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어려워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마다 글을 썼다. 여기 실린 글들은 미처 대화가 되지 못한 흔적인지도. 한 권의 책을 펴내는 일이 부디 대화의 시작이 된다면 좋겠다.
--- p.9
“저녁도 못 먹었어. 요새 일이 너무 많아. 아, 스트레스 받아….”
“어마야, 니 스트레스를 왜 받나. 그거 안 받을라 하믄 안 받제.”
“…….”
아니 무슨 스트레스가 전화인가. 안 받을라 하믄 안 받게.
역시 걱정해 주려고 전화해서 사람 속 터지게 하는 만국 엄마들의 화법이 있는가 보다.
--- p.18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시려면 역시 열심히 일해야겠어!”
그 정도의 ‘열심히’가 좋다. 그 정도의 열심히는 실천도 할 수 있고 기분도 좋으니까. “이 맛에 산다” 하는 순간이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스몰 픽처.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대체로 야망가였다.
자, 그럼 각자의 길을 갑시다.
--- p.27
강의 아버지는 겨울이면 모든 방에 발이 뜨끈뜨끈할 정도로 보일러를 돌린다. 그리고 냉장고 속에는 항상 시장에 서 떼어 온 고기들을 가득 쟁여 놓는다. 겨울엔 누구도 춥지 않게 지내야 하고, 식구들이 다 같이 둘러앉으면 늘 넉넉히 구워 먹을 고기가 있어야 한다. 평생 춥게 살았던 것, 고기를 마음껏 사 먹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습관을 만들었다고, 언젠가 강이 말해 준 적 있다. 과거의 서러움은 그렇게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결핍이,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려 애쓰는 사이, 그런 것을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 되는지도.
--- pp.64-65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버리는 시간일까? 벚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주는 나머지 세 계절을 버리며 살까? 그렇지 않다.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살 뿐이다. 벚나무는 한 철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인생은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 주말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봄의 한나절을 지켜보았는지도 모르겠다.
--- p.97
“술 마실 땐 왜 저렇게 즐겁나 몰라. 다음 날 즐거움까지 미리 당겨써서인가.”
!!!!
그래서였구나. 즐거움을 가불해서였다. 여러분, 제가 드디어 숙취의 비밀을 밝혀냈습니다!!! 다음 날 느낄 것까지 미리 당겨쓰니 오늘이 안 즐거울 수 없고, 다음 날이 되면 이미 하루 치 즐거움을 써 버렸으니 즐겁지 않은 게 당연한 거였다. 숙취를 나무랄 게 아니었다. 나는 순리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치로 할당된 즐거움을 당겨썼으면서 다음 날도 즐거우려 하면 그게 도둑놈 심보지. (…)
“좋아! 그럼 내일 치 즐거움을 당겨쓰러 가 볼까?”
--- p.117
그 시절 내가 제일 듣기 싫어했던 말은 “이런 건 나도 하겠다”라는 농담이었다. ‘이런 것’을 결코 하지 않을 사람들이 쉽게도 던지는 말. 누군가 꾸준히 SNS에 올리는 그림에 흘낏 눈길 주며 하는 말들. 독립 서점의 크고 작은 출판물들을 대충 넘겨 보면서 하는 말들. 작은 빵집에서, 수공예 상점에서, 누군가 공들여 만든 것을 들었다 놓으며 하는 말들. 거기 담긴 한 사람의 오랜 시간과 해묵은 초조함과 그럼에도 여전히 만드는 일을 놓지 못하는 마음을 전혀 보지 않는 말들
--- p.193
어느 날 전공 수업 시간엔가, 아니면 공강 시간의 단과대 계단에서였던가. 짓궂은 동기 한 명이 햇빛을 받고 있는 내 머리를 보고 특유의 부산 억양으로 “쩌, 저, 탕↗수육↘ 쏘스 흘러내리는 거 봐라!”라고 했고, 그 뒤로 한동안 ‘탕슉’이라 불리는 슬픈 역사를 갖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쁜 새ㄲ… 이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고, 아무튼 스무 살의 나는 시무룩한 탕수육 모양새를 하고서 캠퍼스를 걸어 다녔다.
--- p.193
“생일 잊어서 미안해, 근데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어.”
→ 진짜 마음이 있었다면 잊지 않았을 것이다. 매번 애꿎은 덤터기만 쓰는 ‘그런 게 아닌’ 마음은 또 무슨 죄인가.
“섭섭하게 해서 미안해,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 애초에 섭섭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어땠을까.
“나 원래 이런 거 잘 못 하는 거 알잖아.”
→ ‘원래’라니… 그냥 내가 그러지 않는 게 편하니까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 pp.234-235
59년생 윤인숙 씨는 사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고, 지금보다 더 넓게 살며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좁은 삶에 갇혀 있기엔 너무 큰 사람이다. 그녀만 알고 가족들은 내내 몰랐던 사실. 어쩌면 그녀 자신조차 오래 잊고 있었던 사실. 그 말을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 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