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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 일본, 유럽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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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72g | 152*215*20mm
ISBN13 9788964621158
ISBN10 896462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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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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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가 말한 치팡구가 일본이건 아니건, 『동방견문록』에 수록된 치팡구는 유럽인들에게 동방의 신비롭고도 진기한 ‘보물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겠다면서 동쪽이 아닌 서쪽 항로를 택한 것도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다른 유럽인들보다 치팡구에 먼저 도달하겠다는 동기가 작용하였다. 이처럼 일본은 생각보다 일찍부터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동경을 부르는 환상의 섬나라로 자리하고 있었다. --- p.30

그러한 베네치아인들의 동방에 대한 욕망을 집대성한 것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다. 로망 작가 루스티켈로가 마르코 폴로의 스토리에 과장과 수사를 더해 써내려간 동방 세계의 경이로움은 베네치아인들을 매료시켰고, 그 매혹의 스토리는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동방견문록』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출간 이후 수세기 동안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구미를 자극한 것은 말루쿠제도Maluku와 실론Ceylon의 향신료, 그리고 치팡구의 황금 스토리였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에 복음福音을 전한다는 사명이 덧씌워졌다. 유럽인들은 왜 그렇게 동방으로 향하는 길을 갈구했을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료料·금金·신神’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당시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p.32

유럽 시장에서 향신료의 가격이 오랫동안 비싸게 유지되었던 것은 수요뿐 아니라 공급 측면에 구조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열렬하게 향신료를 욕망하면서도 정작 향신료가 어떻게 공급되는지 정확한 루트를 파악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당시 유럽인들의 지리 지식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를 넘지 못했다. 그를 넘어선 동방은 성서聖書,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등의 영향으로 형성된 동경과 환상의 영역이었다. 초기 중세인들의 지리 관념에 큰 영향을 미친 [베아투스 지도Beatus Mappa Mundi]에는 가장 동쪽에 땅 위의 천국인 ‘에덴동산’이 있고, 그 바로 밑에 인도가 그려져 있다. 천국 바로 밑 동네가 당시 인도의 이미지였다. --- p.35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유럽 화폐경제의 진전 과정에서 화폐 성립의 기초가 되는 본원적 가치base value에 대한 믿음이 금에 집중됨에 따라 금은 다른 귀금속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지위를 획득한다. 본위통화가 된다는 것은 즉각적 교환 및 안정적 부의 저장 기능, 즉 보편적 환금성universal convertibility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도 유사한 신용의 대상이 되었으나, 부여되는 가치의 크기가 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금은 불변의 재산적 가치를 지니는 무조건적인 신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문명권의 경제활동 초점은 금의 획득과 보유에 맞춰진다. 유럽 문명은 황금 보기를 ‘돈’같이 하는 문명이었다. 현대에도 금이 가장 선호되는 안전자산의 한 축으로 기능하는 것은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인위적 제도의 유산이다. --- p.56~57

톨레도 함락으로 이슬람 세력권이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레콩키스타는 분수령을 맞이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096년 로마에서 십자군 운동이 전개되면서 레콩키스타는 기독교도의 이교도 대항 성전으로서의 의미가 본격적으로 부각된다. 교황은 이베리아에 출정하는 것과 레반트 성지에 출정하는 것을 동등하게 취급하였고, 이베리아 왕국들의 십자군 참전을 면제하며 레콩키스타를 지원하였다. 12세기 이후 이베리아의 기독교 왕국들은 성전의 최전선에 선 기독교 수호자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정치·경제·사회 여러 분야에서 가톨릭 색채가 짙고 로마 교황과의 유대감이 깊은 지역성·민족성이 이베리아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특히 이교도 지역에 대한 영토 확장과 기독교 전파는 불가분의 이념으로 통합되었고, 이는 대서양 진출입로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인과 맞물려 이베리아의 역사, 나아가 세계 역사의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p.92~93

엔히크는 왕국의 최남단 사그레스Sagres에 자리를 잡고 해양 탐험대 파견을 진두지휘한다. 포르투갈 탐험대는 1420년 마데이라Madeira를 획득하고, 1434년 유럽인들의 심리적 저항선인 보자도르Bojador를 돌파한 후, 적도 직전까지 남하함으로써 항해를 통한 아프리카 미개척지 탐험의 지평을 크게 넓힌다. 이때 축적된 조선·항해·지리·천문 등에 관한 지식과 기술이 이후 전 세계를 바닷길로 연결하는 본격적인 ‘대항해시대’의 단초가 되었다. 엔히크는 기사단의 막강한 금력과 무력을 해양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였고, 해양 진출로 획득한 이권은 기사단에 우선적으로 귀속시켰다. 기사단은 포르투갈 해양 진출의 본부이자 플랫폼이고 엔진이었다. 인과관계를 거칠게 설정하면, 대항해시대는 성전기사단이 인류에 남긴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108~109

