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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리뷰 총점9.2 리뷰 188건 | 판매지수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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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417g | 135*195*17mm
ISBN13 9788950981082
ISBN10 8950981084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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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_‘슈필라움’의 심리학

1st #시선 #마음
일찍 배가 끊기는 섬
‘눈이 작은 사람’은 만만하지 않았다

2nd #물때 #의식의 흐름
배에서 해 봤어요?
멍한 시간

3rd #미역창고 #바닷가 우체국
미역창고美力創考
섬과 편지 공화국

여수의 봄

4th #불안 #탈맥락화
걱정은 ‘가나다순’으로 하는 거다!
매번 나만 슬프다!

5th #열등감 #욱하기
꼬이면 자빠진다!
열 받으면 무조건 지는 거다!

6th #삶은 달걀 #귀한 것
당신의 행복 따윈 아무도 관심 없다!
누가 방울토마토를 두려워하랴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여수의 여름

7th #기억 #나쁜 이야기
불안한 인간들의 나쁜 이야기
냉소주의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8th #감정 혁명 #리스펙트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어머 오빠’, 그리고 ‘좋아요!’

9th #민족 #멜랑콜리
지난 시대의 멜랑콜리
자동차, 섹스숍, 그리고 통일

여수의 가을

10th #아저씨 #자기만의 방
아저씨는 자꾸 ‘소리’를 낸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

11th #저녁노을 #‘올려다보기’
여수 앞바다에는 섬만 수백 개다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12th #관대함 #첼로
섬은 곡선이다
태풍 후의 낙관적 삶에 대하여

여수의 겨울

조금 긴?에필로그_ 천국에서는 ‘바닷가 해 지는 이야기’만 합니다!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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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흰자위와 대비되어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검은 눈동자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바로 이 ‘함께 보기’에 기초한다. (…) 그래서 인간은 남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반사적으로 따라 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의사소통 장애인 자폐증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바로 ‘함께 보기’의 거부다. ‘훔쳐보기’는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소통 거부의 집단적 자폐 증상이다. --- pp.34~36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섬의 내 작업실 공사는 그해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내 고독한 결정의 기준은 분명했다.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다.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망했지만,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한 경제학자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여전히 유효하고 탁월하다. (…) 이른바 ‘사용가치’라는 ‘질적 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양적 가치’ 사이의 모순이다. ‘교환가치’는 내 구체적 필요와는 상관없는, 지극히 추상적 기준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은 무엇보다도 주택이 ‘사는 곳(사용가치)’이 아니라 ‘사는 것(교환가치)’이 되면서부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십 대 후반의 (…) 나이에도 내 ‘사용가치’가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하고, 추상적 ‘교환가치’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면 인생을 아주 잘못 산 거다. 추구하는 삶의 내용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pp.57~60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 주고받기’다. 타인의 ‘순서’를 기다릴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는 바로 이 ‘순서 주고받기’를 제일 먼저 가르친다. 엄마가 인형 뒤에 숨었다가 갑자기 ‘우르르 까꿍’ 하며 나타나는 놀이는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문화에서 발견된다. (…) 오늘날 사방에서 ‘욱’하는 이유는 ‘성취’와 ‘경쟁’의 규칙들로만 지내온 세월 때문이다. (…) 자신의 ‘순서’를 빼앗긴 상대방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온 ‘순서 주고받기’라는 의사소통의 근본 규칙을 회복하지 않으면 이 분노의 악순환으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다. 조금만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면 그렇게까지 ‘욱’할 일은 별로 없다. --- pp.105~106

‘침 바르기’는 ‘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뭉칫돈이 생기면 우리는 한 장 한 장 침을 발라가며 돈을 센다.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침을 바르고 싶어 안달 난다. 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이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아날로그 책 읽는 재미를 따라갈 수 없다. 침을 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 침 바를 일이 없으니 그렇게들 ‘분노와 적개심의 침’만 사방에 퉤퉤 뱉는 거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침 바르기’가 동반되는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이다. --- pp.126~127

