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10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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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294g | 127*188*20mm |
ISBN13 | 9788937473135 |
ISBN10 | 8937473135 |
발행일 | 2016년 10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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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294g | 127*188*20mm |
ISBN13 | 9788937473135 |
ISBN10 | 8937473135 |
2015년 가을 1982년~1994년 1995년~2000년 2001년~2011년 2012년~2015년 2016년 작가의 말 작품 해설_우리 모두의 김지영 /김고연주(여성학자) |
"82년생 김지영" 씨는 30대 중반의 주부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우여곡절 끝에 홍보대행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정대현 씨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의 삶의 여정을 얼핏 보면 그야말로 평범하고 특이할 게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김지영 씨의 삶 구석구석을 들추어내면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감내하고 겪어야 했던 부당한 대우와 시선들을 보여준다. 어머니인 오미숙 씨도 겪었고, 딸인 정지원 씨도 마주할 현실 말이다. 딸이란 이유로 태어나기 전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 학교에선 면티와 운동화가 허용된 남학생과는 달리 여학생에게는 치마에 스타킹과 구두만 허용됐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유로 취업 추천에는 남학생들만 선발됐고,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누구보다 속상한데 아버지로부터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의 선배 여성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을 늘 자원해야 했다. "장모를 모시고 사는 걸 보면 만난 적은 없지만 김은실 팀장의 남편은 좋은 사람일 거라고 했다. 김지영 씨는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중략) 돌봄 노동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다른 집안일도 거의 안 하셨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드시고, 어머니가 빨아 놓은 옷을 입고, 어머니가 청소한 방에서 주무셨다. 아무도 어머니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p.111) 결혼 후 어른들이 기다리는 '좋은 소식'이 없자 당연히 그 원인은 남편이 아닌 김지영 씨의 문제로 결론이 났다. 임신한 아이가 딸이라고 말하자 친정 어머니는 다음에 아들 낳으면 된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괜찮다, 라고 했다. 그는 그 말들이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육아를 위해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마땅히 부부의 몫이어야 할 살림과 육아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고, 정대현 씨는 그저 많이 돕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 싸구려 커피를 마시면서 잠깐 쉬려고 했을 뿐인데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맘충”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자행된 일들이 너무 무거웠던 김지영 씨는 결국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나는 82년생 김은영 씨와 살고 있다. 결혼 생활은 올해로 8년 째. 아직 임신과 출산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김지영 씨의 삶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그는 비슷한 이름처럼 주어진 삶의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몸과 마음이 지쳐 일을 그만둔 김은영 씨 역시 주위의 ‘말들’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는 낳지 않냐는 말을 수백 번도 더 들어야 했고, 아이도 키우지 않으면서 집에서 뭐하냐는 시선들을 감당해야 했다. 누가 그런 걸 정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당연한 건 많은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p.132) 물론 54년생 김순득 씨의 젊은 시절보단 좋아졌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 멀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김지영 씨의 삶이 낯설다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아직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다. 한 국회의원이 이 책을 국회의원 전원에게 돌렸다고 한다. 대한민국 군대와 남자 고등학교에도 『82년생 김지영』을 하나씩 나눠주고 싶다. |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줄로만 알고 살듯이.< 82년생 김지영 p. 46>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인신고 할 때 부부가 합의했다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아직은 아빠 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엄마 성을 따랐다고 하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설명하고 정정하고 확인해야 할 일들도 많이 생기겠지."김지영씨의 말에 정대현씨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으로 '아니오' 칸에 표시를 하는 김지영씨의 마음이 왠지 헛헛했다.< 82년생 김지영 p.132>
그때 옆 벤치의 남자 하나가 김지영씨를 흘끔 보더니 일행에게 뭔가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간이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하려고....김지영씨는 뜨거운 커피를 손등에 왈칵왈칵 쏟으며 급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중간에 아이가 깨서 우는데도 모르고 집까지 정신없이 유모차를 밀며 달렸다. 오후 내내 멍했다.< 82년생 김지영 p.164>
혹시나 누군가 나의 미천한 리뷰를 본다면 이 말부터 해야할 것 같다.
'나는 85년생 남자다.'
