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비영리단체인 무지개책갈피에 소속되어 있다. 우리는 퀴어문학을 소개하고 리뷰를 쓰며 작가, 독자, 비평가, 편집자, 번역가 등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퀴어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대체로 ‘저게 의미가 있나?’ 하고 누군가 궁금해하면 ‘우리에겐 의미가 있다’라고 대답하는 정도의 소소한 활동이다. 무지개책갈피의 성과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전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작은 희망일 수 있는 곳. 전철이 오가듯 퀴어문학에 관심 있는 누구라도 자
유롭게 머무르고 떠날 수 있는 곳. 그래서 우리의 정식 명칭도 한국퀴어문학종합 ‘플랫폼’ 무지개책갈피다.
올해로 5년 차가 된 이 단체의 시작은 취미였다. 대학생 시절,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일개미처럼 모았다. 당시에는 퀴어문학이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지식백과와 해외 사이트를 뒤져서 정리한 200여 편의 작품을 기반으로 무지개책갈피를 만들었다. 책과 관련되었다고는 하는데 출판사도, 서점도, 도서관도 아닌 이상한 단체를 말이다.
문학과 관련된 직업이라면 작가, 연구자, 비평가, 서평가, 출판노동자, 번역가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문학 활동가’로 생각하고 그렇게 소개한다. 굳이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책이 많이 팔려서 퀴어인권 신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 p.14~15
“너, 왜 저런 책들 보냐?”
“어떤 책이요?”
“너도 혹시, 뭐, 성소수자 그런 거냐?”
잠깐 고민했다. 커밍아웃할 절호의 타이밍인가.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기뻤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그렇다면 엄마는 인정 못 한다. 비정상이고 더러운 거잖아. 아니지?”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앞에서 의외로 조금도 화나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의 공포를 느꼈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내가 ‘성소수자 그런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 p.24
한번은 애인과 커플 잠옷을 맞춰 입고서 사진을 찍었다. 이성애자 친구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보배가 하늘색이네?”라고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응” 하고 대답했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 질문의 뜻을 이해했다. 친구는 내가 하늘색, 애인이 핑크색인 것을 보고 ‘보배가 남자 역할이네?’ 하고 물은 것이었다.
문득 그림 하나가 생각난다. 젓가락과 젓가락이 연애를 하는데, 포크와 숟가락 커플이 “너희 중 어느 쪽이 포크야?” 하고 묻는 그림이다. 황당해하는 젓가락의 표정이 일품이다. 젓가락 입장에서는 함부로 포크와 동일시하는 게 이상하기도, 기분이 상하기도 할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타인과 같고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같다고 보면 다 같고, 다르다고 보면 다 다르다. 그러니 기왕이면 후자 쪽을 중요시해야 하지 않을까.
--- p.31
“앞으로의 파트너와 어떤 삶을 꿈꾸시나요?”
“저는 《오후 3시 베이커리》처럼 살래요.”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을 것 같은, 작가 이연의 《오후 3시 베이커리》는 영화도 소설도 아닌 동화다. 열세 살 ‘상윤’이 새엄마의 ‘오후 3시 베이커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통해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보기만 해도 빵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고소한 일러스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상윤이 만난 가족 중에서도 나를 울린 가족은 노년기의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상윤이 ‘검은 할머니’와 ‘하얀 할머니’라고 부르는 두 사람은 몇 십 년을 함께 살았으며 어린 상윤의 눈에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보일 만큼 애틋하다. 하지만 검은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하얀 할머니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회를 거절당하고, 상윤은 왜 두 사람이 가족이 아니라는 건지, 가족은 누가 정하는 건지를 고민한다.
내가 할머니가 될 즈음이면 조금은 변해 있을까. 사회가 정의하는 가족에 침을 뱉으면서, 팔짱을 끼고 책을 읽고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나의 가족을 만들어가고 싶다. 동네 빵집 아들내미 보기에도 마냥 사랑하는 사이 같은 다정한 가족 말이다.
--- p.41~42
에리카 종의 소설 《비행공포》에는 “상상력의 부재. 바로 그게 괴물을 만든다”라는 구절이 있다. 상상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러니 최대한 제멋대로 상상하자. 무책임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지간한 작품은 퀴어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이것도 퀴어문학인 것 같은데요’라는 목소리를 되도록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반면 ‘이건 퀴어문학이 아닌 것 같은데요’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대한다. 가능하다면 모든 작품을 퀴어한 시선으로 본다. 조금 수상하고 조금 이상한 부분을 집요하게 찾아 마음껏 이야기하면 어떨까. 말하자면, 전지적 퀴어 시점이랄까.
--- p.72
나는 당신의 얼굴을 모른다. 얼굴을 알더라도 목소리를 모른다. 혹은 얼굴과 목소리를 뺀 나머지를 모른다. 나에게 당신은 너무 많고 그래서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멋대로 이렇게 상상한다. 당신도 나처럼 자기 나름의 성실함과 약간의 절망과 예상치 못한 행복으로 하루를 채우면서, 그저 그렇지만 소중한 삶을 이어갈 거라고. 그러하기를 기도할 때도 많다. 책과 영화, 친구와 애인을 통해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 사실이 막막할 만큼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당신에게 많은 말을 빚지고 있고 그것을 얼마간이라도 갚으면서 살고 싶다. 지금 우리는 아주 조금, 닿아 있다.
--- p.115~116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불편하다, 그냥. 보기 싫다, 그냥. 한편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대놓고 말하기는 부끄러웠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했다. 동성애가 좋으면 집에서 해라,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된다. 이유를 물으면 그들도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냥이다. 자꾸 안으로 안으로, 아니면 아예 바깥으로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를 쫓아내고 싶었던 이들 덕분에 나는 적극적으로 걷는 법을 배웠다. 뚜벅뚜벅, 척척, 갈 길을 만들어가는 거다.
나의 첫 퀴어퍼레이드는 2010년 청계천이었다. ‘I’m Gay and Proud’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무지개 깃발 아래 힘차게 걸었던 그 기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걷는다, 고작 걷는다는 것이 그렇게 감격적이라니. 스스로도 몰랐던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퍼레이드 이전까지 나는 걸음으로써 나를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퍼레이드에서 걷는 사람은 바로 나였고 그것이야말로 그 걷기에서 가장 중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바로 내가 걷는다. 함께 걷는다. 우리는 내쫓기지 않았으며 도망가지도 멈추지도 않는다는 선언의 움직임. 집에서는 살고 거리에서는 걷는다. 왜? 그냥, 나라서.
--- p.121~122
그날 이후로 나는 좋아하는 것을 숨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누드화를 숨기고, 삼촌 방에서 발견한 야한 비디오도 숨겼다. 중학생 시절엔 친구와 주고받은 애정 가득한 교환일기를,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이반’ 사이트 검색 기록을 숨겼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을 늘 무언가 열심히 숨기며 보냈다. 10년을 그랬으니 대학생이 되어 여자친구와 몰래 연애하는 일도 특별히 어렵지 않았다. 뭐든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도 있지 않나. 나는 사랑 숨기기 전문가가 됐다.
--- 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