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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원작소설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46g | 133*200*20mm
ISBN13 9788954646079
ISBN10 8954646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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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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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입동」중에서

보드라운 뺨과 맑은 침을 가진 찬성과 달리 할머니는 늙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 할머니는 집에 늙은 개를 들여 그 과정을 나날이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노찬성과 에반」중에서

이수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 있었다. ---「건너편」중에서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침묵의 미래」중에서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풍경의 쓸모」중에서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가리는 손」중에서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였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어느 한 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김애란은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이번 소설집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는 문장에서 비롯됐을 그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內〕을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입동」)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버린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집 처음에 자리한 단편의 제목은 ‘입동(立冬)’이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부서진 일상을 따라가며 우리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자리에 우리를 위치시키게 될지 모른다. 하나는 싱그럽고 맑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슬픔을 느끼는 ‘부부’의 자리, 다른 하나는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그들을 ‘꽃매’로 때리는 ‘이웃’의 자리. 그리고 불가해한 고통을 겪은 타인을 대할 때, 실상 우리의 모습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되리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다가도, 그 고통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을 때는 고개 돌려 외면해버리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이 외면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집을 닫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을 잃은 후 ‘시리(Siri)’에게 ‘고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던 ‘나’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은,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겨질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 물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는 것. 그 아득한 질문에 골몰해 있는 ‘나’는 제자 ‘지용’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은 후에야 줄곧 외면하려고 했던 어떤 ‘눈’과 마주한다. 계곡물에 잠기며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지용의 눈과 말이다. 그 마주침 이후 ‘나’는 이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이 나누어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강아지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모습에서(「노찬성과 에반」), 한 시절을 함께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의 모습에서(「건너편」)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지용이 죽기 전 움켜잡은 게 차가운 물이 아닌 사람의 온기였던 것처럼, 차가운 구(球) 안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차’는 그간 익숙하게 여겨오던 생각이 깨어질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 「가리는 손」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시차는 잘 안다고 여겼던 인물과 우리 사이에서 생겨난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라는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김애란은 그런 편견들 틈에서 때묻지 않은 깨끗한 자리로 아이를 이동시키는 대신, 또다른 편견으로 ‘어린아이’를, ‘소수자’를, ‘타인’을 옭아맸을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 터져나온 ‘나’의 탄식 앞에서, 우리는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하며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해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연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바깥은 여름』은,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에서부터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밀쳐둔 인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명료한 단어가 아닌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자 한 안간힘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작가가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소설집 편편에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배어 있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대다수의 작품들이 최근 삼사 년간 집중적으로 쓰였다는 사실, 그러니까 어느 때보다 벌어진 ‘안과 밖의 시차’를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던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는 사실은, 김애란이 그 시기를 비켜가지 않고 그 안에서 천천히 걸어나가려 했던 다짐을 내비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친밀감과 반가움, 김애란은 등장 이후 줄곧 우리에게 그 각별한 체험을 선사했다. 이곳이 비록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가파른 절벽 위라고 하더라도, 그 언어가 화자(話者)가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소수언어처럼 타인에게 가닿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막막한 상황을 껴안은 채 써내려간 일곱 편의 단편이 『바깥은 여름』 안에 담겨 있다.

│작가의 말│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회원리뷰 (204건) 리뷰 총점9.1

혜택 및 유의사항?
주간우수작 죄책감을 건드리는, 그러나 괜찮은 삶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하는 바깥은 여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s***a | 2023.07.23 | 추천31 | 댓글23 리뷰제목
나는 책을 읽으며 감정이입도 잘 하고, 잘 웃고, 또 잘 우는 편이다. 그런 나의 감정의 갈증을 잘 충족시켜 준 책이었다. 작가님이 문장을 정말 예쁘게 쓰신다.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럽고 장식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게 글 쓰는 방법은 배우고 싶었다. 단편들이 너무 좋았다. 너무나도 좋아서 내 죄책감을 건드릴 정도로. 동시에 좋은, 아니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리뷰제목

나는 책을 읽으며 감정이입도 잘 하고, 잘 웃고, 또 잘 우는 편이다. 그런 나의 감정의 갈증을 잘 충족시켜 준 책이었다.

