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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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2쪽 | 230g | 104*182*20mm |
ISBN13 | 9788972759706 |
ISBN10 | 8972759708 |
발행일 | 2019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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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2쪽 | 230g | 104*182*20mm |
ISBN13 | 9788972759706 |
ISBN10 | 8972759708 |
친애하고, 친애하는 009 작품해설 130 작가의 말 144 |
엄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가 언제 웃었을까? 어린 동생을 앞에 두고 나와 함께 동네 어귀에서 찍은 사진에서 엄마는 웃고 있었다. 앳되고 수줍은 미소였다. 몇 장 남지 않는 사진을 보면서 엄마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았다. 돌아가신 엄마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까?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이야기 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를 읽으면서 나는 엄마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소설 속 어느 엄마와도 닮지 않는 엄마가 자꾸만 생각났다.
젖먹이를 떼어놓고 유학길에 오른 엄마 현옥 대신 인아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인아에게 세상의 시작은 할머니였고 엄마는 조금 먼 거리에 있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룬 엄마에게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스물두 살의 휴학생 인아는 할 일도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엄마의 전화 한 통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두 계절을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건 당연했다.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할머니와 친구분들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지방대 교수인 엄마 현옥이 주말마다 할머니를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이상할 뿐이다. 할머니가 폐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아는 알지 못했고 그래서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 보통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인아는 잘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 엄마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고 상상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사랑했던 마음과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대했던 사랑이 달랐다는 것, 할머니가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고 힘들어했다는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엄마, 그러면서도 엄마 현옥과 할머니 사이에 묘하게 흐르는 애증 같은 것에 대해 인아는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현옥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여성의 삶이 남성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할머니와 할머니와는 다른 세상을 향해 나갔던 당당하면서도 모질었던 엄마 현옥. 그런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딸이었던 인아는 언제나 엄마가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인아의 여린 마음을 할머니는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가만히 안아주었다. 소설에서 할머니와 인아가 빈대떡을 부치는 장면을 읽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의 온기가 전해진다.
“세상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99쪽)
혼전 임신으로 어린 나이에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혼을 선택했을 때 현옥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인아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좋은 삶이라 말하는 엄마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인아를 키우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선택지는 많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테니까. 같은 여자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인아가 아이를 키우고 안정이 된 후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말했을 때 서른셋의 나이가 젊고 예쁘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 엄마 현옥이었던 것처럼.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엄마라는 걸 우리가 늦게 아는 것처럼 인아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로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다. 일하는 엄마, 전업주부인 엄마, 엄마라 불리는 모든 존재의 삶은 그러하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까지 쉽게 인정을 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인아가 엄마 현옥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하다. 아픈 할머니를 보러 주말마다 오는 현옥이 할머니에게 엄마라 부르는 모습이 친근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렇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로만 존재했을 것 같은 어리석음,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모진 외침이 소설 속에서 돌고 돈다.
기존의 여성 서사를 다룬 소설과 다르게 백수린의 소설이 특별한 건 남녀의 대립이나 갈등을 다루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삼대 모녀를 통해 그들에게 이어진 섬세한 감성으로 어루만진다는 점이다. 여성의 결혼과 일, 그리고 육아에 대해 저마다의 다른 목소리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어진다. 할머니의 죽음과 동시에 화자인 인아에게 온 생명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듯 말이다. 인아 역시 생명을 품고 키우고 세상에 내놓고서야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더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할까. 연약하지만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타인인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 그 사랑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그러니 내가 그때 할머니의 상태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의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26쪽)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완벽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할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경험만 봐도 다르다. 엄마라서 무조건 믿어주고 지지하고 이해해주는 건 아니다. 엄마와 나의 사고가 다를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백수 린이 소설에서 할머니 세대의 엄마들이 무시와 폭력을 참고 희생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해할 수 없듯 현옥이 자신의 딸 인아의 삶을 처음부터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감정을 알 것 같은 시기와 맞나는 것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사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때로 다투고, 미워하고, 애틋해하면서 말이다.
낡은 사진 속에서 젊고 어린 엄마가 웃고 있다. 엄마에게 기댄 나는 그때 엄마의 나이를 지났다. 깜짝깜짝 놀랄 일에 절로 나오는 엄마라는 외침을 빼놓고는 엄마를 부르는 일이 없다. 엄마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한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어도 괜찮다고 여겼던 엄마의 자리를 채우는 건 그리움뿐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사이가 되지 못한 채 서둘러 나와 이별을 한 엄마가 보고 싶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나의 엄마.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써 본다.
