거지.” “쉿!” 노인 할아버지가 말했다. 텔레비전에 강도가 들어간 보석 가게의 모습이 나왔다. “시장 골목에 있는 보석 가게잖아!” 엄마가 가게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동네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야!” “쉿!” 노인이 다시 말했다. “몇 시간 뒤에 강도 용의자가 체포되었습니다…….” 아나운서가 계속 이야기했다. “‘용의자’가 무슨 말이야?” 내가 물었다. “쉿!” “‘강도 용의자’라고 부르는 건 아직 그 사람이 진짜 강도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야. ”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의 강도는 가방을 들고 달아났습니다. 그 가방 안에는 강탈한 물건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 (중략)……
“네 할아버지 어떠셔?” 오늘 아침에 수산나가 물었다. “내 할아버지 아니야. ” 내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아직은 용의자야.” “뭐라고?” “할아버지 용의자라고.”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인데?” “그러니까 아직은 내 진짜 할아버지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야. 할아버지들이 해 주는 것 중에 아직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거든.” “코를 안 고셔?” 파토가 말했다. “맞다. 그것만 빼고.” 용의자가 무슨 뜻인지 아이들이 더 잘 이해하게 하려고 나는 어제 뉴스에서 들은 강도 침입 용의자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내 할아버지 용의자가 머리를 떨고 눈짓을 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됐어!” 파토가 소리쳤다. “뭐가?” 수산나와 내가 동시에 물었다. “무서운 과거를 가지고 계신 거야. 우리가 말했던 거 생각나? 적어도 너의 할아버지는 과거에 뭔가 무서운 일을 하셨고, 그래서 네 엄마랑 말도 안 하고 지내셨을 거라고 했던 거.”
…… (중략)……
“치과에 가야 하는 거 잊지 마.”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함께 못 가지만, 할아버지가 함께 가 주실 거야. 안 그래요, 아버지?” 할아버지가 부엌문 앞에 서 계셨다. 머리카락 세 개가 위로 솟아 있었고 엄마의 분홍색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언제나 할아버지란 말이야.” 할아버지가 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 집에 할아버지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모르겠다.”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의 권력을 잡았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제 할아버지가 물건을 사고 집안일을 맡아 한다는 뜻이다. 내가 양말을 벗어 던지자마자 내 등 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런! 하녀가 와서 저걸 주우라고. 이 아이가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잠시 할아버지의 불평이 이어진다. 이제 할아버지와 나는 시리얼로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다. 이제 야채수프를 먹는다. “이제 할아버지 틀니를 하게 되면요…….” 나는 야채수프가 싫다. “채소는 몸에 좋은 거란다.”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해.” 이렇게 말하고는 얍! 순식간에 멋진 달걀부침 두 개를 만든다.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 절대로 노른자를 터뜨리는 일이 없다. “내가 살면서 달걀부침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는데!” 할아버지가 아주 뻐기면서 말한다. “내가 화물선 식당에서 석 달간 일을 해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게 언제였어요? 그리고 ‘화물선’이 뭐예요?” 내가 물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설명 대신에 요즘 아이들이 무식하다고 한탄한다. 전에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말해 주는 법이 없다. ……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