작가님이 문장을 정말 예쁘게 쓰신다.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럽고 장식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게 글 쓰는 방법은 배우고 싶었다.

단편들이 너무 좋았다. 너무나도 좋아서 내 죄책감을 건드릴 정도로. 동시에 좋은, 아니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오랫동안 다시 보고 싶은 책이었다.

 

 

입동

: 우리는 누구에게 "꽃매"를 던진 적이 없는가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처럼 보였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 놓은 국화 같았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위로"를 너무 쉽게 던지고 있던 건 아닐까. 오히려 위로라는 명목으로 그만 울라며 그만하면 되었다고 "꽃매" 던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그만 하라는 타박으로 들릴 수 도 있었겠구나.

 

 

노찬성과 에반

: 나의 쾌락은, 타인의 삶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절벽 아래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찬성은 갓길 주변을 초조하게 서성였다. 저기, 아직 사람이 있는데.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주위에 모여든 구경꾼들은 ‘어디서 자꾸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찬성이 어른들을 향해 ‘도와달라’ 소리쳤다. 그러면 어디선가 할머니가 나타나 입술에 손을 대며 “쉿” 소리를 냈다. “네가 울면 … 손님들이 깨잖니.”

 

그 누가 10살 어린 아이를 강아지의 목숨 대신 순간의 쾌락을 선택했다고 욕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그 아이는 얼마나 가슴 깊이 지고 갈 죄책감이지는 않을까.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역설적으로 과거를 묻어야만 하는 그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그 현실을 어린 손자에게 강요해야 하는 할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그리고 돈이 얼마나 인간을 비참하게 하는가 ..

현실, 그리고 돈에 대하여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이 중요한 이유는 어쩌면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일텐데.

 

 

건너편

오래전, 이수가 현관을 나설 때면 ‘저 사람 저대로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났다.

-이수야.

-응.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 마냥. 이수는 이제 ..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읽으며 남자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지금 나의 사랑이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한 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다. 그 누군가가 그냥 먼지처럼,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를 매일같이 진심으로 걱정할 만큼.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마음이 사라져서 뿐일까. 그때와 상황이 달라져서는 아닐까. 그 사람과 내가 서로 다른 세상에 있어서, 우리의 현실적인 차이가 커서, 내가 그 사람에게 아까워서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이 정말 많이 고민했던 문제일 것 같다. 그치만 이러한 현실적인 사랑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지 않을까.

 

 

 

풍경의 쓸모

: 현재를 부끄럽지 않은 순간들로 채우는 것이 미래의 나를 구성한다.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작품에서 ‘풍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작품을 읽고 난 직후에는 깨닫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선명하지 않을 뿐더러 내가 정의한 게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내린 해답은 작가는 '풍경'을 통해 사치와 현대 문물, 행복, 과거, 그리고 상반된 진실을 가리는 허울인 현실 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는 지 궁금하다.

다만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건 현재의 순간이 내 얼굴에 스며들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비록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겠지만 평생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가리는 손

: 나에게 소중한 이가 나의 기대와는 다른 사람이었을 때

 

가끔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펴안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낸 연결돼 있는 듯해.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본 터라 걱정됐다.

본문 중

SNS에 대한 화자의 생각이 내 생각과 너무나도 유사해서, 오히려 더 깊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아이 입가에 천진한 흥미랄까, 아는 체랄까 묘한 기운이 어린다.

-틀딱?

그리곤 아차 싶은지 재빨리 미소를 거둔다. 마치 소중한 비밀처럼.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보물인 양 얼른 감춘다. 나는 아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아이가 이상한 말을 뱉어서가 아니라 방금 저 표정을 이미 어디선가 한 번 본 것 같아서.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본문 중

이 부분을 정말 열심히 읽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타인에게 상처받을까 걱정하던 나의 소중한 존재가 도리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임을 마주하면 어떡해야 할까. 그리고 그 대상이 혼자 애틋하게, 그러나 넘치는 사랑으로 키웠던 내 아이라면, 아이의 부족함을 마주했을 때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보여 주었다고 믿은 세상 외에 다른 세상에 아이가 존재함을 깨달았을 때에는 바로잡아야 할까, 아니면 그 아이의 인생이니 존중 해 주어야 할까.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명제의 허용 가능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내가 아이를 가져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었다.

