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라고 잘못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는 땔감, 재목, 꿀벌을 치는 양봉의 밀원식물(蜜源植物, honey plant), 식물성 비료, 가축 사료, 산사태 방지 등 여러 용도로 활용됐다. 그러나 왕성하게 번식하면서 자연 식생 발달에 방해가 된다며 점차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1891년 처음 들어온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외래 식물이다. 이후 조선 총독부는 아까시나무 목재를 철도 침목용으로 사용하려고 북미와 중국 청도 등에서 씨앗을 수입해 인천 월미도에 처음 심은 뒤 전국에 보급했다. 아까시나무는 도입된 지 130여 년이 지난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다. 한쪽에서는 사방용, 연료용, 목재 및 밀원식물로써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빈 땅에 대한 침입력이 너무 강해서 식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 도입돼 대규모로 식재되고 130년이 된 수종은 아까시나무가 유일하며, 우리나라 조림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종이다. 일제 수탈과 한국동란으로 황폐해진 민둥산들이 아까시나무의 대대적인 조림 사업으로 녹화될 수 있었으며, 1960~1970년대에는 산의 침식을 막아 주는 사방용 나무였을 뿐만 아니라 농촌에 연료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산지 녹화를 앞당길 수 있었다.
아까시나무는 콩과식물로, 뿌리혹을 가지고 있어 공기 중 질소를 질소 비료로 바꾸어 줌으로써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또한 빨리 자라 땔감을 제공하고, 양질의 꿀을 생산해 주며, 겉흙이 씻겨 나가는 것을 막는 사방 능력도 있다. 수명은 30~40년 정도로, 아까시나무가 서서히 죽고 비옥해진 산에 참나무류와 다른 활엽수들이 자라면서 자생 수종이 번성하는 울창한 숲으로 바뀐다. 오염이 극심한 지역에서 다른 수종에 비해 출현율이 높으며, 특히 대기 오염이 심한 곳의 식생 복원용으로 적합하다. 산성비에 대한 완충 작용이 뛰어나 도시 주변 환경수로 이용한다. 또한 우리나라 밀
원식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아까시나무꿀은 전체 양봉 산물의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까시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우리 풍토에 적응해 살아온 자생종으로 우리 국토를 푸르게 만들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북한에서도 조림 수종으로 널리 심어진다고 한다. 아까시나무가 어떤 종인지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산지가 황폐해져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의 산림녹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아까시나무보다 논란의 정도는 덜 하지만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도 푸대접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동남부가 원산지인 외래종 리기다소나무는 일제 강점기인 1907년경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한창 복구가 시작된 1960~1970년대에는 4,800㎢ 면적에 리기다소
나무 숲이 생겼다.
_ 영웅에서 역적으로 몰린 애꿎은 나무들 「제10장 미움받는 나무와 사랑받는 나무」 中
산에는 화려한 꽃을 피우며 우리의 눈길을 끄는 식물들이 여러 종류 있다. 그 가운데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산을 지켜 온 식물이 소나무이다. 산림청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여러 차례 소나무가 선정됐다. 우리 민족은 왜 소나무를 좋아할까? 왜 우리 산에
는 왜 소나무가 많을까? 우리 후손들도 소나무를 볼 수 있을까? 이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소나무를 어떤 나무로 생각하는지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애국가에도 나오는 소나무를 나라의 대표 나무인 국목(國木)으로 지정하려는 국회 의원 결의안이 추진된 적도 있다. 반면 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의 조림이 생물 다양성을 저해하고 큰 산불을 일으키므로 조림 수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소나무에 치명적인 소나무재선충병 때문에 소나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론도 나왔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한반도에서 소나무 숲이 사라질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있다.
소나무는 우리 국토, 생태계, 환경, 문화를 이해하는 데 출발점이 되는 나무이며, 우리 풍토에 가장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적응한 나무이다. 80년 전쯤에는 소나무가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의 75%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약 23%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직도 침엽수림의 40%, 혼합림의 27% 정도를 이루는 우리 숲의 핵심적인 수종이다.
우리 소나무는 자라는 곳에 따라 나무 생김새가 다르다.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뒤틀려 자라 한국화에 예술적으로 그려진 소나무가 사실적인지, 낙락장송(落落長松)이라 불리는 곧게 우뚝 자란 소나무가 정상인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동네 뒷산 소나무는 키가 작고 줄기도 구불구불해 하나같이 쓸모가 없어 보인다. 오랜 세월 마을 주변에 자라던 소나무 가운데 쓸모 있는 소나무는 이미 집을 짓거나 관을 만들려고 베어 없앴기 때문이다. 잘생긴 소나무는 모두가 욕심을 내서 잘라 버려 쓸모가 적은 소나무들만 남겨졌고, 그런 소나무끼리 꽃가루받이를 하여 후손을 남겼으니 번듯한 소나무를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못생긴 나무가 남아서 산을 지킨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소나무조차 없었으면 마을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지는 짐작이 간다.
너른 뜰에 자라는 소나무는 주변 다른 식물과 햇빛이나 토양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할 필요가 크지 않기 때문에 키는 작지만 가지 폭이 넓게 퍼지며 자란다. 가지가 넓게 자란 대표적인 소나무에는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된 경북 예천 석송령(石松靈)이 있다. 주변 토지 6,600㎡를 유산으로
받아 해마다 세금도 내고 장학금도 주는 나무다. 석송령은 키 10m, 직경 4.2m, 동서 폭 32m, 남북 폭 22m, 그늘 면적 990㎡에 달한다.
_ 소나무 이야기 「제12장 우리 곁에 함께 사는 나무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