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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 양장,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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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0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452g | 135*194*25mm
ISBN13 9788958078890
ISBN10 8958078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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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우리 같은 작가들에게 반가운 일이지, 불평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태도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길게 보면 어떤 직업이든 온통 오해받고 오용되는 게 달가울 리 없듯이, 인세 수입이 대폭 줄어들지언정 심드렁한 독자 수천보다는 단 열 명이라도 제대로 알아주는 독자들이 더 고맙고 기쁘다.

바로 그런 이유로 감히 주장한다. 남독濫讀은 결코 문학에 영예가 아닌 부당한 대접이라고 말이다. 책이란 무책임한 인간을 더 무책임하게 만들려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삶에 무능한 사람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허위의 삶을 헐값에 제공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에게 불꽃 같은 에너지와 젊음을 맛보게 해주지 못하고 신선한 활력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면, 독서에 바친 시간은 전부 허탕이다.
--- p.12~13

온종일 일에 매달리다 보니 간혹 묘한 순간들이 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들을 북동향의 작은 테라스로 한 아름씩 안고 나가 조심스레 돌난간 위에 차곡차곡 괴어놓고는 서너 권씩 마주 쳐 털다가 있었던 일이다. 8절판의 두껍고 무거운 책 두 권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살살 치면서 먼지가 날리는 모양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기계적으로 작업하다가 언뜻 정신이 들면서 책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서구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이었다. 순간 수많은 기억과 상념들이 밀려들었다. 맨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여기 이러고 서서, 내 교양의 창고가 혹시나 먼지에 파묻힐세라 좀이 슬세라 걱정하며 이 책에서 조심조심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을 우리 아들들이나 다른 젊은이들이 봐야 하는데!’였다.
--- p.34

책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마치 스포츠뉴스나 강도살인사건처럼 한동안 너도나도 읽어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가 이내 잊히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 p.202

독서도 다른 취미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오래간다. 책은 친구나 연인을 대할 때처럼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해주며, 그의 본성에 맞지 않는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후닥닥 해치우듯 읽어서도 안 되며, 받아들이기 좋은 시간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 섬세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쓰여서 무척 아끼는 책들이라면 때때로 낭독하도록 한다.
--- p.210

철저히 알아야 진정으로 소유하게 된다. 들썩이는 호기심으로 온갖 시대 온 나라 문학의 별별 습작과 수준미달의 작품들을 꿀꺽꿀꺽 집어삼킨 이보다, 우수한 제 나라 작가 서너 명을 반복하여 완벽하게 읽은 사람이 훨씬 더 풍요로우며 많은 것을 깨치게 된다. 머릿속 가득 수천 권의 책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공허하게 떠올리는 것보다 몇 권 안 되는 책일망정 속속들이 알아 그 책들을 손에 집어 드는 순간 그것을 읽던 수많은 시간들의 감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편이 더 귀하고 만족스러우리라.
--- p.211

바닥에 아무리 멋진 카펫이 깔려있고 호화로운 벽지와 명화가 온 벽을 뒤덮고 있다 한들,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다. 또한 책을 알고 소유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자녀들이 엉터리에 탐닉하거나 최고의 것을 너무 성급히 맛보아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줄 수 있으며, 이들 젊은 영혼들 앞에 미와 정신의 나라가 활짝 열리는 그 잔잔한 과정을 함께 경험할 수도 있다.
--- p.223

진심으로 생각하건대, 작가의 직분이란 세상에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판별하는 일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의미라는 것이 그저 단어에 불과함을,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없으면서 또한 모든 것에 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이 따로 있지 않음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그런 소임, 그런 고결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작가다. (278

청춘이 괴로운 것은, 기운은 넘쳐나는데 가는 데마다 규칙과 관습의 벽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참을 수 없이 증오하는 건 아버지가 붙들려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규칙과 관습들이다. 경건의 면상을 향해 정면으로 주먹을 날리는 행위는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떨어져 나오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그러니 이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키웠던 수십 년 세월의 시민세계가 몰락하고 있음을 느끼며 기뻐 날뛰는 건 당연하다.
--- p.299

사랑이란 참으로 기이하니, 예술에서도 그러하다. 사랑은 모든 교양, 지성, 비판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서로 묶어주며, 최고로 오래된 것과 가장 최신의 것을 나란히 둔다. 사랑은 일체를 독자적인 구심점으로 수렴함으로써 시간을 극복한다. 오로지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것만이 옳다. 왜냐하면 사랑은 옳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하는 까닭에, 그 앞에는 신성한 것도 미심쩍은 것도 없다. 케케묵은 구닥다리 책이건 떠들썩하게 유행하는 팸플릿이건 정신의 숨결이 느껴진다면, 사랑 앞에서는 다 똑같다.
--- p.302

너무나 위대한 것을 아주 조금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도 활활 불타오를 수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가련하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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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책을 즐겨 읽다 못해 책에 삶의 일부를 내어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책이라는 세계에 매료되어 책을 쌓아놓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말하고, 책을 쓴다. 책에 관해서 묻는다면 그들은 언제든지 눈을 빛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다. 하물며 그것이 헤르만 헤세라는 위대한 작가라면야. 헤세는 책을 고르고 읽는 방법부터 당시의 비평 트렌드와 독서 세태에 이르기까지 독서에 얽힌 폭넓은 주제를 거침없이 다룬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어쩐지 먼 이야기 같지 않다. 책이라는 무한한 세계는 그때도 지금도,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여전히 지극히 넓고 아름다운 모양이다.
- 김겨울 (작가 겸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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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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