실제로 독서 모임에서도 어머니들의 최애 소설 중 하나라고 한다 ㅎㅎ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시리가 되물었다.

-어디로 가는 경로 말씀이세요?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죄송해요. 잘 못 알아들었어요

-…

시리가 사용자의 침묵에 호응하는 일은 드문데 이상했다. 그것도 연거푸 세 번이나 그러는 게. 어쩌면 저 먼 데서 ‘누군가의 상상을 상상하는’ 인간이 이런 일을 예상하고, 프로그램 안에 ‘걱정’을 이식해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누군가의 상상을 구현하는 일을 하는 나에게, 이 말을 꽤 깊이 와 닿았다. 나도 저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개발자가 되어야지.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가장 여운이 깊은 단편이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에 배치하지 않았을까

정말 많이 이입하며 읽었다. 나는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를 구하다가 죽었으면 그냥 화자처럼 그를 원망했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히 그걸 믿고 있었고, 남겨질 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에 정말 많이 화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그의 선택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한 것은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에 뛰어 든 것이었으니. 오히려 원망해야 할 것은 목숨을 저울질 한 내 부끄러운 신념 아니었을까.

 

 

 

3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1 댓글 23
타인을 향한 시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추**방 | 2022.07.05 | 추천18 | 댓글20 리뷰제목
   지난달 23일부터 내리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찜통 더위가 찾아왔다. 내겐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읽기라 어떤 책을 읽을까 거실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제목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었다.  몇 해 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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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부터 내리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찜통 더위가 찾아왔다. 내겐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읽기라 어떤 책을 읽을까 거실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제목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었다.

 몇 해 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 구입을 했었는데 한창 독서 중인 책을 완독한 후 읽겠다고 잠시 미뤄두었던 것이 책꽂이에 오랜시간 머물게 만들었다(이런 책이 한 둘은 아니지만). 책 제목에 '여름'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요며칠 날씨가 무덥지 않았다면 <바깥은 여름>은 좀 더 오랜시간 만나지 못 했을 것이다.

 

 바깥은 여름>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7편이 실린 단편소설집이다. 

 각 단편들의 주제는 사뭇 다르지만 나와 다른 시차의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책이라 생각이 든다. 단편집의 제일 처음에 자리한 「입동」은 오랜 고생 끝에 장만한 이십사 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가족의 행복한 삶을 꿈꾸던 젊은 부부가 불의의 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나서 찾아온 아픔과 상실, 타인의 시선을 작가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풀어간 단편이다.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목숨을 잃은 아들. 아들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을 차마 건들지 못하는 부모, 그리고 아들이 죽은 후 받은 보상금으로 한 몫 잡으려는 건 아니냐는 타인의 시선(아빠의 직업이 보험설계사라는 이유로). 그리고 세상을 떠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애절한 그리움... 

 두 딸을 둔 아빠로서 어린이집에서 잘못 배송된 복분자 원액이 터져 벽지를 엉망으로 만드는 바람에 다시 새 벽지를 바르다가 발견한 쓰다만 아들의 글씨에 울음을 터트리며 부들부들 떨던 부부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2014년 4월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달픈 심정을 바라보게 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 p.21

 

 「건너편」은 오래된 연인들이 겪을 수 있는 이별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노량진 수험생 시절 교회에서 수험생을 위해 밥을 제공하는 자리에서 만난 이수와 도화. 도화는 재수 끝에 경찰관이 되어 교통정보센터에서 도로별 상황을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수는 6년이나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으나 낙방을 하고 몇몇 직장의 인턴생활을 전전하다가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다.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며 동거를 하게 된 이수와 도화. 시간이 흐르면서 도화는 이별을 준비하지만 매번 일이 생겨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이수는 마지막으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회사를 관두고 전세금에 손을 댄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이수는 아는 형님이 한다는 횟집을 찾아 노량진수산시장으로 도화를 데리고 가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은 이수와 도화의 8년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된다.

