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인생이 어떤 원리로 흘러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봄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늙은 개의 입에선 비린내가 나고 눈곱이 많이 생기는 새끼의 건강은 좋지 못하다는 것을 ‘그냥’ 아는 것처럼, 받아들일 뿐이다. 살아 있는 것은 왜 늙는지, 왜 죽음을 피할 수 없는지 답을 알 수 없다. 그저 늙은 동물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처럼 동물도, 늙으면 휜다, 모든 면에서. 익은 모과에선 향이 나고 오래된 모과는 기어코 썩는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아는 것. 어떤 사랑은 죽지 못한다. --- p.24
첫눈에 반하는 일은 처음 만나는 존재에게 한 방 ‘얻어맞는 것’과 같다. 당신이라는 이미지에 내 온 존재를 얻어맞고, 낯선 이미지에 ‘감염’되어 본래의 내가 흐려지거나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때문에 사랑에 빠진 자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과 달라진 자다. 당신이 눈앞에 보이면 언제라도 ‘변질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려 세포 하나하나가 준비하고 있는 자, 존재의 근육이 유연해진 사람이다. 사랑이 침입했을 때 즉시, 온몸에 당신이 전이되어 ‘타자로 감염된 존재’가 되는 사람. 그래서 사랑에 빠진 자는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기 쉽다. --- p.28∼29
외로움은 충일함의 반대편에 서 있는 행려병자다. 크리스마스 은종이 매달린 창가 앞을 걸어가는 거지다. 코끝이 빨간 아이가 뛰어노는 마당, 구석에 숨어 있는 늙은 쥐다. 죽을지 살지 알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얼굴이 퍽퍽해지는 거다. 외로움은 눈 속에서 늙는 일이다. 한 오백 년. 휘발되는 사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연인이다. 큰 집에 사는 거다. 갈 방이 많은 것. 또는 없는 것. 당신과 층위를 달리해 자고 깨는 것. --- p.39
프리다 칼로는 여러 번 자기 이마에 디에고 리베라의 눈이 박힌 모습을 그렸다. 혹시 그녀도 이마에 리베라의 눈을 심어두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을까? 욕망의 카니발! 맹목적인 사랑은 결국, 서로를 삼켜, 대상을 자기 안에 새롭게 세우려는 시도다. 헛된 시도. 그러니 사랑은 수없이 반복되는 ‘전쟁과 평화’다. 전쟁, 평화, 전쟁, 평화. 이 반복 사이에서 낡아가는 것. 시인 김수영이 그랬던가.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 뿐”이라고. --- p.47∼48
사랑한다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먹이고, 입히고, 살리고 싶은 마음과 행동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보살피고자 하는 욕구이지, 보살핌을 받으려는 욕구가 아니다. 누군가를 끝내 살리지 못했다면, 그를 먹이고 입히고 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당신이 필요한 나를 사랑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 결국 당신은 ‘내 앞의 당신’이고, 나도 ‘당신 앞의 나’다. --- p.60∼61
물론 프리다 칼로는 병적이었어. 병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사랑을 지켰지(사실 누구에게도 이런 사랑을 하라고 추천하고 싶지 않구나). 그녀가 사랑한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의 천재 화가지만 사랑을 돌보고 가꾸는 면에선 저능아였다고 생각해.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을 모르는(구제불능일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었잖니. 그게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지. 찔린 사람에겐 피가 나고, 다친 사람은 병들고, 스러지는 걸. 프리다 칼로는 이 모든 것을 작품으로 얘기했지. 사랑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 얼마나 커다란지, 포기할 수 없는지, 자신을 상처 입히는지, 슬픈지, 붓을 들고 표현했어. 나는 그녀가 ‘고백’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는 누구에게 고백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자신의 상태를 납득시키려고 ‘표현’했을 뿐이라고 생각해. 누구를 위해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없거든. --- p.90∼91
면접을 보고 나와 고개를 땅에 처박고 돌아오는 길. 2호선 전동차 안에서 눈물이 났다. 전동차는 햇빛 찬란한 지상을 달리는데, 주책없이 왜 눈물이 났을까. 햇빛으로 반짝이는 한강을 보니 서러웠다. 빛나는 한강이 거울 같아서. 내 인생의 현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같아서, 코가 빨개지도록 울었다. 그때 내가 가진 것 중 빛나는 것은 슬픔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작은 눈이 ‘단추가 들어가다 끼일 만큼’ 작아질 때까지 주룩주룩 울었다. 사람들을 등지고 울었지만, 누구든 보았을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대낮에 왜 저럴까 싶었겠지. 지금도 길에서 울고 가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길에서 흘렸던 내 눈물들이 한꺼번에 내게 달려드는 것 같다. 길에서 우는 것. 고아처럼 문밖을 서성이며 우는 것. --- p.128∼129
정말이다. 우리를 강제하고 처벌하는 것이 목적인 질문이, 세상에 있다. 그들의 머릿속을 ‘마땅히’라는 부사가 지배한다. 모든 인간에게 ‘마땅한’ 역할을 부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다가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죄’를 묻는 사람들. 혹시 나는 아닌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 마땅히? 그런 게 어딨어. ‘마땅히’란 부사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끊임없이 걸치려 하는 옷이다. 없는데 있다고 믿는 것! 그것! --- p.139∼140
보티첼리의 ‘비너스(비너스의 탄생)’는 한 손으로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음부를 가린 채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다. 이 자세는 미술 작품에서 많이 쓰이는 자세로 ‘정숙한 비너스Venus Pudica’라는 뜻이다. 탄생의 순간 미의 여신은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즉 주변을 의식하며 태어난다. ‘정숙한 자세’로! 세상이 여 자에게 요구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 p.157
어떤 순간에도 “이게 나다.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주는 모욕과 멸시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궁극적으로 의지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 제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 해도,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은 예술이요, 예술보다 위에 있는 것은 나의 가치를 긍정하는 자세다. --- p.190
프리다 칼로가 ‘특별히’ 불행했다면, 그 불행의 특별함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사랑의 실패에 괴로워하다 죽은 사람의 편에 서지 않았다. 사랑의 실패를 견디고 견디어서, 그녀는 드디어 ‘실연의 실패’에 도달했다. 물론 나는 실연의 실패가 사랑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견디는 자는 실패할 기회를 잃은 자, 견딤으로써 열반에 든 ‘약한 강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마음껏 실패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울고 불며 끝내지 도 못하고, 무지몽매하게 견디는 자. 사랑을 꽉 쥔 주먹을 펴지 않는 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랑을!
---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