이로써 유럽의 항해술은 ‘경험의 항해’에서 ‘도구의 항해’로 진화한다. 엔히크의 집념이 시동을 건 포르투갈의 원양 항해술 발전 덕분에 유럽의 항해사들은 나침반, 해도, 태양 고도표, 사분의·아스트롤라베만 있으면 망망대해에서 파도와 바람에 떠밀리다가 미아가 될 걱정 없이 항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인공위성에 의한 지구위치정보 시스템(GPS)이 개발되기 전까지 인류의 항해 방식은 15세기 말 포르투갈이 사용한 방식과 기본원리가 동일하다. 이후의 근대 항해술은 측정 도구와 측정치의 정확성을 높인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는 해양사학자도 있다. 포르투갈이 발전시킨 항해술은 따지고 보면 유럽의 독자적인 기술이 아니다. 그 원천기술의 대부분은 중국, 인도, 아랍, 유대로부터 온 것이다. 원천이 어디건 원조가 누구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쓸모와 유용성을 찾아내는 지적 흡수력과 개방적 태도는 중세 후기 이후 유럽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대항해시대는 그러한 유럽의 실용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사고가 당시 가용한 세계의 지식 자산을 융합하여 창출해낸 시너지의 산물이다. --- p.124~125

최첨단 항해술을 습득한 콜럼버스는 독학으로 지리·천문·역사를 공부하면서 지구는 둥글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론은 맞았지만, 결론의 기반이 된 팩트는 오류투성이였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이래 유럽에 형성된 지리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구의 크기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추정하였고, 서쪽으로 3700킬로미터만 항해해가면 일본(치팡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카나리아제도에서 서쪽으로 갈 경우 일본까지의 실제 거리는 1만 5000킬로미터가 넘는다. 대서양 너머에 미지의 대륙이 있음을 알지 못했으니 불가피한 오류였다. 오류에서 비롯된 신념이었지만, 어쨌든 그 신념이 그에게 서쪽으로의 항해를 실행으로 옮길 용기를 주었다. 세상의 위대한 일들은 ‘아는 것이 힘’과 ‘모르는 것이 약’ 사이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 p.133~134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은 모든 세계사 교과서에 소개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몇 줄의 서술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가마의 첫 ‘돌파breakthrough’를 비롯하여 포르투갈이 개척한 인도 항로의 진정한 위대함은 이들이 대자연과 사투를 벌여가며 축적한 항해 루트의 스케일과 노하우의 디테일에 있다. 포르투갈인들이 완성한 그 스케일과 디테일은 현대인이 보아도 경이로운 것이다.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남단을 둘러 대서양과 인도양을 왕복하는 항로(또는 그 항해)를 ‘인도 카레이라Carreira da India’, 그 항로에 투입되는 무장 상선 선단을 ‘인도 아르마다Armadas da India’, 인도에 구축한 식민지를 ‘인도 에스타도Estadoda India’라고 불렀다. --- p.140~141

사실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 뎃포가 언제 어떻게 일본에 전해졌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뎃포를 받아들인 일본의 대응방식이다. 일본의 학자들 중에는 유럽 세력의 진출에 대한 동아시아 각 지역의 대응을 개념화하면서 ‘전래’와 ‘전파’를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전래’는 ‘외부의 문물이 도입되어 현지에 뿌리 내리고 내재화되는 현상’으로, ‘전파’는 ‘외부의 문물이 도입되어 널리 퍼지는 현상’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유럽의 아르케부스가 ‘전파’된 것은 서남아나 동남아, 중국이 먼저이지만, 능동적 대응을 통해 전파가 짧은 시간 안에 ‘전래’로 성격 전환이 이루어진 곳은 일본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지 불과 수년 만에 뎃포의 국산화와 연이은 대량 보급에 성공하고 그로 인해 전쟁의 양상과 국면이 완전히 달라지는 획기적 변화가 일본에서 있었음을 생각할 때 딱히 부정하기도 어려운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이다. --- p.169~170