 대학 1학년 때 주위의 부러움을 가득 안고 연애를 시작한 CC가 있었다. 당시 남자 동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여자 동기는 의외(?)의 남자 동기와 CC가 되어 오랜시간 연애를 했는데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 모임에서 둘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기들 이야기로는 성격차이로 헤어진 것 같다고 했지만 오래된 연인의 이별이 대개 그러하듯이 단점도 가릴 수 있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이상 남지 않아서 이별하지 않았을까?

 

- 이수야.

- 응

-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냐.

-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 .......... - p.115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젋은 작가상 수상작으로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가 목숨을 살렸던 제자의 누나 편지를 받고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하는 자신을 두고 제자를 구하기 위해 계곡물로 뛰어든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는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언니가 한 달간 집을 비우는 동안 머물 생각이 없냐는 부탁에 홀로 스코틀랜드로 몸을 싣는다. 에든버러에서 아내는 시간을 아끼거나 낭비하지 않고 도랑 위 쌀뜨물 버리듯 그냥 흘려보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내는 남편이 살아생전 주말마다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기술인 '시리'에게 짓궂은 질문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시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게 된다.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시리가 되물었다.

- 어디로 가는 경로 말씀이세요?

- ..........

- 어디로가고 싶으신거에요?

- ............

- 죄송해요. 잘 못 알아들었어요.

- ............ -P.259

 

 스코틀랜드에서 유학간 대학동기를 만난 후 계획보다 일찍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구했던 제자의 누나가 쓴 편지를 받고서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살려주세요.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돌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 당신을 보낸 후 줄곧 보지 않으려 한 눈이었다.(중략)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 P.266

 

 2001년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이 선로에 떨어진 생면부지의 일본인 취객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일은 소설 속 문장처럼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지금도 어느 곳에선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할 겨를 없이 숭고한 의(義)를 펼치는 의사자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 밖에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찬성이가 노견인 에반을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에반의 병색이 심해지자 안락사를 해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혼자가 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침묵의 미래」에서는 사라져가는 언어들의 마지막 화자들이 가상의 강대국이 만들어놓은 '소수언어박물관'에 모여 박제처럼 생활을 하다가 하나 둘 사라져가는 모습을 영(靈)을 통해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풍경의 쓸모」에서는 교수 임용을 바라보는 시간강사 화자가 임용에 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곽교수의 난처한 상황을 도와준다. 이 후 교수 임용을 고대하며 추운겨울 따뜻한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곽교수의 반대로 교수 임용에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리는 손」에서는 아빠 없이 한국인 엄마와 단둘이 사는 다문화아동인 제이가 십대 무리와 실랑이 끝에 죽은 노인 폭행 사건의 목격자가 된후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면서 겪는 모습을 통해 너무나 손쉽게 생각했던 편견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오늘 바깥은 곳곳에서 소나기가 내렸지만 최고 기온이 30도가 웃돌 정도로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바깥은 여름이었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는 다른 시차의 계절이었을 것이다.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 무더운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지만 고대하던 교수 임용에 떨어진 정우, 반려견 에반을 잃고 혼자가 된 찬성이,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이수와 헤어진 도화...

 <바깥은 여름>에서 김애란 작가가 담아낸 7편의 단편들은 타인의 이야기였지만 그저 소설 속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타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소설 속 타인들의 삶은 저마다 녹록지 않았겠지만, 소설 밖에서의 타인들의 삶은 시원한 여름을 맞이했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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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바깥은 여름》 시간은 상실된다, 그러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지* | 2017.08.11 | 추천15 | 댓글1 리뷰제목
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그들과 내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요즘 유행이다 싶은 것들, 혹은 이미 유행도 한참 전에 지나서 이제는 다들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내가 전혀 모르고 있는 건 당연하고, 그들에겐 소소한 일상들이 내겐 너무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 투성이였으니 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
리뷰제목

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그들과 내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요즘 유행이다 싶은 것들, 혹은 이미 유행도 한참 전에 지나서 이제는 다들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내가 전혀 모르고 있는 건 당연하고, 그들에겐 소소한 일상들이 내겐 너무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 투성이였으니 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생활이 3년 정도 되었는데,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어느 새 3억 광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리 볼 속 겨울' 처럼,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가 바로 내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입동' 중에서

