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제왈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감정과 욕망은 의지로 억누른다고 해서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현자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 시달리며 지금 당장에 급급한 평범한 처지라고 해도 감정과 욕망이 들끓을 때 잠깐 성찰하는 시간, 자신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관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선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잠깐 분리하는 것이다. 매몰되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섰을 때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바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의 행동이 바른 도리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따질 수 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면 그 일에서 떠나야 한다. 부끄럽지 않다면 과감하게 계속하면 된다. 성인이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휘둘리지 않는 연습을 차근차근 실천한다면, 적어도 어제보다 나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것이다. _〈구속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중심이 있다〉 중에서
정약용은 신독에 대해 이렇게 의견을 달았다. “신독이란 자기 홀로 아는 일에서 신중을 다해 삼간다는 것이지, 단순히 혼자 있는 곳에서 행동을 삼가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방에 홀로 앉아서 자신이 했던 일을 묵묵히 되짚어보면 양심이 드러난다. 어두운 곳에서 스스로를 반추했을 때 부끄러움이 드러난다는 것이지, 어두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감히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의 악은 늘 사람과 함께하는 곳에 있다. _〈당당함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에서 나온다〉 중에서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자절사 무의 무필 무고 무아 ‘아집이 없다(무아毋我)’는 위와 같은 모든 일들을 자신의 물적 정신적 이익을 위해서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아집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또한 공적인 이익 즉 대의를 위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욕심과 탐욕을 앞세우기에 크게는 나라, 작게는 작은 조직에서도 덕이 되지 못한다.무엇보다 아집이 강한 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스스로의 삶이 공허하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삶의 목적을 두는 사람은 끝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 속의 시지프스와 같이 채워지지 않는 갈망 속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형벌이다. _〈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게 되면 스스로를 버리게 된다〉 중에서
君子 反情以和其志 比類以成其行군자 반정이화기지 비류이성기행 학문을 위해서는 무언가 거창한 것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공부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하고, 시간을 들여 상담도 받는다. 번잡한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배우려고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하지만 한번 마음을 차지한 나쁜 기운들은 쉽게 비울 수가 없다. 설사 힘들게 비우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방심할 수 없다. 곧 더 강력한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바로 나쁜 것들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조금씩 좋은 것을 채워나가면 충분하다. _〈지키고 싶다면 벽을 세우지 말고 속을 채워라〉 중에서
孟子曰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맹자왈 대인자 불실기적자지심자야 《맹자》 〈이루 상〉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스스로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스스로 포기한 자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 자포자기한 자는 다른 누군가나 어떤 환경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포기하고 자기를 버린 자다. 승자뿐만 아니라 패배자에게도 자신이 왜 실수했으며 무엇이 모자란 데 대해 변명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스스로 포기하고 링 위에 올라 주먹을 섞지도 않은 이에게는 변명할 구실도, 다른 무엇을 탓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_〈경험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라〉 중에서
《장자》 에는 정나라의 재상이었던 자산과 다리가 없는 신도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도가와 함께 배우는 것이 부끄러웠던 자산은 신도가에게 불구인 처지인 주제에 자신처럼 높은 지위의 사람과 어떻게 함께 공부할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며 그만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신도가가 말했다. “몸이 불편한 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제게 발이 없다고 비웃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공부하며 제가 ‘불구’라는 자책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저와 함께 공부하며 마음으로 사귀는 데에도 불구하고 오직 겉모습에서 저를 찾고 있군요.” 신도가의 말을 듣고 자산은 자세를 고치며 말했다. “자네, 부디 그만해 주게나.” 자산은 정나라의 명재상으로 명성이 높았다. 《논어》 〈공야장〉에는 공자가 자산을 극찬했던 말이 나온다. “자산은 군자의 도 네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처신에는 공손하고, 윗사람을 섬길 때는 공경스러웠고, 백성의 살림에는 은혜롭게, 백성을 부릴 때는 의에 맞게 했다.” 이처럼 공자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사람도 마음이 ‘불구’였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마음을 지켜나가기란 쉽지 않다. _〈자신에게만 너그러울 때 인간은 괴물이 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