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0년 05월 01일 |
---|---|
쪽수, 무게, 크기 | 268쪽 | 130g | 102*184*20mm |
ISBN13 | 9780451524935 |
ISBN10 | 0451524934 |
발행일 | 1990년 05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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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8쪽 | 130g | 102*184*20mm |
ISBN13 | 9780451524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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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1949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근미래의 전체주의 국가를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빅 브라더'를 내세운 국가가 기술을 활용하여 국민을 통제하는 이 소설의 설정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복잡한 여운을 남긴다. 20세기 최고의 디스토피아 소설 중 하나로 불리는 1984를 원저자의 언어로 읽어 보자. -외국도서MD 정송
전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인지, 짧은 영어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어려운 단어가 보이지만, 영국 작가로서, 그리고 영문 소설에서,
그의 영어만큼 명료하게 다가오는 문장들도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쓰는 문장 스타일 자체가 소설가와 저널리스트 사이에 있기 때문인것 같다. 아니, 소설을 저널리스트가 쓰는 느낌이랄까?
동물농장과 더불어, 공통적으로 소설 전반적으로 묘한 긴장을 끌어나가는 힘이 있어, 지겹지도 않으며, 줄거리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이나 관계들의 개연성이 뛰어나, 흠잡을 데가 없는 것 같다. 정말 실제 일어난 어떤 사건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읽는 내내 그 동안 읽어왔던 보아왔던 책과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들이 생각났으며, 한국 역사와, 세계 곳곳에서 소수들의 독재와 그와 함께 행해지는 전제주의 (전체주의 포함해서) 정치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종교가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그래서 더 무서운 곳들도 생각나곤 했다. 어떻게 이런 책을 1940년대에 쓸 수 있었을까?
1984년이면 벌써 횟수로 26년 전이다. 그 당시면 내 나이가 6살이었다. 제대로 기억나는 일도 별로 없다. 작가가 이 책을 썼을 때는 상상력을 동원한 미래 사회를 그렸을 텐데, 내용과 상관없이 그가 그린 미래 사회는 겉으로 들어나는 것만 봤을 때, 어느 부분에서는 상당한 발전이 어느 부분에서는 굉장히 낙후된 부분이 있다. 마치 내가 어릴 적 다가올 2000년 미래를 그릴 때 화상 통화를 할 수 있는 전화기를 그리고 타임머신을 그린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이건 그다지 중요한 얘기가 아니고 정말 중요한 사실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더 키워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사회 구조를 꿰뚫어 보고 있는 저자의 깊은 해안에 대해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예전부터 머릿속에서 생각하던 하지만 뭔가 뭉툭해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사회 시스템을 글로 잘 정리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생각나 사회가 있다. 바로 북한이었다. 심지어 북한 지배층들이 조지 오웰의 이 책을 인용해 자신들의 체제를 구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빅 브라더는 김일성 또는 김정일과 비교 대상이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종속된 자유 이 모든 것이 북한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 했다. 더불어 표정 하나 책 속 오세아니아 제국 사회 사람들의 자그마한 행동조차 감시받는 모습은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종종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늘 무표정하고 생기가 없다. 정말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차가워 보이고 무미건조하다. 이들 역시 오세아니아처럼 어느 상황, 장소에 있어도 감시를 받는 것일까? 물론 여러 매체를 들어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들어왔다. 조지 오웰은 실제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하고 이런 글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작가의 예지력이 무섭다고 느꼈다.