우리가 ‘나쁜 이야기’에 매번 귀가 솔깃한 이유는 바로 이 원시적 본능이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잠시만 한눈팔아도 목숨이 날아가던 원시시대 이야기다. 문명화된 사회란 날것의 위험들을 제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갖춰진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도 사방에 ‘나쁜 이야기’들뿐이다. ‘나쁜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불안한 인간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다. 불안한 이들이 불안을 유포해 혼자만 불안하지 않으려는 아주 웃기는 현상이다. --- p.140

화장실이나 목욕탕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침을 뱉거나, 깊은 신음 소리를 내는 이들은 언제나 아저씨들이다. 에드워드 홀의 ‘공간학’에 따르면 45센티미터 이내의 거리는 엄마와 아기, 혹은 부부 사이와 같은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만 허용된다. 낯선 이가 이 거리 안으로 침입하면 몹시 불편해진다. 그래서 고급스러운 장소일수록 소변기 사이의 거리가 멀고, 칸막이가 쳐져 있는 거다. 소변기 앞에서 없는 가래를 뽑아내며 소리를 내는 이유는 심리적으로 몹시 불편하다는 뜻이다. 한때 폼 나는 ‘싸나이’였던 범재가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권력 공간’이 사라진 것에 대한 불안이다. --- p.194

인간이 세상을 보는 기준은 항상 자기 몸이다. 어릴 적 그렇게 컸던 학교 운동장이 나이가 들어 찾아가보면 그렇게 작을 수가 없다. 그 넓었던 집 앞 ‘신작로’가 그렇게 좁을 수가 없다. 내 몸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작은 몸으로 본 세상은 크고 놀라웠다. 호기심에 가득 차 세상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성인의 몸을 기준으로 보면 죄다 시시하고, 볼품없다.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 pp.220~221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다!”
―귀농, 귀촌, 텃밭이 우리 슈필라움의 전부일 수는 없다

아무리 드넓은 공간을 물리적으로 소유해도 그곳이 슈필라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값비싼 과시용 가구들로 그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해도 슈필라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체적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취향과 관심으로 구체화돼야 비로소 진정한 슈필라움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라면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다. 무엇보다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

나만의 슈필라움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함부로 나에게 개입할 여지가 없다. 나를 관찰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내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이 가능해져야 삶과 사회를 주체적으로 조망하고 행복의 지평을 자율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은 ‘감시’로 작동하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을 불안하게 옥죄는 치명적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내 존재는 나를 감시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초라하게 쪼그라든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고려는 “언제나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을 때 전제돼야 할 요소일 뿐이다.

자기 자동차 앞을 양보하면 인생 끝나는 것처럼 절대 비켜주지 않으려는 한국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채널을 고정하는 이유는, 타인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슈필라움에서 ‘시선의 자유’를 쟁취한 자연인들이 부럽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연인’이 될 용기도 없는 그들은 현재 유일한 슈필라움인 자동차 운전석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며 그마저 부정당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내 앞을 지키는 데 사력을 다한다. 은퇴 후 ‘귀농, 귀촌, 텃밭’을 꿈꾸면서. 그러나 그게 슈필라움의 전부일 수는 없다.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아이덴티티’이고, ‘기억’이며, ‘문화’인 공간을 언제까지나 자동차 운전석이나 텃밭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김정운의 슈필라움 ‘미역창고’ 이야기

