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은 이런 접근방법의 차이를 바빌로니아인 유형과 그리스인 유형이라고 분류했지만, 역사상 다른 많은 인물과 운동도 이와 비슷한 철학적 대립을 형성해왔다. 그리스인들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경우다. 플라톤은 물질세계의 다양한 현상의 밑바닥에는 영원불변의 패턴이 있다고 믿었다. 머레이 같은 물리학자가 시도한 것은 이런 패턴을 수학적 용어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플라톤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에게는 자연의 이상적인, 즉 추상적인 묘사는 신화일 뿐이었다. 어쩌면 편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 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파인만과 마찬가지로 자연 자체를 숭배했지 그 밑에 깔려 있다고 하는 추상을 숭배하지는 않았다. --- 「그리스인과 바빌로니아인」
그는 나에게 자료를 건네더니 내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자기 일로 돌아갔다. 그는 나에게 해줄 말은 이미 다한 것 같았다. 심지어 눈을 마주치는 시간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연구실로 돌아와 마음의 상처를 다독거렸다. 콘스탄틴이 들리더니 슈워츠의 최신 제자가 되는 데 성공했냐고 조금 지나치게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손짓이었다. 그래도 그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논문들이 그로부터 몇 년 후 20세기 이론물리학의 돌파구를 연 가장 유망한 업적 가운데 하나로 전 세계에서 숭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우리 둘 다 몰랐다. - 『가망 없는 문제 풀기』 중에서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 영감을 준 무지개의 가장 큰 특징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가 물었다. “어, 무지개는 사실 원뿔의 일부인데, 스펙트럼의 색깔들을 가진 호로 보이죠. 물방울들이 관찰자 뒤의 햇빛을 받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물방울 단 하나를 생각함으로써 이 문제를 분석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적합한 기하학을 적용한 것이죠.” “자네는 이 현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놓치고 있군.” 그가 말했다. “네? 그럼 그의 이론에 영감을 준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일세.” --- 「선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50여 년 생활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었음에도, 파인만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명랑하고, 장난스럽고, 짓궂고, 호기심 많고 게다가 항상 재미를 잃지 않았다. 머리숱을 보태고, 주름 몇 개만 지우고, 건강을 주면, 그는 50년 전 브루클린에서 불쾌하게 구는 운전사들을 혼내주기 위해 이탈리아어로 가짜 욕을 퍼붓던 파인만 그대로였다. 파인만 같은 큰 어린 아이와 어울리다 보면 우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된다.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애정이 없는 길을 따라 간다든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나의 어린 두 아들처럼 파인만은 그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정직했다. 파인만과는 반대로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타협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엇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나의 삶에 무엇이 의미를 줄 것인가? --- 「물리학을 할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