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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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417g | 135*195*17mm |
ISBN13 | 9788950981082 |
ISBN10 | 8950981084 |
발행일 | 2019년 0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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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417g | 135*195*17mm |
ISBN13 | 9788950981082 |
ISBN10 | 8950981084 |
프롤로그_‘슈필라움’의 심리학 1st #시선 #마음 일찍 배가 끊기는 섬 ‘눈이 작은 사람’은 만만하지 않았다 2nd #물때 #의식의 흐름 배에서 해 봤어요? 멍한 시간 3rd #미역창고 #바닷가 우체국 미역창고美力創考 섬과 편지 공화국 여수의 봄 4th #불안 #탈맥락화 걱정은 ‘가나다순’으로 하는 거다! 매번 나만 슬프다! 5th #열등감 #욱하기 꼬이면 자빠진다! 열 받으면 무조건 지는 거다! 6th #삶은 달걀 #귀한 것 당신의 행복 따윈 아무도 관심 없다! 누가 방울토마토를 두려워하랴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여수의 여름 7th #기억 #나쁜 이야기 불안한 인간들의 나쁜 이야기 냉소주의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8th #감정 혁명 #리스펙트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어머 오빠’, 그리고 ‘좋아요!’ 9th #민족 #멜랑콜리 지난 시대의 멜랑콜리 자동차, 섹스숍, 그리고 통일 여수의 가을 10th #아저씨 #자기만의 방 아저씨는 자꾸 ‘소리’를 낸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 11th #저녁노을 #‘올려다보기’ 여수 앞바다에는 섬만 수백 개다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12th #관대함 #첼로 섬은 곡선이다 태풍 후의 낙관적 삶에 대하여 여수의 겨울 조금 긴?에필로그_ 천국에서는 ‘바닷가 해 지는 이야기’만 합니다! |
김정운 작가는 《남자의 물건》에서 2012년 이어령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무렵 작가는 다 때려치우고 한 일 년 쉬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 나라현립대 명예학장으로 있던 이어령 선생을 찾아갔더니 대학에 추천장을 써주더란다.
작가는 2000년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명지대 대학원에서 여가경영학과을 신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2012년은 작가 나이 딱 쉰이 되던 해였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지난 50년’ 동안 떠밀려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50년’ 동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2012년 1월 나라에서 혼자 지내며 글을 썼다. 그리고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아름다운 개울이 흐르는 논길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 상상이 간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그런 풍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이 배우고 싶어졌다.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 입학한 작가는 일본화를 전공했다. 4년 뒤 돌아온 그는 일본 유학 생활에서 느끼고 쓴 생각과 글을 모아『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펴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외로워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격하게’ 외로워하라고, 사람도 좀 적게 만나고, 바쁠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으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마스크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 작가는 자신이 낸 책(벌써 6권이다)의 거의 모든 표지에 자신의 사진을 실었다. 예외가 두 권 있다.『가끔은 격하게』에 자신의 그림,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를 실었고, 이번 신간 표지는 여수 바다와 추상을 오버랩한 것이다. 신간의 표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추상’하면서부터 창조적이 되었다. (84쪽)
“파도칠 때는 그냥 가만히 듣는 거다. 그대가 파도칠 때, 나도 그랬다.” (120쪽)
그래, 이번 신간『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파도와 추상.
독일어에 '슈필라움(Spielraum)'이란 단어가 있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말에 정확히 대응되는 말은 없지만, '활동의 여지'나 '여유 공간'으로 옮길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작가에 따르면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심리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서구의 근대 부르조아 출현 이후에 생긴 가장 큰 주거상의 변화는 ‘남자의 방’의 출현이다. 공간이 곧 의식을 결정한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 준비를 하는 김정운 작가
공지영 작가 역시 딸 위녕에게 보내는 글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원한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공 작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쓸쓸함 속에 잠기고 싶어질 때면 피지 섬, 그 열대의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일층은 맛있는 에스프레스 커피와 빵을 파는 곳, 그리고 이층은 레스토랑과 술집을 겸한 카페, 그리고 삼층은 엄마의 집필실 겸 거처. 너희들을 모두 성장시키면 그런 곳으로 이민을 가서 삼층집을 짓고 싶었어. 아침에는 일층에 내려와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시장에 들러 싱싱한 해물을 사고 저녁에는 맛있는 해물 요리에 향 깊은 포도주를 먹고 그리고 올라가서 자는 거지. 창마다 남색의 바다가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말이야. 아침에는 피아노 곡이 울리게 하고 해 질 녘에는 트럼펫을 듣고 깊은 밤에는 원주민 남자가 직접 부는 색소폰을 듣고......”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중에서
물론 방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방을 빼곡히, 그리고 신명나게 채울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파도와 노을로 맞이할 수많은 날들을 위한 의미와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을 선택했다. 그리는 주제는 사물이다. 사물은 사물이되,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창으로 들여다보는 사물이니, 추상에 가까운 사물이다. 공 작가라면 소설이 아닐까.
독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슈필라움을 이야기하듯, 뇌과학자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몸이 아플 때 발코니가 넓고 창이 커서 나무와 꽃이 잘 보이는 공간에 있으면 더 빨리 치유된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통영에 있는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기관으로 어린이와 부모를 대상으로 생태학습과 바다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나는 여기서 장엄하고 멋진 노을을 보면서 언뜻 슈필라움을 맛보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통영 한산도에서 여수까지(그래서 ‘한려’다) 펼쳐진 바다를 아우른다. 바로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은 확 트인 공간에 맞춰 설계돼 자연과 바다의 풍미를 온새미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몇 채의 독립된 생활관도 운영하고 있어 며칠 머무르며 지낼 수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노을이 장관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 넘실대는 바다색,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나는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바다 속에 잠긴다. 잠시 고요한가하면 이내 흔들리면서 공진하고 교감하게 된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에 갇혀 숨막혀하던 내 몸과 마음이 비로소 숨을 쉬고 내면의 파동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보는 '창틀'은 내가 결정한 거다.
잘 안 보인다고 '남 탓' 하지 말아야 한다." (88쪽)
“요즘도 혼자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 외롭고 낯선 공간에서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279~280쪽)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 조너스 솔크는 장소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는 1950년대 백신을 연구하던 도중에 교착 상태에 빠졌다. 잠시 기분전환을 위해 안식년을 신청하고 그는 이탈리아의 아시시라는 마을로 날아갔다. 아시시는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곳으로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솔크는 강렬한 태양과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하릴없이 지내다 문득 어떤 영감을 얻었다. 얼마 후 연구소에 돌아온 그는 백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솔크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과 함께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고 근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신의 이름을 딴 솔크연구소를 세웠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솔크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솔크연구소에서 바라보는 노을 풍경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