‘미역창고(美力創考)’는 김정운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로망으로 간직해온 공간으로, 여수라는 낯선 곳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만들어가는 ‘바닷가 작업실’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내 공간’, 바로 눈앞에서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슈필라움에 대한 그의 ‘공간충동’이 구현된 결과이다. 무소유를 주장하고 실천한 법정 스님조차 ‘깨끗한 빈방’에 대한 이 공간충동을 평생 어쩌지 못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공간은 물리적으로 비어 있는 ‘수동적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에 주인으로 머무르는 인간과 상호작용하여 그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 이야기’를 창조하도록 돕는 ‘적극적 공간’을 일컫는다. 그렇게 창조된 이야기는, 타인의 무책임한 평가나 애꿎은 비난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관찰하고 성찰한 ‘내 이야기’일 것이다. 즉 공간이 우리의 남은 이야기들을 좌우하므로 남은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운은 자신의 행복한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기 위해 ‘비싼 것’이 아니라 ‘좋은 것’, ‘추상적 교환가치’가 아니라 ‘구체적 사용가치’를 찾아 서울에서 일본으로, 다시 여수로 인생의 자리를 옮겼다. 96퍼센트의 공연한 걱정은 제목을 붙여 노트에 적고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여 대처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싫은 것 ? 나쁜 것 ? 불편한 것’은 하나씩 제거하고, 인류의 불안 극복기로 가득한 미술관 ? 박물관이나 삶의 시간을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음악회를 찾아가고, 귀한 ‘책’에 침을 발라가며 밑줄을 긋는다. 잘 안되는 ‘어쩔 수 없는 시간’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리스펙트’를 토대로 ‘나와는 언제나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과 의사소통의 상식적인 순서를 주고받으며, 멀리 보고 자주 올려다보면서 구불구불 돌아가며 살아가려 애쓴다.

행복한 인생에 좀 더 실천 가능한 구체적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김정운이 자신만의 슈필라움에서 쓰고 그리면서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일은 ‘책’을 매개체로 하는 ‘자신과의 내적 대화’, 즉 ‘생각’이다. 이 책에 담긴 에세이와 그림은 그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 ‘생각’을 토대로 현대인의 삶과 사회에 대해 쓰고 그려간 ‘진짜 이야기’들이다. 이제 당신의 슈필라움에서 당신이 창조하는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회원리뷰 (188건) 리뷰 총점9.2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주간우수작 바닷가 작업실에서 들려주는 미역창고(美力創考) 열두 마당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사**기 | 2019.06.30 | 추천20 | 댓글8 리뷰제목
 김정운 작가는 《남자의 물건》에서 2012년 이어령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무렵 작가는 다 때려치우고 한 일 년 쉬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 나라현립대 명예학장으로 있던 이어령 선생을 찾아갔더니 대학에 추천장을 써주더란다.작가는 2000년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명지대 대학원에서 여가경영학과을 신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2012년은 작가;
리뷰제목

 

김정운 작가는 《남자의 물건》에서 2012년 이어령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무렵 작가는 다 때려치우고 한 일 년 쉬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 나라현립대 명예학장으로 있던 이어령 선생을 찾아갔더니 대학에 추천장을 써주더란다.

작가는 2000년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명지대 대학원에서 여가경영학과을 신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2012년은 작가 나이 딱 쉰이 되던 해였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지난 50년’ 동안 떠밀려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50년’ 동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2012년 1월 나라에서 혼자 지내며 글을 썼다. 그리고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아름다운 개울이 흐르는 논길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 상상이 간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그런 풍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이 배우고 싶어졌다.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 입학한 작가는 일본화를 전공했다. 4년 뒤 돌아온 그는 일본 유학 생활에서 느끼고 쓴 생각과 글을 모아『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펴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외로워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격하게’ 외로워하라고, 사람도 좀 적게 만나고, 바쁠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으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마스크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 작가는 자신이 낸 책(벌써 6권이다)의 거의 모든 표지에 자신의 사진을 실었다. 예외가 두 권 있다.『가끔은 격하게』에 자신의 그림,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를 실었고, 이번 신간 표지는 여수 바다와 추상을 오버랩한 것이다. 신간의 표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간은 추상하면서부터 창조적이 되었다. (84)

파도칠 때는 그냥 가만히 듣는 거다. 그대가 파도칠 때, 나도 그랬다.” (120)

 

 

그래, 이번 신간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파도와 추상.

