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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

적의 벚꽃

[ 양장 ]
왕딩궈 저 / 허유영 | 박하 | 2018년 12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9 리뷰 27건 | 판매지수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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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2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394g | 115*188*30mm
ISBN13 9788965707301
ISBN10 8965707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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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서운 침묵은 어디서 왔을까? 내가 기억하는 짧은 유년기를 가득 채운 건 수없이 다녔던 이사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여덟 번이다. 매번 도망치듯 떠나 완전히 낯선 곳으로 옮겼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자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면 깊이 잠드는 게 무서워 차가운 바닥으로 옮기곤 했다.
나중에야 그것들이 모두 슬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슬픔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다. 꼭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만 슬픔인 것은 아니다. 슬픔이 침묵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고집, 두려움, 외로움이 군대에서 한꺼번에 나를 놓아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겐 아직 슬픔이 남아 있다. 털어놓지 않은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p.10

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연애가 허락된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방금 전 그 길이 첫 번째 길이었다고 해도 그다음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런 확고한 생각이 조금 황당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길 위에서 어떤 구간이 가장 옳은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사랑도 원래 영감처럼 아슴아슴 떠다녀 붙잡기 힘든 것이다. 영감이 찾아오지 않으면 머릿속은 죽은 바다나 다름없다. 그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야만 외로운 세상도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도가 계속 밀려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뿐이라도 파도가 치는 그 순간을 담아둘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큰 파도가 지나가면 그 여파가 오랫동안 맴돌게 내버려두고 뭍으로 올라가야 할 때 배를 잘 묶어두기만 하면 된다. --- p.99

내가 너의 순수함을 사랑하는 건 운명이야. 네가 예뻐서도 아니고, 남자의 본능 때문도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건 비가 쏟아지던 그날 오후 처음 본 내게 손짓을 했던 너야. 특별할 것 없는 그 동작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어. 넌 나를 가족처럼 생각했던 거야. 너 자신도 몰랐겠지만. 구부러진 작은 손가락. 천사 만 명이 하나씩 떨어뜨린 만 개의 깃털 중에 유일하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깃털 하나가 그 순간 내 인생 속으로 날아 들어왔어 --- p.122

군고구마 두 개를 먹었다. 탄 껍질을 벗겨내지 않아 텁텁하고 씁쓸했다. 아버지와 이웃의 논에서 고구마를 구워먹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지푸라기를 줍고 나는 흙을 쌓았다. 흙을 봉긋하게 쌓아올린 뒤 지푸라기에 불을 붙여 그 속에 집어넣었다. 흙무더기가 불에 충분히 달궈지길 기다렸다가 구멍을 내고 그 안에 고구마를 넣었다. 고구마를 다 넣고 난 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며 나와 함께 논두렁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아버지의 짧은 인생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 위로 쓸쓸한 석양이 내려앉았다. 그 후 반년도 안 되어 아버지는 연못으로 들어갔다.
(…)
나의 모든 과거 일은 처음부터 그다음까지 다 얘기해주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버지와 논에서 나올 때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했고 집에는 우리가 돌아와 불을 켜주길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다음엔 하늘이 칠흑처럼 깜깜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내 머릿속을 영원히 침식해버릴 만큼. --- p.210~212

머리를 얼마나 오래 길러야 그 불행의 그림자를 온전히 가릴 수 있을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울컥 울음이 터졌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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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 천팡밍 (문학평론가)
그의 펜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사물을 넘어서 일상의 한 찰나를 신비롭고 위대한 순간으로 바꾸어놓는다.
- 저우펀링 (작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왕딩궈의 언어 속 행간에 스며들어 있는 그 고귀함이다. 그건 이 세상에 대한 의로운 정(情)이자 품격이며 절개이자 지조다.
- 천례 (작가)
왕딩궈의 펜 끝에서 오랫동안 대만소설이 조롱받던 두 가지 요소가 누명을 벗었다. 하나는 ‘리얼리즘’이고 다른 하나는 ‘비정(悲情)’이다.
- 양자오 (문학평론가)
왕딩궈의 글은 한 발은 천국을 딛고 다른 한 발을 지옥을 딛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언제나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를 오간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놀라울 만큼 속물적이지만 또 변치 않는 것에 집착한다.
- 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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