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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양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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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애정

전지영 | 예담 | 2017년 03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8 리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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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36g | 118*178*12mm
ISBN13 9788959134847
ISBN10 895913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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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삶이란 억지로 해야 할 일과 참아야 할 일이 차례대로 늘어서 있는 것 같다. 이런 피곤한 일이 해결되면 저런 짜증 나는 일이 생겼다. 서니 롤린스 흉내를 내는 미소포니아 환자 말고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꼬박꼬박 날아오는 온갖 고지서와 함께 잔뜩 쌓여 있었다.
“행복이란 녀석은 내 주소를 아예 잊어버렸나 봐요.”
어떤 소설에서 읽었던 이 말이 화장실 변기에 무언가를 빠뜨릴 때마다 자꾸 생각났다.
--- p.22,〈정말인지 삶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파국은 《위대한 개츠비》처럼 매혹적인 것이 되었다. 스콧이 자신의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무가치하다고 여겼던(혹은 무가치하게 되길 원했던) 젤다는 데이지와는 다른 의미로 남았다. 후대의 사람들은 스콧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젤다를 이해해야 했다. 그녀의 예술 활동을 스콧과 그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스콧의 말들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과 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달려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가 동경했고 동시에 경멸했으며 그 때문에 서로가 파괴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무엇, 젤다는 스콧 피츠제럴드를 규정하는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개츠비는 웨스트에그의 파란 잔디밭에 홀로 서서 데이지가 있는 바다 건너편의 초록색 불빛을 바라본다. 잡을 수 있다고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먼 길을 돌아온 그는 그것을 위해 기꺼이 추락을 선택한다. 그럴 가치가 없는 데이지, 사실은 그럴 가치가 없는 ‘데이지라는 이름을 가진 개츠비의 욕망’을 위해서였다. 그것은 무의미했지만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빛났다.
--- p.54,〈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빛나는〉

누구라도 삶의 한순간, 뜻하지 않은 급류에 휩쓸려 절망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되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방향성과 타인의 방향성과 물리적인 방향성으로 꼼꼼하게 작성된 거대한 운명의 계획을 고쳐보겠다는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지 알게 된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자신의 방향성뿐이다. 비극은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방향성, 다시 말해 그 태도를 선택한 자신이 누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도 연약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운명의 좁은 선택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는 아킬레우스의 태도는 그가 가진 초인간적인(혹은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동시에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신들의 존재, 즉 신성神性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 p.107,〈때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은 따로 나뉠 수 없다. 빛이 없다면 어둠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함께 존재하는 것과 같다. 커다란 앞면을 가진 동전에는 반드시 커다란 뒷면이 있다. 강렬한 빛은 그만큼 짙은 그림자를 남긴다. 소설의 제목 《어둠의 왼손》은 어둠이 아닌 빛을 의미한다.
(중략)
“햇빛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니 이상합니다. 우리가 걷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요.”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무는 자랄 수 없다. 하지만 햇빛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복잡하고 끈질긴 성장에는 반드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 p.125,〈그림자를 보며 걷다〉

삶은 대개 악착 같은 것으로 채워지게 마련이지만 느린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비슷하게 익숙하면서 황량하다. 그 잠깐의 사이에 신기하면서도 아름답게 비치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삶의 표정이 세상의 어떤 탁월한 이야기보다 왜 이토록 깊은 인상을 남기는지 아직 설명
할 수 없다.
--- p.195,〈아무렇지 않은 삶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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