독일어에 '슈필라움(Spielraum)'이란 단어가 있다. '놀이(Spiel)''공간(Raum)'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말에 정확히 대응되는 말은 없지만, '활동의 여지''여유 공간'으로 옮길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작가에 따르면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심리적 공간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서구의 근대 부르조아 출현 이후에 생긴 가장 큰 주거상의 변화는 남자의 방의 출현이다. 공간이 곧 의식을 결정한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 준비를 하는 김정운 작가


공지영 작가 역시 딸 위녕에게 보내는 글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원한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공 작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쓸쓸함 속에 잠기고 싶어질 때면 피지 섬, 그 열대의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일층은 맛있는 에스프레스 커피와 빵을 파는 곳, 그리고 이층은 레스토랑과 술집을 겸한 카페, 그리고 삼층은 엄마의 집필실 겸 거처. 너희들을 모두 성장시키면 그런 곳으로 이민을 가서 삼층집을 짓고 싶었어. 아침에는 일층에 내려와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시장에 들러 싱싱한 해물을 사고 저녁에는 맛있는 해물 요리에 향 깊은 포도주를 먹고 그리고 올라가서 자는 거지. 창마다 남색의 바다가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말이야. 아침에는 피아노 곡이 울리게 하고 해 질 녘에는 트럼펫을 듣고 깊은 밤에는 원주민 남자가 직접 부는 색소폰을 듣고......”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중에서

 

물론 방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방을 빼곡히, 그리고 신명나게 채울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파도와 노을로 맞이할 수많은 날들을 위한 의미와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을 선택했다. 그리는 주제는 사물이다. 사물은 사물이되,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창으로 들여다보는 사물이니, 추상에 가까운 사물이다. 공 작가라면 소설이 아닐까.

독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슈필라움을 이야기하듯, 뇌과학자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몸이 아플 때 발코니가 넓고 창이 커서 나무와 꽃이 잘 보이는 공간에 있으면 더 빨리 치유된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통영에 있는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기관으로 어린이와 부모를 대상으로 생태학습과 바다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나는 여기서 장엄하고 멋진 노을을 보면서 언뜻 슈필라움을 맛보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통영 한산도에서 여수까지(그래서 한려) 펼쳐진 바다를 아우른다. 바로 한려해상생태탐방원은 확 트인 공간에 맞춰 설계돼 자연과 바다의 풍미를 온새미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몇 채의 독립된 생활관도 운영하고 있어 며칠 머무르며 지낼 수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노을이 장관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 넘실대는 바다색,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나는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바다 속에 잠긴다. 잠시 고요한가하면 이내 흔들리면서 공진하고 교감하게 된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에 갇혀 숨막혀하던 내 몸과 마음이 비로소 숨을 쉬고 내면의 파동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보는 '창틀'은 내가 결정한 거다.

잘 안 보인다고 '남 탓' 하지 말아야 한다." (88쪽)

 

요즘도 혼자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 외롭고 낯선 공간에서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리석은 일이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통은 불필요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차라리 외로움을 견디며 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옳습니다. 진짜 외로워야 내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 진실해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279~280)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 조너스 솔크는 장소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는 1950년대 백신을 연구하던 도중에 교착 상태에 빠졌다. 잠시 기분전환을 위해 안식년을 신청하고 그는 이탈리아의 아시시라는 마을로 날아갔다. 아시시는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곳으로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솔크는 강렬한 태양과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하릴없이 지내다 문득 어떤 영감을 얻었다. 얼마 후 연구소에 돌아온 그는 백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솔크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과 함께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고 근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신의 이름을 딴 솔크연구소를 세웠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솔크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솔크연구소에서 바라보는 노을 풍경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 정신건강전문의이자 신경건축학을 전공한 에스더 스턴버그 박사는 우리가 아름다운 경치나 숲과 바다 같은 풍경을 볼 때 엔도르핀 분비가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평화와 고요를 가져다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치유할 힘을 얻으며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게 된다. 어떤 면에서 자신만의 평화와 치유 장소를 찾는 것은 행복을 누리는 지름길이다. 사실 자신에게 알맞은 치유 장소를 찾는 것 자체가 곧 행운이다.