'82년생 김지영'은 사실 나의 의지로 본 것은 아니고 아내가 보고 싶다고 하여 사 준 책이다. 책이 도착한 날 밤에 단숨에 읽은 아내는 이 소설에 공감을 하며 내게 읽기는 권하나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아내는 나와 동갑이다.) 특히 김지영의 어머니는 마치 '친정어머니+시어머니'를 보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도입부를 간단하게 읽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다음 날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장르는 (책 표지에 나와있듯이) 장편소설이다. 처음에는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처럼 보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중간중간 정확하게 나와있는 통계와 참고문서가 적혀져 있는 각주를 보면서 '김지영'이라는 가상인물을 예로 들어 이 시대 여성의 고충을 설파하는 글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빙의된 듯 행동하는 '김지영'의 행동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갈등을 묘사한 것이 물론 소설의 성격을 띄었지만 결국 문단 끝에 나오는 통계들을 쉽게 공감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내가 리뷰 카테고리를 비문학으로 지정한 이유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 동안 읽었던 서양 고전들과는 다르게 당장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여성들만 느낄 수 있던 삶의 고충들을 충분히 느끼고 반성하고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늘어났고 남성만의 성역이라고 여겨지던 부분에서 당당히 여성의 진출들이 늘어나며 그 안에서 여성들의 경쟁력이 대단하다는 것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여성의 사회 진출은 특별한 것이 절대 아니며 우리나라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을 읽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남아있으며 이런 차별, 편견들은 여성의 생애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음을 작가는 외치고 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하는 가정에서의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 학창시절 학교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여자들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있는 여성들의 위험, 기성 세대들의 직장 여성에 대한 편견 등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가 꽤 많이 여성들의 사회적 권위가 올라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아직 남녀의 기회의 평등은 요원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하면 남자는 이득, 여자는 손해'라는 말을 아내가 많이 했다. 사실 결혼 후 육아대디로 살아왔다고 내 자신은 자부하고 있으나 큰 변화는 언제나 아내에게 있었다. 결혼 후 나의 직장문제로 인해 아내가 일을 그만 두며 20년 동안 있던 곳을 벗어나 익숙하지 않는 곳으로 터전을 옮겼고 갑작스런 아이의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먼저 챙긴 건 아내였다. 책을 읽으며 나를 포함하여 우리가 아직도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의 책임은 아내에게 있다고 뇌리에 박혀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글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은 건 여성들이 상당히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에서 본 바바리맨, 학원에서 뒷자리 남자에게 받았던 공포, 대학교 선배에게 들은 '씹던 껌', 면접관에게 들은 회식관련 성희롱 질문, 다니던 회사에서 발생한 몰카사건, 지하철에서 젊은 여자에게 들은 욕설, 공원에서 들은 '맘충이'... 여성에게 치욕적인 말들과 행동들이 너무나도 많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남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저급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고 틀리다고 할 수 없기에 남자로서 부끄러웠다. 우리나라 직장에서 성윤리 관련하여 교육이 중요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은 지나치게 늦었다고 생각한다. 성윤리는 어렸을 때의 생활습관, 교육 등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성에 대한 안 좋은 편견으로 너무 늦게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에 대하여 남성의 입장에서 비판 (혹은 변명)할 점도 분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윤리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변명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이기에 남성들의 성윤리 고찰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직장 여성들에 대한 편견,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 부재, 미혼여성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선입견이 마치 상관으로 앉아 있는 남자들의 문제라고 은연 중 제시하는 점은 개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특히 마지막 이 글의 화자인 정신과 남자의사의 씁씁한 결정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여자의사가 원장으로 있다면 과연 결과가 달라졌을까?
실제로 아내가 직장을 다니는 곳도 여성대표가 계시다. 나의 비판적인 생각을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도 동의하며 직장 형편 상 둘째 육아휴직은 꿈도 못꾸고 말도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자 직원이 극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직장 여성의 권리행사 억압의 문제는 사회 시스템과 복지 제도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마치 남성 중심의 직장문화와 상관이 남성이기에 여성의 권익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여성들의 삶은 정말 많은 일들에 의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 남성들의 삶과 다른 점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여성들이 얼마나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고 본인들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지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한 편견, 태도는 (그 사람 자체의 문제인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 자라오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몸에 밴 성역할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남성이 스스로 이 문제를 자각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는 이런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없도록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성이 더욱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결혼 후에도 여성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 사회 제도적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남편이 되려 항상 노력해 왔는데 어딘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다. 아내와 같은 책을 읽으며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나쁜 남자 많지만, 좋은 남자가 더 많아. 나는 좋은 남자가 되려고 앞으로 더 애쓰고 무의식적인 편견으로부터 항상 주의할게'
82년 생 김지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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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 내 딸도 여자, 내 어머니도 여자, 마음을 나누고 힘이 되는 친구도 여자.