물론 극명하게 드러나는 체제는 북한이 가장 유사하게 나타나지만,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에도 이미 알게 모르게 진행되어왔다. 텔레스크린으로 지배받는 오세아니아 제국, 지금 이 사회도 사실 감시 체제 속에서 살지 않는가? 조지 오웰이 약간 잘못 판단하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그의 생각보다 더 영악하다. 이 시대는 감시체제가 아주 교묘하고 영리해 사람들은 자신이 감시받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길거리 수많은 감시 카메라, 그것도 모자라 인공위성을 통한 감시 체제 또 직장, 학교, 심지어 동호회 종류 같은 소소한 모음에서 조차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며 살고 있다.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한다. 오세아니아 세계는 무산계급이라 하는 부류에는 신경도 쓰지 않지만, 지금 현재 세계는 모든 인류가 감시 체제에 살고 있다. 행여나 잘못 눈에 띄었다가는 바로 저인망 같은 그들의 시야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다들 모른다. 그렇다면 왜 알아차리지 못할까? 바로 미셀 푸코가 말한 보이지 않는 감시 체제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 같다. 하긴 무산계급이라 불릴 수 있는 서민 계층의 행동이야 그들에게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니 실제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든 서글퍼지기는 매 한가지다.
이 책의 핵심은 골드스타인이 쓴 ‘과두제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다. 이 부분을 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나와 있다. 어떻게 보면 내용이 굉장히 회의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구조화 된 사회를 타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설렁 읽고 넘어가면 안 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산 계급의 깨어있는 의식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비록 현재 상황을 타개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바뀌어 나갈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자세를 말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 책에 영향을 받은 작가나 영화감독들이 꽤 많지 않나하는 한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도 그렇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스로가 이 소설에 깊은 감동을 받아 1Q84를 썼다고 말했다. 이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통해 여러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읽어보면 이 소설은 그 당시 시대보다는 지금 시대 상황을 더 많이 반영한다. 아니 어쩌면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시대를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급계층의 습성,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전체주의 이 모든 것이 어느 사회 때나 끊이지 않고 나왔으니 말이다.
오세아니아라는 제국은 빅브라더의 가공인물을 내세워 시스템으로 사회가 통제된다. 빅브라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체제의 상징이다. 이는 기가 막히게 현대 사회를 잘 설명한다. 세계 구조화 작업이 완전히 끝난 나라들을 살펴보면 시스템이 나라 전체를 지배한다. 현재 사회의 상징은 뭐랄까? 예전 이데올로기 사회 때는 그거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뭐라 말하기도 애매하다. 아무튼 이런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때가 되면 정권이 바뀌고 인물이 바뀌어 나라가 통제되어 가는 것 같지만, 사실 미국은 아주 조직화 된 시스템에 의해 지배되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 혹은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게 되던 그들이 추구하는 대, 내외적인 정책에 있어서 아주 큰 변화는 없다. 더불어 수차례에 걸친 실수를 통해 이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져 똑똑한 지배층은 짜임새 있고 영악한 탄압으로 피지배층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줄인다. 그로 인해 현재 미국 사회에서 저항과 체제 전복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계급화가 아주 세련되게 고착화 되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삶의 목적은 생존이 되고 사람들은 점점 무의식화 상태가 되어 자기 자신과 가정만을 위해서 살게 되어 버렸다. 결국 나중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할 것 없이 어떤 형태로든 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두 가지 체제가 병합되어 있는 사회는 그 강도가 더 크다. 미국이란 사회가 그렇다. 체제는 사람을 무지로 만든다. 모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우리가 기본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들도 쉽게 바꿔 버린다. 사람은 점점 우매하게 되고 조종당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구조화된 사회는 선을 빨리 잡은 자들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자리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사회가 부조리하고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이 싸워 나가야 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그런 작은 노력이 끊이지 않고 계속 간다면 힘없는 자들이 주인이 되고 뜻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별 달리 생각 없이 현재의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고통은 우리 뿐 아니라,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를 비롯한 대대손손 이어져 나갈 것이 자명하다. 흠, 종종 이런 글을 꽤 쓰는 것 같다. 내가 점점 선동가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모르겠다. 내 외침이 그저 동굴 속 울림으로 끝날지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을 파고들어 변화시키는 생명의 소리가 될지 후에 가보면 알겠지. 그래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글을 쓸 수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포기하지 말고 세상에 내가 알고 있는 소리를 내야겠다.
그들이 의식하기 전에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저항하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