작가는 여수에서 남쪽으로 배를 타고 한 시간 더 가야하는 섬에서 다 쓰러져가는 창고 하나를 비싸게 주고 구입했다. 뭍에서 일군을 구해오고 자재를 들여와 새로 뜯어고치고 리모델링해서 올해 초 자신만의 공간을 완성했다. 이름하여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 사고를 한다는 뜻이다. 미역을 채워두던 창고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 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 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문화 연구소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 그동안 시간time’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space’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 (203)

 

사실 여수행은 작가가 꽤 오래 전부터 꿈꾸어오던 일이었던 모양이다. 여수 바닷가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 3년 전 일이요,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다 다 쓰러져가는 창고를 발견하고 어디 홀린 듯 빠져들었다. 이렇듯 작가는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고, 새롭게 해석하며 부단히 뛰어들어 몸소 체험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림 그릴 때, ‘오리가슴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지적인 오르가슴, 예술적인 오르가슴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부터 사용했다. 진짜 즐거움은 공부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근사한, 기발한 발상인가.


바닷가 작업실에서 작가는 앞으로 10년간 해야 할 일의 계획을 짠다고 했다. 가령 슈베르트의 연가 '겨울나그네'를 번역, 해설하고 각 노래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그리는 것 같은 일이다.

계획은 벌써 착수되었음이 틀림없다. 책의 구성을 보면 사계절 1224절기를 본 따 12장과 24 키워드로 이루어졌다. 24 키워드는 24곡으로 짜여진 겨울나그네를 떠올리게 한다.

여수 바다에 물때가 있다.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번씩 반복되면서 만조와 간조 시각이 매일 정확히 49분씩 늦어진다. 이를 소홀히 하면 어떻게 될까? 작가가 오리가슴으로 이름붙인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치자. 자칫 바닷물이 빠졌을 때 수백 미터 앞까지 밀려갈 수 있다. 배를 갯벌에서 끌고 올 수 없으니 몇 시간을 그냥 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바다에서 선주로, 어민으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배움이 필요한 법이다. 육지에서 해오던 방식대로 살라치면 숱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바다에 순응하고 자연에 귀기울이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어야 비로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책은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질투열등감을 내려놓자고 우리를 다독(‘꼬이면 자빠진다!’ )이는가 하면, ‘성취경쟁의 규칙에서 벗어나 조그만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갖자고도 말한다(‘열 받으면 무조건 지는 거다). 바닷가 작업실에 있으면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구나 싶다.

 

 

나는 작가의 그림 미역창고에서 고흐의 노란 방을 떠올렸다. 고흐는 아를에서 2층 집에 노란 방을 구해 정착했다. 그는 자신이 세 들어 사는 건물과 노란 방을 몇 점 그렸지 않았던가. 또한 나는 김정운 작가의 책을 통해 뇌의 공간적 전환, 즉 인식적 전환intellectual turn을 얻는다. 작가의 글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달리 볼 수 있는 창을 얻고, 그 창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한다.

작가는 지적 호기심이 일 때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작가가 던져주는 지적 자극으로 충만할 수 있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또 다른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어 더 없이 좋다. 앞으로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 창고(創考)에서 우리에게 어떤 미역(美力)을 선사할지 기대가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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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나만의 슈필라움에서 삶을 성찰해본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초* | 2019.06.10 | 추천17 | 댓글10 리뷰제목
오래전에, 그러니까 한 10년은 지난 것 같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남자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확인을 하기 마련인데, 개발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남자들은 그것이 어렵다며 따라서 잘 놀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결론이 인상 깊어 지금까지 얼핏이;
리뷰제목