포르투갈인들이 가져온 아르케부스와 불랑기포佛朗機? 등의 총포류로 촉발된 화약 수요는 남중국과 일본 간에 상호 비교우위 품목의 교역 확대 유인誘因을 제공하였다. 공무역이 제한된 환경 속에서 왜구들에 의한 사무역 또는 밀무역은 교역 이익 실현을 위한 중요 수단이었다. 규슈 지방의 다이묘들은 유력 왜구집단을 가신화家臣化하면서 능력 본위로 경제적·신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이들의 해상 활동을 후원하였다. 뎃포 전력화의 핵심인 화약의 경우, 일본 규슈 지역에서는 고품질의 유황이 생산되었으나, 일본인들은 초석 생산능력이 없었다. 반대로 중국 남부 해안 지방에서는 초석이 생산되었지만, 그곳의 화약 제조업자들은 질좋은 유황을 확보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었다. 공무역체제하에서는 양자 간의 거래가 성립될 수 없었으나, 왜구는 그 체제를 우회하여 거래를 성사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 이처럼 일본은 16세기 중반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의 비공식 해상무역망에 한 꼭지로 편입되면서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전략물자를 무역을 통해 입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한다. 일본의 뎃포 전력화는 그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전략적 ‘아웃소싱’의 결과물이다. 외부와의 통교通交를 통해 가용해진 자원을 결합하여 즉각적 전력화를 기하는 한편, 기술의 흡수와 내재화를 꾸준히 병행한 것이 기존의 폐쇄체제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와 효율성으로 달성한 부국강병의 비결이었다. 신문물을 이념으로 배제하기보다는 이용가치로 평가하고 개방적 태도로 수용한 실리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 p.190~194

센고쿠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 속에서 규슈 일대의 다이묘들은 군사적·경제적 힘을 기르기 위해 전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략적 환경하에서 눈앞에 나타난 포르투갈인들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세력에 결부시켜야 하는 포섭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이 여타 동아시아국과 일본이 가장 대별되는 점이다. 다이묘 간에 기독교 개종을 마다하지 않으면서까지 유럽 세력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유럽 세력과의 통교와 신문물의 적극적 도입을 통해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려 한 대표적 존재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접어들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등 기독교 포교 세력을 추방하고 일본이 원하는 형태와 방식의 교류에 동의한 네덜란드의 팩토리만 데지마에 남겨두었다. 데지마가 위치한 나가사키는 대對유럽 문물 교류의 관문이자 난학蘭學의 중심지로서 200여 년 동안 일본이 세계를 접할 수 있는 ‘통로gateway’가 되어주었다. --- p.210~211

1582년 2월, 예수회 신부 알레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의 인솔하에 일본인 소년 4명이 나가사키항에서 마카오로 향하는 포르투갈의 카라크선에 몸을 싣는다. 이토 만쇼, 치지와 미구엘, 나카우라 줄리앙, 하라 마르티노 등 4명의 소년은 로마 교황과 에스파냐·포르투갈 국왕을 알현하고 일본 선교를 위한 정신적·경제적 지원을 요망하는 사절단으로서 의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 이들은 인도양과 아프리카 대륙을 두르는 2년 반의 여정 끝에 1584년 8월 리스보아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유럽에서의 활동에 나선다. 그해 11월에 에스파냐의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펠리페 2세를 알현한 후 지중해 동쪽 로마를 향한 여정을 계속한다. 이듬해 3월 이탈리아반도에 상륙하여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토스카나 대공국의 군주이자 메디치가의 후예인 프란체스코 1세를 알현한 후, 3월 말 꿈에 그리던 로마에 입성한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일본 땅에서 복음이 전파되기를 축원祝願한다. 교황의 옥음玉音은 소년들에게 신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공교롭게도 소년사절단을 접견한 지 3주 후 그레고리오 13세가 선종한다. 후임으로 식스토 5세가 새로이 교황에 선출되자, 마침 로마에 머물던 소년사절단도 새 교황의 대관식에 초청되어 참석하는 영광을 누린다. 지구상 가장 동쪽 끝에서 꼬박 3년을 걸려 천신만고 끝에 로마를 방문한 소년들이 겪은 일들은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 p.212~214

