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때, ‘그’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학교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방법으로. 나는 어느새 십 대에 봤던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고, 그 유치한 대사들은 내 현실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았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 p.8
“잠깐 기다리라고…!” 나를 향해 쏟아지는 녹색 눈동자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녹색이었다. 이제야 그 녹색의 주인이 하딘이라는 걸 알았다. 아니, 이 순간까지 하딘과 한 번도 제대로 눈을 마주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그윽한 녹색 눈동자.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 p. 37
결국 이성이 지고 말았다. 무방비 상태인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 입술이 하딘의 입술에 닿자 그가 얕게 숨을 들이쉬는 게 느껴졌다. 하딘의 입술은 내가 상상했던 딱 그 맛이 났다. 그가 입을 열고 키스하자 그의 혀에서 옅은 민트향이 났다. 그의 따뜻한 혀가 내 입 안에서 움직였다. 피어싱에서 서늘한 느낌이 났다. 지금껏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그의 손이 달아오른 내 볼을 감싸 쥐었다. --- p.76
나는 노아를 사랑한다. 늘 그래왔다. 하지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평생을 함께 할 반려로서 그를 사랑하는 건가. 아니면 그가 안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랑 비슷한 그가 편했던 건 아닐까. 그는 늘 내 곁에 있어주었다. 우리는 이론상으론 완벽한 커플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하딘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이 감정을.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서로의 몸을 탐닉할 때의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딘이 나를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아득함 같은 거다. 그가 아무리 나를 화나게 만들었대도 절실하게 그를 보고 싶어하는 나 자신의 모습 같은 거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내 머릿속으로 쳐들어오는 그의 모습 같은 거다. --- p.203
“너도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많이 알고 있잖아.”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는 나를 안다. 진짜 테사의 모습을. 엄마나 노아에게 보여줘야만 했던 ‘나’인 척하던 테사가 아니라. 나는 하딘에게 모든 걸 다 얘기했다. 아빠가 떠나버린 것, 엄마의 비난과 슬픔,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내 안의 공포까지. 하딘은 내가 얘기를 해준 게 기쁜 듯했다. 아름다운 얼굴에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p.381
문자 그대로, 심장이 멈춰버렸다. 심장 박동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그는 훨씬 더 개새끼다. 귓가는 멍멍해졌고, 심장은 빠르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몰리는 뻐기는 듯 나를 쓱 보더니 하딘에게 엉겨 붙었다. 그에게 일었던 분노는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자리 잡았다. 뜨거운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