오래전에, 그러니까 한 10년은 지난 것 같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은 적이 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남자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확인을 하기 마련인데, 개발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남자들은 그것이 어렵다며 따라서 잘 놀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결론이 인상 깊어 지금까지 얼핏이나마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 후로 저자의 책을 찾지 않을 것을 보면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찾아 읽게 된 것은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란 글귀가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독일어인 슈필라움은 여유 공간 혹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우리말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우리에게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었거나 아니면 그러한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라고 그는 해석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아파트라는 건축양식이 우리를 지배하면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사랑방과 내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이 주어졌었고, 설사 집안에 그런 공간이 없더라도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그런 공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 비로소 그런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지 싶다. 현대에 들어 옛날과는 다른 삶, 즉 끊임없는 경쟁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우리는 소위 ‘좋은 삶’과 그것을 이루어준다고 생각하는 ‘욕망’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생각이 미치면서 내 주위에 나를 성찰해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지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음을 발견하고서야 그런 공간을 찾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돌연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떠밀려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만의 일을 찾아 유학길에 오르고, 돌아와서는 충동적으로 전혀 연고도 없는 여수에 머무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만의 공간인 작업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고 했다. 이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저자가 자기만의 공간에서 쓴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저자의 생각과 거의 비슷해서였다. 저자는 자신만의 슈필라움이 필요했고 그래서 작업실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거창하지는 않았다. 그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회사를 관두면서 나 역시 충동적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연고가 전혀 없다는 것도 저자와 똑같다. 허름한 농가주택을 구입해 개조하면서 맨 먼저 만든 것이 서재였다. 안채와는 떨어져 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책이지만 그것들을 모아 내 기준대로 책장에 꽂고, 커다란 책상과 의자와는 별도로 앉은뱅이책상도 마련하였다. 관심이 없는 tv 같은 것은 아예 들여 놓지도 않았다. 그리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의 시선도 느끼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싶으면 읽고, 잠이 자고 싶으면 자고,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몸에 베인 강박관념과 타인의 시선을 떨쳐내고 나답게 사는 법을 생각해보고 싶었기에 때때로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책을 보면서 저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에세이들을 읽는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생각해본다. 그의 글 한편에 눈길이 머문다. ‘은퇴하면 바로 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은퇴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기준이 그 시절의 가치에 맞춰져있다.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우리 모두가 지금 아무 생각 없다. 바로 앞선 세대의 노욕을 보면서,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던 것이 짤리고 보니 다 이해 된다고도 했다. 특히 정치, 경제권에서 저렇게까지 하고 싶을까 했던 선배들에게 주어진 그 기회가 부럽다고도 했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195쪽) 우리라는 단어를 나로 바꾸면 바로 내 얘기가 된다. 그러기에 더욱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말 마냥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최소한이나마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원하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곤 한다.

 

집에 딸린 조그만 밭이 있다. 텃밭이라고 하기엔 조금 넓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기엔 형편없이 작은 규모다. 그 밭에 이런저런 작물을 심으면서 노동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평생을 책상에서만 앉아 일을 했는지라 몸으로 하는 일은 힘들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내가 언제 이렇게까지 땀을 흘리며 몸으로 일해 본적이 있었는지에 생각이 미친다. 아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싶다. 연고가 없는 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인 남성들은 평생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 하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며 평생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211쪽)는 저자의 말이 공감이 가는 이유이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 가능하면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꾸는 것이 가능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비가 온다. 그동안의 더위를 씻어내는 단비다. 이제는 바람도 멎었고 주위가 조용하기만 하다. 서재에 앉아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정원이 평화롭기만 하다. 커피 한 잔을 곁에 놓고서 젊은 날, 도시에서 살며 내가 소망했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시 돌아보며 지금의 내 삶은 어떤지를 성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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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김정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책*사 | 2019.06.24 | 추천15 | 댓글14 리뷰제목
 물때에 맞춰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바닷물로 인하여 갯벌은 항상 변화한다. 하루에 이러한 변화는 2번 볼 수 있으니 잠깐 지나쳐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갯벌의 변화를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꾸준히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도 있다면 사색에 잠기어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운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
리뷰제목