그러니 내가 그때 할머니의 상태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의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것일까?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中에서)
백수린의 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나는 저 부분을 읽으며 감동받았다. 소설은 병에 걸린 할머니와 두 계절을 보내는 '나'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기계공학을 전공하지만 갈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에 휴학을 하고 집에 있을 때였다. 지방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엄마의 전화로 '나'는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설은 할머니와 엄마, 나라는 여성의 서사를 보여준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한 집안의 여성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꿈의 좌절과 빈번한 남성과의 갈등이 있었다. 그렇지만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소설은 할머니와 엄마의 인생의 공통점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 담긴 한 인간으로서 가진 꿋꿋한 삶의 신념을 말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삶의 대결을 클리셰로 사용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와 엄마의 남편인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남성상으로 그려지지만 그것을 이용해 그녀들의 삶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소설이다. 할머니의 병을 모른 채 함께 지냈던 두 계절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나'의 서사는 시작된다.
세계의 어느 시간에서는 죽음과 탄생이 동시에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할머니가 죽어가는 시점에 '나'의 뱃속에 아이가 생긴 것은 죽음과 삶이 특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할머니와 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기존의 여성들을 다룬 서사에서 그려진 것과는 다르다. 그녀들의 삶은 갈등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서사를 완성해 간다. 대학교수로서 살아가는 엄마는 미묘한 뉘앙스의 말로 나의 우유부단한 가치관을 비판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불완전함에 기댄다. '나'는 상처 받지만 사랑과 친애의 감정으로 극복해 나간다.
장황한 이야기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리움과 추억을 지나 회한이라는 결말로 나아간다. 문장은 평이하고 소설의 분위기는 따뜻하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사랑보다 더 애틋한 친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쓰였을 소설이다. 우리들의 삶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내일로 향해갈 것임을 믿는다. 모두 죽지만 그전에 우리는 삶을 사는 자들이었음을 생각하면 슬프지 않다. '나'가 할머니의 병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자책이 아닌 기억과 추억을 반복하며 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할머니의 삶을 친애하고 엄마의 오늘을 친애하는 '나'의 내일은 찬란할 것임을 믿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긍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믿어주기 위해 살아간다. 소설 속 엄마는 결코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를 믿기 위한 최선의 몸짓을 보여준다. 그것이면 된다.
친애하는 엄마와 친애하는 할머니, 그 모두를 잇는 흐름에 대한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부잣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가진 당당함과 허영이 채취처럼 묻어나는' 할머니를 견딜 수 없어했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었으나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할머니는 고학력의 딸을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여긴다. 할머니는 음식 욕심이 그다지 없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일상들 중 가장 창의적이라는 이유로 요리를 즐기며 그 긴 세월을 산다.
그런데 할머니가 지지한 엄마의 길 때문에 막상 '나'는, '아우성치는 공백과 부재'를 무서워하며 마음 한 켠에 외로움과 쓸쓸함을 함께 키우며 자란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좋은 날 같이 보낼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따뜻하고 오랜 관계를 지속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엄마'라는 존재는 숙제처럼 남는다. 중요하지도 않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엄마 나름의 다정함을 표현하는 서툰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내 그것이 자신의 기대와 바람에 불과함을 깨달으면서. 충분하지 않은 관계의 질과 양은 '정해진 일상이 있는 사람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들을 반복해 만날 때마다 누구나 속해 있는 현재라는 국가의 불법체류자가 된 것 같은 과장된 감정'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던 '나'는 할머니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할머니를 자주 방문하러 오는 엄마를 만나며, 셋을 잇는 견고하고 가느다란 역사를 만난다. '나는 이제, 내가 그러했듯이 할머니 역시 할머니의 한계 안에서 나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그것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작품해설에서는 '표면적으로는 할머니를 돌보는 모양새여도 심층에서는 내가 할머니로부터 돌봄을 받게 되는 상호부조의 역전'이라고 표현했다. 모녀 관계에서 일방적인 돌봄은 있을 수 없다는 것, 형태는 다를지언정 그들 사이의 돌봄은 언제나 쌍방향적이라는 것, 나 역시 일상에서 순간순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