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결국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인 출신 아나키스트 박열과 동지적 사랑을 확인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이때 그녀와 박열과의 동거 계약서가 재미있다. 1. 동등한 입장에서 동지로서 동거한다. 2. 아나키스트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한쪽의 사상이 타락하여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동거생활을 청산한다. 이렇게 가네코 후미코는 뼈 속까지 사상에 충실한 여자였고,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육체적으로 일치되는 완벽한 연애를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박열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박열의 아나키즘에 근거한 시를 보고서부터다. 그녀는 그의 시를 보고 그를 찾아갔던 것이다. ---「동거 계약서」중에서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먼저 박열의 동료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뭐든 우리 두 사람을 비웃어달라고. 이것은 두 사람의 일이다. 다음으로 재판관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부디 우리 둘을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더없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령사의 대역사건」중에서
나는 일본에게 억압을 당하고 있는 조선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천황, 황태자, 황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증오와 반역의 마음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천황에 대한 존경심은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본의 천황과 황태자는 하나의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가련한 희생양이자 제분기에 불과하다. 특히 조선의 민중들은 천황과 황태자와는 한 하늘 밑에서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존재를 지구로부터 추방해 버리는 것은 조선의 민중들을 감격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일본 국민에게도 해방이 될 것이다. ---「천황제에 대한 박열의 반대 투쟁」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떨쳐버리는 용감한 혼을 가져야한다. 나는 당연히 용감한 혼을 가졌다. 세상에 어떠한 것을 정말로 무서워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나는 놈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들이 내 목을 단두대에 걸 수는 있을지언정 내 손으로 뿌린 씨앗을 태워 부술 순 없을 것이다. 일본에게 입힌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다. 내 몸은 단두대에 한 방울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수는 있으나 내가 뿌린 씨앗은 후세에 남아 딱딱한 지각을 깨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종국에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내가 일본제국에 준 상처는 영원히 일본인의 몸에 남아 심장을 썩게 해서 마침내는 제국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나는 승리자다. 영원한 승리자다. ---「박열의 나의 선언」중에서
이때 박열은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변호사 후세 다츠지를 통해 일본 사법당국에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나 박열은 피고로서 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다. 재판관은 일본의 천황을 대표하여 법정에 서는 것이므로, 나는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법정에 서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재판관이 법복을 입고 법정에 나오는 이상 나도 조선의 예복을 입게 하라. 둘째, 나는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강도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법정에 서는 것이므로 나의 이러한 취지를 먼저 선언하게 하라. 셋째, 나는 조선말을 쓰겠으니 통역관을 세워라. 넷째, 일본의 재판관이 일본 천황을 대표하고 나는 조선 민족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내가 앉을 자리를 재판관의 앉을 자리와 같게 하라. 이와 같은 조건을 제시한 박열은 재판부와 치열하게 대치하면서 마지막 재판 준비에 혼신을 다했다. 그리고 재판 날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