 물때에 맞춰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바닷물로 인하여 갯벌은 항상 변화한다. 하루에 이러한 변화는 2번 볼 수 있으니 잠깐 지나쳐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갯벌의 변화를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꾸준히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도 있다면 사색에 잠기어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운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그러한 것들을 오롯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여수에서 그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바다를 보면서, 또 지금은 '미역창고(美力創考)'라는 그만의 바닷가 작업실을 만들어가면서 보내는 그의 전혀 다른 시간은 나를 사색의 물결로 채우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다시 여러번 들춰보는 것도 어쩌면 당장은 이 책으로 인한 사색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 벗어나서 여수에서 살면 뭐가 좋은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저자는 "인생을 바꾸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을 꺼냈다고 한다. 굳이 이 말이 철학자 알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시 공간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표현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바로 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임에 반하여 저자는 공간은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방법 또는 수단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공간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주변에서 미친짓이라고 말림에도 불구하고 여수 끝자락의 섬에 새로운 작업실 '미역창고(美力創考)'를 만들고 있는 그는 진정으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우리가 삶에서 목표로 하는 공간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으로서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슈필라움(Spielraum)과 거리가 멀다라는 점은 문득 삶 자체에 괴리감마저 느끼게 된다. 정확히 슈필라움(Spielraum)에 해당하는 우리말의 표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괴리감은 이 시대에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 베텔하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이러한 공간의 부재를 통하여 슈필라움(Spielraum)을 '여유 공간'이 아닌 최소한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라고 재정의를 하는 부분은 이 책과의 만남으로 잠겨버린 '나'라는 갯벌이 언제 그 변화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지 쉽게 가늠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심지어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가족과의 공간이 우선이라는 기존의 상황은 저자의 아래와 같은 결심이 그저 있는 자의 여유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지금 이 섬의 미역창고(美力創考)에 작업실을 짓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할 것임이 분명하다. (중략) 아무리 괴롭고 문제가 많이 생겨도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서 왜 행복한가의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 p. 61 中에서 -

 

 사실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그리 색다른 개념은 아니지만, 저자는 그 공간의 물리적인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이 책에 대한 인세를 미리 받아서 그만의 작업실을 구축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눈으로 보이는 그러한 물리적인 공간이 만들어낸 사색의 물결이 어느새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저자의 생각이 공염불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눈으로 직접 그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시나 소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단정적 표현들 때문이다. 삶의 무게에 주눅 든 개인들은 감히 할 수 없는 통찰적 선언들을 작가들은 앞뒤 안 가리고 과감하게 내던진다.

 - p. 64 中에서 -

 일상의 다양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글로나마 해소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이러한 표현은 그가 시나 소설과 같은 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덧 우리는 이 책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된다.

 

 같은 시간에 속해 있다면 쉽게 알 수 없는 부분을 저자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품격을 충족시키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여타의 글들은 이러한 부분을 깊이 다루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하여 다소 어려운 표현들을 동원하여 보여주지만, 김정운의 그곳에서는 그러한 것조차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유시민 작가나 혜민 스님과 같이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을 자신의 외모와 성별로 매우 간단하게 극복하면서도 정작 이상순의 따뜻한 인상과 매력은 그의 어떤 것으로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상순의 아내가 이효리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이 만류하는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려는 그의 괴짜스러움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 인생을 자주 꼬이게 만드는 '질투' '열등감'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그가 그곳에 있기에 생각해 낼 수 있는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동시에 이런 여유가 그의 행복에 대한 심리학의 깊은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그가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내면을 향한 칼끝을 바깥을 향하는 것이다. (중략) 열등감은 외부로 투사하여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기 때문이다.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깊이 박힌 대못'처럼 그저 성찰의 계기로 품어야 한다.

