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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 6
Part 1 자살의 탄생 스스로 죽는 사람들 자살은 과연 명예로운가? 15 / ‘영웅다운 자결’이라는 모순 24 / 성경에서 그린 생명의 말로 38 / 자살을 옹호한 철학자들 42 / 역사는 어떻게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47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의 정당화 흄의 궤변 54 / 자살 예찬 57 형량 없는 범죄 죽은 자에게 죄를 묻다 62 / 용기 있는 선택 67 정신의 역습 정신의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74 / 가책의 덫 79 / 위험한 사랑 86 / 유혹의 파도에서 자신을 지켜라 94 자살, 모방인가 전염인가? 모방하는 동물들의 은밀한 유행병 101 / 죽음을 전염시키는 것들 105 Part 2 자살의 징후 삶이 위태로울 때 황홀한 죽음 112 / 자살의 유혹이 밀려올 때 115 혼란스런 마음이 불러온 것들 감수성에 빠져들다 120 / 바이런의 불행 125 / 유령은 존재할까? 128 육체가 정신을 지배할 때 죽고 싶은 날씨가 따로 있다? 134 / 몸의 고통이 마음에 주는 영향 139 / 술과 자살 충동의 관계 141 / 신체적 증상에 따른 정신적 문제 144 / 자살 유전자 161 / 뇌 질환의 숨겨진 비밀 165 자살 충동 처방전 자살 충동 극복 사례 176 / 환자의 태도에는 일관성이 없다 182 / 의사가 갖추어야 할 자세 195 광기만이 비극의 결과인가 죽음에 취하다 204 / 정신이상에 대한 고찰 207 / 정신이상자의 사례 215 /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220 / 자살을 정신의학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 224 Part 3 자살의 본색 법의학으로 본 자살 사건 자살과 타살 사이 234 / 콩데 가문, 비극을 맞다 237 / 사건의 진 실을 밝히다 243 / 법의학자의 의무 249 자살 보고서 프랑스 자살 보고서 258 / 제네바 자살 보고서 265 죽은 자가 보낸 신호 머리가 주는 단서 272 / 보이지 않는 해답 275 특이한 자살 사건 좌절감이 부른 비극 279 /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의 불행 287 / 죽 기를 작정한 사람들 293 /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 303 비난은 해결책이 아니다 자살은 범죄가 아니다 314 / 법보다 우선해야 할 것 316 |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살은 용기의 증거이며 피살은 불명예였다. 대중의 생각에 큰 파장을 일으킨 철학자들이 이러한 생각에 심취한 덕에, 자살이 종교의 일부를 구성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것을 감안해 본다면, 천재성을 인정받거나 용맹을 떨치던 수많은 사람이 자살을 택했다는 게 과연 놀랄 만한 일일까? --- p.14
규모가 큰 교전이나 전쟁에서 이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앞선 사례를 높이 평가한다면 너도나도 자살을 극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뻔한 결과만 불러올 뿐이다. 조국은 명석한 장군을 잃고, 백성은 숭고하고 노련한 후원자를 잃는 결과 말이다. --- p.17 자살 기도에 관한 로마법은 돈과 어느 정도 관련 있는 듯싶다. 자살을 범죄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국무나 재정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로 따졌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에서는 일부 지역에 총독에게 자살의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자살을 해선 안 된다는 결정에도 목숨을 끊은 경우, 시신에 모욕적인 욕설을 퍼붓고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했다. --- p.47 루소는 《신 엘로이즈Julie, ou la Nouvelle Heloise》에서 “자살은 곱씹어 볼수록 사회의 근본적 명제(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만의 선을 찾고 악을 피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로 수렴해 가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루소는 자신만의 선을 찾는 것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논지부터 입증해야 한다. --- p.56 마음의 과학을 바르게 배우면 인지구조의 법칙은 물론,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깨달을 수 있다. 이를테면, 생각과 감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경위를 비롯하여, 개발되거나 억제되는 방식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추론을 통해 마음의 오류를 유도하는 근원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 p.75 널리 퍼진 (잘못된) 지식과 아울러 변변치 않은 지각으로 교육을 받으려는 욕구가 되레 자살이라는 범죄를 부추겼다. 이러한 견해가 (교육을 부추기는) 사회적 통념과 대립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신이상이라는 자살 변인의 빈도가 문명과 개화에 비례한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 p.97 두뇌에서 어느 한 가지나 상상력이 지나치게 자라면 이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행’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익숙한 사람, 즉 조잡한 이상에 둘러싸인 사람은 점차 모진 현실을 거부하려 들 것이다. 자신의 상상이 스스로를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느 독일 시인은 신에 대한 시를 짓다가 그에 너무 몰입한 탓에 “죄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벗어나라”라는 환청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침상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 p.131 일설에 따르면,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는 만성 변비에 간 질환이 심했고, 죽은 후에 창자에 혹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병환이 살육 현장에서 살인 충동을 어느 정도까지 자극했을지 상상해 보라. --- p.173~174 자살과 관련하여 전문의가 늘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목숨을 끊기로 작정한 사람은 애당초 염두에 둔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장 죽고 싶더라도 전부터 계획해 둔 방법이 통할 때까지 몇 달이든 몇 년이든 기다린다. --- p.189 얼마 후, 환자는 런던에서도 먼로 박사를 고소했다. 이전 사건 때 상상 속의 공주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 탓에 패소했음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훨씬 더 간교한 ‘수작’을 부렸다. 법정 사상 최고로 혹독한 심문을 당했지만 정신 질환은 끝내 입증되지 않았다. 이는 자살 사건에서 정신 질환 여부를 가늠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특성이다. 아울러 정신이상은 명백한 증거를 남기지 않기에 이를 섣불리 부정해서는 안 된다. --- p.212 게리는 자살과 관련하여, 다른 범죄의 동기보다 자살의 동기가 훨씬 잘 드러나며, 유서를 적지 않고 목숨을 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어떻게든 정당성을 확보할 요량으로 자신이 경솔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해명한다고 덧붙였다. --- p.261 |
신을 향한 범죄인가, 자존심을 지키는 고귀한 행위인가?