 

 입동에는 아이를 잃어 버린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지난 봄, 오십 이 개월이 된 아이를 잃어 버린다. 아이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고, 막을 수 있었다고 자책하기에는 너무도 사소한 사고로 말이다. '가끔은 열 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그리고 남겨진 그들 부부에게 시간은 그렇게 멈춰 버린다. 누가 세상에서 사라졌든 말든,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들에겐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그대로 였다. 그들만 빼고 지구가 자전하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제자리에 멈춰 선 그들이 바라보는 바깥은 어땠을까. 이제 삼십이 개월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그냥 후루룩 읽어 버릴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매일 같이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그 순간에 그곳에 있던 나의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때 그 장소에 있지만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어떻게든 그 순간을 모면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한시도 잊을 수가 없는 그 생각과 감정들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이들은 부재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가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그 순간에 세상이 끝난 것만 같겠지만, 시간은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고 우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으니 말이다. 상실과 결핍의 순간보다, 나는 그 이후의 시간들이 더 마음이 아팠다. 아침은 매일 같이 우리를 찾아오지만 어제와 같은 아침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잃어버린 것은 영원히 되돌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마저 초월한 그 무엇 같은 건,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풍경의 쓸모' 중에서

 

아이와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매 순간 셔터를 누르게 된다. 자주 어딘가 서보라고, 여기를 보라고, 웃으라고 말하며 순간을 붙잡아두곤 한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고 할 정도로 아이가 금방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좋은 순간, 행복한 상황은 금방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순간을 남겨 두지 않으면 시간과 함께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라는 사실이 가끔은 슬프다. 그냥 그 순간을 오롯하게 느끼고, 호흡하고, 눈에 담으며 즐겨도 좋을 텐데.. 나는 언제나 풍경은 보지 못하고 그 속에 서 있는 아이만 바라보고 만다. 그렇게 찰칵하는 동작과 함께 순간은 과거가 되어 버린다.

 

 

풍경의 쓸모에는 가족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더블폴트의 삶을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강사인 정우는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중 교통사고를 낸 대학교수 대신 가해 운전자가 된다. 그런데 그는 정우의 교수 임용에 좋은 말을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임용을 강하게 반대한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 재혼을 한 아버지는 돈이 필요하다고 그에게 연락을 해온다.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사진이라는 모습으로 행복한 순간을 연출하는 것이, 어차피 매순간 뭔가를 잃어버리게 마련인 삶 속에서 그나마 기대와 긍지를 담고 있는 거라는 걸 안다는 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 던지게 돼 있거든.

                                                                                       -'가리는 손' 중에서

 

김애란의 이번 작품집에 등장하는 이들은 계절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상실과 결핍의 슬픔을 견디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바깥은 여름인데 여전히 겨울을 살고 있는 삶은 계절을 느낄 수 없다. 너무 이른 아이의 죽음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사는 부부, 타인을 위해 죽은 남편을 이해해야 하는 아내, 가족 같은 개가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혼자 힘으로 안락사를 준비하는 소년 등.. 그들 모두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과 뜨거운 열기 가득한 여름이라는 계절은 감당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지나가고 인생은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누군 가에게는 어느 한 순간부터 그저 상실된 시간, 멈춰진 삶인 것이다.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 알콩 달콩 가족을 이루는 꿈을 꾼 적이 없다. 연애를 할 때도 당시에는 죽고 못 살만큼 좋았던 그와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그저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현재에 충실했을 뿐. 그랬던 내가 어쩌다 보니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일상에 닳고, 육아에 지쳐서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그리워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김애란의 신작을 읽으면서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선택들과 내가 잃어버린 결핍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 혹은 앞으로 손에 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 버린 것, 지금은 손에 없는 것,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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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412건) 한줄평 총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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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감정의 디테일이 최고네요
3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3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나 | 2020.07.14
평점5점
가슴이 먹먹~ 어느 한 쪽 그냥 읽히지 않는 소설..오랜만에 푹빠졌습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YES마니아 : 로얄 h******m | 2018.11.08
평점5점
살랑이는 바람인줄 알았는데 완독하고 났더니 폭풍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망* | 20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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