이때 이에야스가 믿는 구석이 서양의 대포였다. 당시 도쿠가와 측 동군은 영국제 컬버린포 4문과 세이커포 1문, 네덜란드제 대포 십수 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 1614년 12월 동군은 오사카성 포격을 위한 전술 지점을 확보한 후, 오사카성에 집중 포화를 퍼붓는다. 기존의 대포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리에서 포탄이 퍼부어지자 도요토미 측 서군의 지도부가 크게 흔들린다. 특히 권력의 심장부인 혼마루本丸가 포격으로 파손되고, 그로 인해 히데요리의 모친이자 실질적 최고 권력자였던 요도도노淀殿의 측근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히데요리 측은 이에야스의 화의和議 제의를 수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선회한다. 농성전을 벌이던 세력이 장거리포에 의해 성의 방어력이 해체되는 순간, 전쟁의 승패는 기울기 마련이다. 이에야스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에서 화친을 맺고자 교섭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포격을 늦추지 않았다. 결국 이에야스가 원하는 조건으로 화친이 체결되었고, 이때의 화친이 화근이 되어 도요토미가는 멸문의 길을 걷게 된다. 후세에서는 히데요리의 화친 선택을 두고 유약한 유화정책이 멸망을 초래한다는 교훈의 스토리로 인용하고는 하지만, 이미 첨단무기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 이에야스의 필승 전략 앞에서 히데요리가 항전 의지를 다진다고 해서 전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 p.262~264

최근의 연구는 이에야스가 애덤스를 총애하며 서양식 선박 건조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배경에 그의 원대한 외교 구상이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경외교로 인해 주변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조선, 필리핀,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 사절을 파견하여 선린관계 수복을 원하는 친서를 전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이에야스는 특히 필리핀·멕시코와 통상관계를 수립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새로운 교역 루트를 개척함으로써 공고한 경제 기반을 확보하고자 했다. (……) 당시 세계의 정세와 지리에 능통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그랜드 플랜이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치면서 일본 권력자가 서양 세력과의 교류를 통해 습득한 정보와 세계관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267~268

유럽의 소국 네덜란드는 어떻게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을 이루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최강 해상국가로서 군림하면서 ‘황금시대The Dutch Golden Age’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네덜란드의 약진은 조금 색다른 차원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는 ‘유대인의 세계 금융 영향력’이라는 현상은 네덜란드의 부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바꿔, 박해받는 소수민족에 불과했던 유대민족이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는 집단이 될 수 있었을까? 첫째 질문과 둘째 질문은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다.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의 성장과 자본주의의 확산이 유대민족의 운명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 p.303

1602년, 암스테르담에서 VOC 출범에 맞춰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증권 기반 상업 프로젝트 기법을 집대성한 암스테르담 거래소Amsterdam Bourse가 개장한다. 세계 최초의 ‘공개’ 증권거래소라 불리는 곳이다. 이제 회사의 소유권은 분할된 증권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그 증권을 소유한 사람은 자발적 거래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사유재산제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전까지 모든 투자는 회사 자체에 대한 것이었고 회사의 실적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었지만, 거래소의 성립으로 증권 소유자는 회사의 실적과 관계 없이 증권 거래만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손실을 볼 수도 있지만, 기존에 왕이나 귀족 또는 대부호 상인만 소유할 수 있던 생산수단을 약간의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소유할 수 있게 되고 임의로 처분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자체로 혁명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증권거래소 성립에 의한 부의 창출·분배 메커니즘은 정치적 권위가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던 시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 주체의 자율적 경제활동 영역을 확대하였다. --- p.294~295

데우스호 사건 이후 1년 만에 포르투갈의 사절이 일본을 찾아 손해 배상을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이 모든 불상사가 페수아의 오만과 무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포르투갈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 네덜란드의 부상浮上으로 동아시아에서의 제해권이 위협받는 전략적 환경 변화를 맞아, 포르투갈로서는 가장 중요한 전통적 교역 상대의 하나인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굳건히 유지하는 것이 매우 긴요한 상황이었다. 기존의 우월적 지위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네덜란드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관점에서 일본에 접근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였으나, 한 세기 동안 최강 제국으로 군림한 포르투갈의 자존심은 정확한 정세 판단을 방해하였다. 반면, 포르투갈의 대항마로 떠오른 네덜란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신의 앙금이 남은 일본-포르투갈 관계의 틈을 파고들었다. 네덜란드가 일본에 접근하는 방식은 포르투갈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국가(또는 왕실)가 아니라 수익 창출에 최우선 목표를 두는 상업조직인 동인도회사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취한 순응적 태도와 실용적 접근은 일본과의 교역관계 수립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유럽과의 교역을 원하되 기독교를 배척하고자 하는 막부의 의향에 이보다 더 잘 들어맞는 교역 파트너는 없었다. --- p.325~326