그래서 이 책은 읽기가 싫었다. 매체를 통해서 언뜻언뜻 접하는 정보도 내가 아는, 내가 겪은, 내가 걱정하는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고. 사실을 직면하고 어쩔 수 없음을 깨닫는 것만큼 마음의 짐이 되는 일은 없으니까.
그래서 인문학 동아리 책 목록에 정해졌을 때도 탐탁치 않아, 읽을 목록에서 뒤로뒤로 미루고 구매도 당연히 미뤘었다.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읽기 시작하고 끝까지 정말 금방 읽어버렸다.
당연히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82년생이면 나보다 7년이나 뒤인 사람인데.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좀 더 나은 사람인 듯 싶다는 것 이외에는...
나처럼 악착같이 버티지 못하고 아픔을 실제 생활에 드러냈다는 것 이외에는- 뭐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건 당연히 아니다.
김지영의 아픔을 구체적인 자료들과 잘 버무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소설이 아니라 르포기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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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이 있다면 나를 사랑한다고 말만 하는 남편과 딸을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부모들,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나 여성 직장동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들이 제발 읽어줬으면 싶다.
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안 읽어도 좋다.
인식하거나 못하거나 다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니까.
이건 피해당사자들의 노력만으로 당연히 고쳐지지 않을 현실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 북받쳐서 옆에 있는 김서방에게 당신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읽으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당연히 별로 읽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잘하고 있잖아 식의 자기 방어적인 말들을 나도 힘들거든 식의 공격적인 대답을 들을지 뻔히 아니까.
그렇다고 해서 같이 사는 김서방이 아주 나쁜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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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고 이해시키지 못하는 내가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12년 동안 살면서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싸워 이기자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를 이해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 관계는 근본적으로 매우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며 내가 어떤 시도를 하면 할수록 나는 억울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비겁하게 선택한 평화가 나의 억울함을 가중시킬 수 밖에 없는데, 일상에서는 그게 더 편한 방법이라는 걸 깨닫고 선택한 내가 한편으론 부끄럽고 안타깝다.
기억에 남는 대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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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너 고생만 시키고. 미안하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순간 아버지의 등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본인 몸집보다 더 큰 상자들을 번쩍번쩍 들어 마루에 옮겨 놓고 아버지 곁에서 비질을 했다.
"은영 아빠가 나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 지영이 엄마, 멋있다. 안됐고. 지영이 아빠가 특별히 나쁜 사람 당연히 아니다.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저렇게 말하는 남자도 흔하진 않으니까. 자신이 진 짐의 무게만 어마무시하게 느끼는 것이 보통 인간이고 특히 남자니까. 같이 짐지고 옆에 있는 배우자 따위는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니까.
p40
또 뭐라고 혼을 내려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선생님은 김지영 씨 앞자리에 마주 앉더니 사과했다. 상황 파악부터 하지 않고 무조건 혼내서 미안하다. 당연히 실내화 주인의 장난일 줄 알았다. 선생님이 지혜롭지 못했고 앞으로 주의하겠다, 라고 차분차분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
"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꾸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 아이의 괴롭힘 때무넹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껏 당해 온 것도 억울한데, 친구를 오해하는 나쁜 아이가 되기까지 했다.
; 저 선생님 괜찮았는데...김지영씨가 친구를 오해하는 나쁜 아이라고 말한 건 아닌데. 그렇게 들리기도 한다. 이 대목을 여러번 읽었다. 딸아이보다 한살 어린 딸을 키우는 집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집 아빠가 꼭 저 선생님처럼 이야기 했더랜다. 친구랑 둘이 막 분노했었다.
우리는 커오면서 저런 이야기들을 한번쯤은 들었고, 운이 좋지 않아 선생님한테 오해받은 경우도 당연히 있었다. 무섭지...당연히 싫고. 내 아이에게, 내 아이의 아버지에게, 친구 딸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얘기 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건 정말 여덟 살도 아는 일이니까. 좋아하면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 줘야 하는 거다.
