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나’라는 어둠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종종 텔레비전을 끄고 휴대폰도 치워두고 오랫동안 사람도 만나지 않은 채 책을 본다. 그리고 가끔은 책도 덮고 햇살을 즐긴다. 그 밝은 자연의 햇살 속에서 역설적으로 ‘나라는 어둠’이 드러난다. 표백된 인간이 쉴 수 있는 휴식처다. 그 휴식처는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얻어지는 것 같다. --- p.44
여행을 하며 늘 도피할 곳을 찾아본다. 완전히 이주해서 평생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한적한 곳에서 ‘한철’을 보내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 그곳이 꼭 오키나와일 필요는 없다. 국내일 수도 있고, 오지일 수도 있고, 평범한 도시일 수도 있다. 어딘가에 숨어 은둔생활을 하는 꿈은 나의 숨구멍이다. --- p.61
빅터 프랭클은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미라고 말한다. 인간은 초월적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초월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3년간 지옥을 경험하고 이런 말을 하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신뢰한다. 그는 ‘삶의 의미에 대해 묻지 말고 거기에 대답하라’며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니 니체가 말한 것처럼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 p.98
이제 나도 육십 대의 문턱을 넘어섰다. 대책 없던 방랑과 방황의 길을 걸은 지 30년째다.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고 건강도 기울어지며 내리막길을 걷는 기분이 드는 지금,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가 소설에서 전하려는 메시지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굴곡진 삶 때문이다. --- p.112~113
이 책을 덮고 나면 가슴을 울리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양탄자를 파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 그리고 모모도 강조하는 말.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 것 같다. 사랑밖에 없지 않은가? 신에 대한 사랑이든, 부모에 대한 사랑이든, 자식에 대한 사랑이든, 연인에 대한 사랑이든, 이웃에 대한 사랑이든, 동물에 대한 사랑이든,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소외감, 불안감,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는 것 같다. --- p.138
오르한 파묵이 끝없이 글을 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가 말한 두 번째 세계에서 온 게 아닐까? 첫 번째 세계는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이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돈을 버는 세계다. 그 세계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인간을 종종 효율성과 경쟁 속에서 지치게 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고통을 주기도 한다. 또 뻔한 궤도 위의 삶이기에 권태롭기도 하다. 반면에 두 번째 세계는 어린이의 동심, 상상, 모험과도 같은 ‘쓸모없음’의 세계다. 그 쓸모없는 두 번째 세계가 상처받고 헐벗은 그의 첫 번째 세계를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 p.165
--- p.그녀는) 편지를 보내기 위해 봉투와 우표, 그리고 접착제를 사느라 하루 대부분을 쓰고, 수제 봉투를 만드는 곳에서 차 한잔하며 대화를 나누는 ‘슬로 라이프’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을 통틀어 지금보다 더 가난한 적이 없었지만 이보다 더 안전하고 행복한 때를 기억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인내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두 가지를 추천한다. 도망가거나 숨는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도망가 부탄에 숨었다.--- p.188~189
포기한다는 것, 물 흐르듯 내버려두는 것…… 젊은 시절에는 이런 말이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왜 포기한단 말인가? 끝까지 치열하게 노력해야지. 왜 내버려두는가? 어떻게 해서든 의지를 관철해야지. 이런 적극적인 태도는 한 시절 필요했고 나에게 성취의 기쁨을 주었지만 언제부턴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자칫하면 그런 마음가짐이 내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 p.193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삼십 대 초반, 직장을 그만둘 때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니던 한 달 동안 퇴근길에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아파트 불빛을 보면 마음이 꺾었다. 1988년도 가을이었다. 그 시절, 여행작가니 여행가니 하는 타이틀도 생소했다. 집을 뛰쳐나가 낯선 땅을 떠도는 것은 어릴 적 품어온 간절한 꿈이었지만, 막상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겁이 났다. 다시는 저 불빛 어린 아파트, 따스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떠난 이유는 숨이 막혀서였다. 마침내 떠나는 순간에는 이제 ‘죽어도 좋아’라는 황홀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 p.198
그러니 앞으로도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또 인내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은 또 하나의 나이테가 되어 아련한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까.
--- 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