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소위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자랐다.
만약에 당시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우리에게도 아이가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홈스쿨링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배우면서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했다. 순간을 즐기고, 자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 정해진 틀에 자기 인생을 맞추기보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길을 만드는 어른이 되었으면 했다. 이런 목표 아래 홈스쿨링이 이뤄졌기에 우리 아이들이 지금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_[프롤로그. 우리 아이들은 검정고시 출신인데요] 중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양가 집안에서 걱정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시댁 부모님은 조심스러워서 겉으로 표현은 잘 안 하셨지만 친정 부모님은 그야말로 나를 들들 볶으셨다. 왜 그렇게 아이를 별나게 키우냐고, 대학도 안 보낼거냐며 성화셨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아이들을 어느 회사에서 받아주겠냐고, 심지어는 ‘엄마가 돼서 애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말까지 하셨다.
내가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특별히 자신이 있어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기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커다란 모험이었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불안감에 휩싸여 몰래 울기도 했다.
_[1장. 대체 어떻게 키우셨어요?] 중에서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외국어 공부만큼은 서로에게 뒤질세라 열심이었다. 홈스쿨링을 할 때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것은 세계지도를 보며 가고 싶은 나라를 찾는 일이었다. 각자 자기가 찍은 나라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 지리적 조건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말까지 익히고 나면 가족 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_[1장. 세 자매가 외국어 말문을 튼 법] 중에서
남편이 치과의사로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우린 돈이 없는 가족이다. 한 번은 돈을 모으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 몇 달 돈을 모아보니 이렇게 하면 빌딩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까지 생겼다. 돈에 욕심이 생기고 나니 단돈 천 원 쓰기가 아까웠다. 온 관심과 마음이 오로지 돈만을 향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자 나는 두려움이 생겼다. 점점 우리 부부가 추구했던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만 멈추기로 했다. 그 뒤로는 하고 싶은 일 하고 방학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봉사하러 다니는 데에 오히려 많은 투자를 했다. 큰 집도 필요 없었다. 집에 쓸 데 없는 장식을 하는 것도 별로 좋아 하지 않아 다섯 가족이서 27평 정도의 아파트에 살아도 충분했다. _[2장. 돈 없이도 잘 키우는 법] 중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 내가 무용단을 창단하여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첫째는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도 많이 도왔다. 그때 내가 제일 자주 쓴 말이 “너희가 알아서 해~”였다. 무조건 알아서 하라는 뜻이 아니라, 엄마는 기본적인 것만 챙겨줄 테니,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집에 전화를 해서 ‘오늘의 할 일’을 체크해주고, 아이들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숙제도, 준비물도 모두 아이들이 알아서 챙겼다. 그래서인지 뭐든 빼먹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찰싹 달라붙어 완벽히 하는 것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두었다. 여건 상 내가 늘 붙어 다니며 하나하나 챙겨줄 수 없었기에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_[2장. 형제를 키우는 법] 중에서
숙제도 붙잡고 앉아 같이 해본 적이 없었다. 했는지 안 했는지만 확인하면 끝이다. 학교에서 본 시험지를 보여 달라고 한 적도 별로 없다. 특히 둘째는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절대 가방을 못 열어보게 했다. 그럴수록 궁금했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으니 참았다. 학과 공부에 소홀하기는 큰딸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시험이 언제인지도 모르니 마냥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놀기만 한다. 준비도 없이 시험을 보니 똑똑한 아이여도 좋은 점수가 나올 리 없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수학 시험지를 보여주는데 빨간 색연필로 ‘30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좀 심각해보여 “아이고, 예은이 이제 공부 좀 해야겠네.” 한 마디 하니 심각성을 알고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_[2장. 독립심을 키워줘야 하는 이유] 중에서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만 해왔다면 우리 가족이 지금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있었을까? 당시 나는, 엄마는 처음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내가 살아야 아이도 행복하고, 가정도 안정됨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있을지언정 무조건적인 희생을 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결혼과 동시에 환경과 상황에 많은 변화가 생기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 부모가 자존감을 잃는 순간, 아이도 길을 잃고 말 것이다. _[3장. 꼭 어떤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 중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장난감 살 돈, 집 평수를 늘릴 돈, 가전제품을 바꿀 돈, 휴가 갈 돈을 아껴 방학 때마다 오지를 다니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세계의 속살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방학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왜 너희 가족은 유명한 곳은 안 가고 남들 안 가는 이상한 곳만 다니니?”라고 물었다고 했다. 오지에 가까운 시골 마을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관점에 따라 사람과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잘 가꿔진 관광지만 다니면 스쳐가는 사람밖에 되지 못하지만, 이면을 볼 줄 알면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을 찾을 수 있다. 다른 관점을 가지면 살면서 할 일이 훨씬 많아진다.
_[4장.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