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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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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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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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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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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0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1.7만자, 약 3.8만 단어, A4 약 73쪽?
ISBN13 979119640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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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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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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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어 보이던 청춘들도 조금씩 낭만을 덜어내고 나니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혼자 뒤처진다는 느낌이 뭔지 바람 한 점마다 느껴지는, 그런 스물 아홉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채 시즌은 서서히 끝나가고 올해 이력서 넣은 곳도 딱히 맘에 들어서 넣은 건 아닌데 한 번 떨어졌으니 내년에는 지원할 만한 곳이 더 마땅치 않겠다 싶었다. 방금 끓인 라면 국물조차 차게 느껴지는 계절이었다. --- p.28

일종의 ‘전직 디스카운트’ 같은 게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도 새로운 업계로 자리를 옮길 때에는 웬일인지 조건이나 연봉 같은 것은 별로 신경이 안 쓰였다. 협상할 때야 빡빡한 척 굴었지만, 내심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돈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군.’ --- p.61

절반 정도는 홧김에, 절반 정도는 시대적 열패감에 시작한 백수 생활이었으니 별다른 계획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하게 된 백수 생활. 이전 직장에서 7년 근속 기념으로 한 달 정도 쉬어보긴 했지만 돌아갈 곳 없이 쉬는 건 또 달랐다. 생활이야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다. 지난번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도 조금 남아 있고. 불안하지만 또 안 좋을 이유는 없었다. 돈은 많지 않아도 시간이 많아졌으니 백수가 되었다는 건 그걸로 족했다. 항상 유한하고 부족하던 게 갑자기 풍부해졌을 때, 인간은 갑자기 황망해진다. 시간이라는 것이 남아도니까, 내가 그랬다. --- p.65

자괴감이 들었다. 그 자리가 엄청 탐나는데 능력이 안 되어서 못 가는 거라면 차라리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하는 것과 무관하게 남이 보기에 ‘내일모레 마흔인데 백수인 녀석’으로 보였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좀 만만하게 대해도 되는 구직자 정도로 취급받은 느낌.
그러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면 그곳에서 연락이 왔어도 가지 않았을 자리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또 내가 재직 중이었으면 그들도 나를 그리 대하지 않았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제야 ‘내가 울타리 하나 없이 정말 생각 없이 회사를 그만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p.73

출근 첫날에 마침 매월 첫 주에 하는 전체 회의가 있었다. 참석은 했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없었다. 숱한 영어 약자에다 커머스 특유의 수식이 엉켜 있었다. 그 와중에 분위기는 무척 험악했다. 매출 목표를 못 맞춘 것 같았다. 상무의 사자후로 회의가 끝나자 팀장은 그제야 나를 인사시켰다. 꽤나 살벌한 분위기에 ‘또 어디서 어린 양 하나가 들어왔구나’라는 표정으로 다들 떨떠름하게 인사를 나눴다. --- p.80

블랙 기업의 첫 번째 조건은 직원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많은 현상은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다. 어떤 회사나 일시적으로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블랙 기업의 특징은 그것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은근히 조장하며 압박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조직 구성이나 프로세스, 절대적인 인력 부족 등 구조적인 결함을 직원들의 개인 시간으로 땜질해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 p.98

다만 한 가지는 안다. 5년 전 첫 직장을 그만두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마도 첫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녔더라면 나는 여전히 ‘아, 몇 년 후에는 뭐하고 살지?’ 고민하고 있을 터였다. 그것은 그 첫 직장이 어떤 업계냐, 어떤 회사냐, 대우가 얼마나 좋으냐 등등의 현실적인 문제와는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어쨌든 안온할 수 있는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해보려 했고 그것을 통해 비록 드라마틱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직장인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실패를 겪어본 것은 직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해주었다. --- p.105

직장 생활이란 어떤 부분에서는 결혼 생활과 비슷한지라 서로의 필요에 따라 궁합이 정해지기도 한다. 큰일을 한번 이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남들이 보기에는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칼퇴근할 수 있고 업무 강도도 낮은 ‘신의 직장’이라도 뭔가 성장의 한계가 느껴진다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이라면 그다지 재미없고 앞으로의 커리어가 성장할 가능성은 없더라도 제시간에 퇴근이 가능하고 자기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가 나을지도 모른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이 있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이상한 회사는 다만 제각각 이상함이 있을 뿐이다. --- p.134

회사라는 거인 혹은 부족과 함께 어울리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라는 조직의 멘털리티가 가하는 가스라이팅에 자존감을 놓지 않는 것. 돈과 시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내가 그 조직에서 얼마나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느냐가 직장인으로서 건강함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회사와 자본주의사회가 들려주는 신화에 현혹되지 않는 것은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다. --- p.196

그러니 ‘그래 봤자, 회사 일’이지만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 상명하달 방식의 조직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기 쉽지 않고,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이어 뻥뻥 터져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김이 빠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웹툰 〈미생〉에 나온 조치훈 9단의 말을 떠올린다.
“그래 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그래도 내 바둑이니까.”
그러게 말이다.
“그래 봤자, 회사 일”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니까. --- p.231

스타트업은 종종 피벗pivot을 한다. 지금까지 생각해온 서비스의 핵심 기능이나 비즈니스 구조 등이 지금 조직의 역량이나 시장 상황과 맞지 않을 때 사업 방향성을 전환하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의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에서 꽤나 아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 모두 처음 살아보는 인생인지라 애초에 인생은 벤처 사업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에는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돌이켜봐야 한다. --- p.269

‘최종 병기, 사표’란 그런 의미다. 자아를 회사라는 거인으로부터 지켜줄 마지막 병기. 잊지 말자. 우리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함께한다는 의미다. 회사라는 부족에 속할지라도 언제나 ‘나’라는 개체 그대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직장인’이기에 앞서 직장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실존을 행해야 하는 한 개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의 KPI일지도 모른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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