그게 제대로된 마음의 표현인거다. 튕기고 안튕기고는 상대방의 선택일 뿐이고.
p49
"여기 서울 좀 봐. 그냥 점이야, 점.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 점 안에서 복작복작하면서 살고 있다는 거다. 다 가 보진 못하더라도 알고는 살라고. 세상이 이렇게나 넓다."
; 김지영씨의 어머니 오미숙여사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정도나마 버틸 수 있었겠지. 그래도 뭐 별 수 없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려나. 하지만 개인이 나아질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니까.
p123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은 다 부정문이다. 공정하지 않다. 남은 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효율과 합리를 내세운다. 내세우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뼈에 발린 것처럼 거의 모두의 속에 내재되어 있다.
p132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 둘 다이겠지만. 세상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수혜를 입었다고 느끼기엔 아직도 억울하다.
p137
안 그러려고 했는데 억울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김지영 씨와 달리 일하고 돈 버는 것이 싫어서 전업을 선택하는 여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남편이 수입이 좋기를 바라고 그걸로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데 쓰는 사람들도 그마저도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p139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그렇다. 멘탈이 강해서 선택해야 한다. 이런 고민들을 남자들에게 말해봤자. 자신들도 억울하다고 할거다. 이백퍼센트
p149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깍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오랫동안 당연히 무보수로 해와졌던 일이라서도 이기도 할 것이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집안을 돌보고 집안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그 무형적인 대가로 받아들이며 해왔던 일이니까...
이제사 비용을 환산하는 일이 정말로 새삼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냥 누군가에 의해서 해지는 일일뿐. 그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은 일일 뿐.
p161
"물론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지. 그런데 지금 지영아,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너 하고 싶은 일 못 하게 만든 걸로도 모자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라고는 못하겠다. 아무튼 지금 내 생각은 그래."
; 정대현 씨의 이 말은 참 나를 울컥하게 했다. 나도 들어보고 싶은 말이었기도 하고...알아줫으면 싶은 말이었기도 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참 말만 이쁘네 싶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저것 가리는 고차원적인 사고라니, 호강스럽네.
전업이었던 주부들이 선택해서 하고 있는 직업들의 대부분은 그냥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여기서 남자들이 나라고 좋아서 직장다니느냐고 하는 딴지는 사절이다. 대부분 대체휴일날 애들한테 니네는 놀아서 좋겠다. 나도 놀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멘탈의 소유자들일테니...
p173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 나도 그런 일을 한다. 아무 의미없어보이지만, 나만 이라고 할 수 있는 일. 그런 걸 꼼지락 거리면서 찾는다. 이거라도 안 하면 미칠 거 같아서 하는 마음으로...
그거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하는 마음으로.
p185
...말을 해도 상황은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김지영은 점점 목소리를 잃어 갔다.
......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김지영처럼 눈을 감아 버리고 입을 닫아 버린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있고 그 일은 피로와 무력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 감정, 의견 무엇 하나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서도 소수의 여성들은 목소리를 낸다. 이 여성들이라고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끼 않을 리 없다. 다만 비슷한 경험에서 비롯된 공감과 누군갈부터 받은 도움에 힘입어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다.
; 그 와중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아주 조금 목소리를 내고 대부분은 말을 안할 것이다. 아마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면서도...
더 용기를 내야겠지...
p188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자신을"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를,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의 의무인데, 개별 가정에서 대부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
타인에 대한 돌봄이 사라진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타인을 돌보고 있는 존재인 엄마가 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카페나 다니면서 자기 아이만 위하는 '이기적인 벌레'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다. 여성혐오 시대에 '모성애라는 종교'조차 침탈되는 양상이다. 모성에 대한 신성시도, 맘충이라는 혐오도 여성을 옭아맬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어떻게 나를 온전히 지킬 것인가.
지킬 수는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한 시간들이 나를 기다려 줄 것인가.
나는 십년만 더 이걸 할거라고 생각하며 참고 있는데, 나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편함에 매몰되지 말고 잊지나 말아야지.
일단 나는 맘충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쓰는 사람에게 딴지 정도는 걸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야지.
원전을 없애기 위해 필요없는 불을 끄는 정도의 실천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