 - p. 99 中에서 -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에서 질투와 열등감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인간이 타인과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극복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정작 극복할 수 있는 아픔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순응하려는 모순적인 상황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 발 비켜서서 이러한 것들을 '마음속에 깊이 박힌 대못'으로 수용한다. 이러한 대목들이 아마 저자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왜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그의 공간이 책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애서가에게는 분명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그의 '미역창고(美力創考)'는 그가 보유한 많은 책들과 함께하는 공간이기에 책을 통한 그의 행복론 역시 곧장 나를 이끌리게 한다.

 '침 바르기''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중략) '침 바르기'라는 존재 확인의 최후 보루가 독서라는 이야기다. 침 바를 일이 없으니 그렇게들 '분노와 적개심의 침'만 사방에 퉤퉤 뱉는 거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침바르기'가 동반되는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이다.

 - p. 127 中에서 -

 

 한국의 독서 실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우리의 시간 속의 현상을 그는 그의 슈필라움(Spielraum)에서 '침 바르기'라는 행위를 통하여 책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사람의 선택을 받는 책이 거꾸로 '침 바르기'를 매개로 하여 '존재 확인'이라는 의미로 연결할 수 있다라는 것이 어쩜 이렇게 물흐르듯이 연결시킬 수 있을까? 애서가로서 책을 읽을 때, 침을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은연중에 가끔 잘 넘겨지지 않는 책장을 살짝 찜을 발라서 넘기는 행위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메타 인지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오롯이 책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실제로 수많은 책을 소유한 그가 발췌독을 주장하는 대목 역시 나와 그가 속한 시간의 괴리감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었다. 아직까지는 읽기 시작하면 무조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인데, 저자는 오히려 정독이 다양한 책을 접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 지적하고 있으니 그러한 괴리감을 단번에 좁히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지적과 함께 바로 이 책을 어느 부분부터 넘겨보더라도 상관없게 글을 썼으니 그의 공간을 짓는 것처럼 실천으로 옮긴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이 책으로 인하여 생성된 사색의 물결로 덮인 나의 갯벌은 아직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단정할 수 없다. 그가 여수의 다양한 모습과 계절의 변화를 통하여 담론을 이끌어낸 것처럼 나 역시 내가 우선 살고 있는 곳을 직접 둘러보면서 바라보지만, 아직 큰 변화를 감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긴 바닷물에 잠긴 갯벌의 변화는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관찰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니 나 역시 내 주위의 이러한 모습을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곳의 변화만큼이나 내 자신의 변화 역시 그토록 빨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그래서, 잠겨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 전혀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그 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과 여운에 빠지게 된다. 읽을 때마다 달리 드는 생각들은 물때를 맞춰 변화하는 여수의 바다처럼 시시각각 많은 의미로 새롭게 보여지는 내용들로 인하여 이 책은 지금까지 여러번 넘겨보게 된다. 삶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읽을 때마다 나 역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져간다. 물론 저자처럼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여 온전히 나에게 맞춰 꾸밀 능력과 여유가 당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것처럼 일상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픈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통하여 그곳에서 나름의 시간을 보냈다면, 거꾸로 나만의 시간을 통하여 기존의 공간을 나만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거실 테이블은 낮에는 아이와 학생들이 아내와 함께 공부하는 공간이지만, 심야와 새벽에는 온전히 비어 있는 곳이다. 이 시간을 활용한다면 이곳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변화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저자와 같은 나만의 공간을 언제 확보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 불확실성을 희망삼아 현실을 활용하는 것이 나로서는 최선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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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67건) 한줄평 총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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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3점
그냥 신변잡기 정도. 한두 줄 건질 것은 있음.
5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5
a***s | 2019.07.19
구매 평점5점
사이다같이 시원한 글, 그리고 멋진 그림. 김정운의 미역창고 시리즈를 기대하며.
3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3
YES마니아 : 플래티넘 박*리 | 2019.06.06
평점5점
여유와 자유를 주는 공간, 슈필라움. 우리 모두 슈필라움이 필요하다. 생각을 키워주는 책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YES마니아 : 플래티넘 청**구 | 201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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