펑후다오 해전은 성채만 한 VOC 함선에 조각배 같은 명 군선 수십 척이 달려들다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싸움이었고, 세상의 중심을 자부하던 명은 깊은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남거익은 조정에 올린 상계에서 “홍모인紅毛人(서양인)의 배는 대단히 크고 그 함포는 10리 밖에서도 중국 군선을 한 방에 조각내버리는 가공할 위력”이었다고 놀란 심정을 적고 있다. 그러나 기술 문명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이때의 교훈은 중국의 변화를 촉발하는 데 실패한다. 1840년 아편전쟁을 겪은 이홍장李鴻章은 이렇게 기록한다. “오늘날 목도하고 있는 홍모 외적(영국)의 침입은 중국 3000년 역사에 전례 없는 일이다. 이토록 강력한 무력武力과 화력火力을 지닌 외적은 지난 1000년간 중국이 경험해본 적이 없으며, 이들은 중국이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펑후다오 전투 이후 200년의 세월이 무색한 뒤늦은 한탄이었다. --- p.349

1632년 9월, 스벡스는 노위츠의 신병을 일본에 인도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다. 1627년 이래 양측 간에 빚어진 갈등을 VOC가 아니라 노위츠 개인의 불찰과 비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리하고, 그 책임을 물어 노위츠의 처분을 일본에 맡긴다는 의미였다. 쇼군이 이에 만족을 표하자, VOC 인질들은 모두 석방되었고, 히라도 VOC 상관 활동도 재개되었다. 나아가 막부는 1634년 모든 일본 선박의 대만 도항을 금지함으로써 대만 무역을 둘러싼 VOC와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 이러한 해결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스벡스의 외교술이다. 일본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스에쓰구가 사망함으로써 이 문제가 이권 다툼의 측면과 일본 문화 특유의 명예 문제의 측면이 공존하게 된 것을 꿰뚫어보았다. 쇼군 입장에서는 규슈의 상인이건 벽안의 외국인이건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충성하고 이익을 안겨주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대신 쇼군도 주위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에 누구의 체면도 손상시키지 않고 일방적인 승리나 패배로 보이지 않도록 명예로운 퇴로graceful exit를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면 관건이었다. 스벡스의 노위츠 인도 결정은 당사자들의 명예는 지키고 과실은 덮음으로써 쇼군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묘안이었다. 이로써 VOC의 일본에서의 무역 이권은 재보장되고, 대만 영유권도 확보되었다. 잘 훈련된 외교관 한 명이 1000명의 군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 p.357~358

쇄국이라는 말은 사실 에도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쇄국정책이 역사 용어로 등장한 것은 메이지시대 이후로, 주로 막부의 교역 독점에 대한 비판적 의미를 담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쇄국정책은 위정척사류의 단순한 고립주의 또는 이념적 외세 배척주의가 아니다. 무엇보다 유의할 점은 ‘쇄鎖’, 즉 쇠사슬로 결박結縛하는 대상은 번이지 막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막부의 쇄국정책은 ‘폐문閉門정책’이 아니라 막부가 사람·물자·정보의 대외 교류를 장악하는 ‘창구독점정책’으로 성격을 파악해야 보다 적확하게 그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 (……) 쇄국정책은 기본적으로 도쿠가와 막부의 임진왜란 전후戰後 처리 외교와 막번幕藩체제 수립의 상호작용 속에서 탄생한 통일국가 일본의 대외정책이다.
--- p.37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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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의 신선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야심찬 신작이 또 한 권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거침없이 동·서양의 시공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세계사 이야기이다. 400쪽에 가까운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읽는 내내 흥미로운 소재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세계사의 맥락에서 한국과 주변국의 위치 좌표를 찍고 향후 방향성을 찾는 데 새로운 시각과 지적 자극을 얻을 수 있다.”
- 선우정 (칼럼니스트, 조선일보 사회부장)
“서구 문명의 주도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세계가 하나의 단위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 없는 동양 고전古典 읽기는 고목枯木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도 같다. 16세기 일본의 유럽 교류사를 소재로 세계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도록 접근하는 저자의 발상이 기발하다. 정치·이념 일변도가 아니라 상업과 교역, 도구적·기술적 발전을 중심으로 동·서양 교류의 연원과 과정을 풀어내는 서사도 일품이다. 도덕론, 이상론이 아닌 실용론, 현실론에 입각한 역사 독해법은 나의 고전 해석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
- 임건순 (신세대 동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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