고대부터 근대까지, 자살 논란의 뿌리를 밝힌다! OECD 회원국 중 10년 넘게 자살률 1위인 한국. 이러한 현상을 두고 누군가는 자살이 오늘날의 문제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살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하나의 ‘역사’다. 성경 속 최초의 자살 사건인 삼손의 일화에서부터 비운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영국의 시인 토머스 채터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살이 시대와 함께 이어져 왔다. 실제 역사에서는 물론, 문학에서도 자살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연인을 의심했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렇다면 자살은 신을 향한 범죄일까, 아니면 자존심을 지키는 행위일까? 저명한 영국의 정신의학자 포브스 윈슬로(Forbes Benignus Winslow)가 활약했던 19세기 유럽에서는 자살을 신을 향한 악독한 범죄로 치부했다. 자살 기도나 자살 충동에 관한 치료는 관심 밖이었고, 자살자를 단죄하려는 탓에 유가족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곤 했다. 때문에 아무리 자살을 금기시해도 그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윈슬로는 자살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시선을 알아차리고, 자살 현상을 규명하고자 애썼다. 먼저 그는 고대에서부터 이어진 자살 사건을 들여다보았다. 고대에서부터 나라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자살을 꼽았다. 또한, 영웅은 자살을 명예, 피살을 불명예로 여겨왔다. 때문에 시련을 겪으면 줄곧 목숨을 던지곤 했는데, 윈슬로는 로마의 장군 카토와 유대군 사령관 요세푸스의 일화를 비교하여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한편, 수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은 ‘내 목숨을 내 멋대로 한다는데’라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로써 자살을 옹호해 왔다. 윈슬로는 이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살 현상에 한몫했으리라 판단하였다. 세네카, 흄, 루소, 몽테뉴 등 자살을 지지하는 사상가들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함으로써 대중이 사상가의 잘못된 견해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랐다. 한편,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자살 동기를 추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윈슬로는 자살 동기로 크게 내장 질환이 불러온 자살 충동과 외부의 변화가 불러온 자살 충동을 들었다. 육체적인 측면에서 뇌, 위, 장 같은 신경을 거슬릴 만한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경우에 으레 자살을 염두에 둔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즉,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윈슬로는 특히 뇌 질환에 주목했는데, 뇌에 경미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상처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그대로 살아가다가 결국 자살 충동에 휩싸여 자살하고 만 사례를 덧붙였다. 내장 질환의 경우에는, 여러 작가와 사상가가 내장 질환으로 고통 받다가 정신착란을 겪었던 사례를 소개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자살 동기를 찾아보면, 먼저 자살은 결코 정신이상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윈슬로의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 윈슬로는 감정이 ‘배의 돛에 바람을 가득 실어주는 돌풍’과 같다고 표현했다. 즉, 흥분되는 감정이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이 단순한 개인사로 여기는 실연, 좌절, 실망 같은 감정이 자살 충동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윈슬로는 자살을 비판하면서도 무고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판명하기 어려운 경우, 법의학자가 올바르게 사인을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당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루이 앙리 조제프 자살 사건을 예로 들며 자살자의 사인을 하나하나 밝혀 간다. 또한, 자살자의 공통점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에서부터,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특이한 사건까지 다양한 자살 관련 사건을 분석하였다. 윈슬로가 주장하는 바는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자살은 범죄가 아니다!” 그는 자살을 죄로 단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자살자는 이미 마음속에서 생을 단념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진 탓에 어떤 법으로든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살 충동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예방하고, 만일 자살 충동이 일어났다면 그것을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자살 충동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식만 주입하는 ‘머리’ 교육뿐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는 ‘가슴’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우리 또한 자살을 자살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자신은 자살할 이유가 없으니 자살 현상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가? 그러나 자살 충동은 결코 우리를 빗겨가지 않으며, 또한 개인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윈슬로는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말한다. 자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