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후수리, 후수리 사단, 그리고 『차이징』
“『차이징』은 딱따구리와 같은 존재다. 우리는 영원히 나무를 쪼아댈 것이다. 이는 나무를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다. 나무가 더 곧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 후수리의 언론관
“후수리가 발행하는 잡지와 거기서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 및 커뮤니티는 이미 중국 경제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공공 플랫폼이 되었다. 중국이 세계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수록 그 잡지는 아마도 전 세계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중국 매체가 될 것이다.”
_쉬즈위안, 『독재의 유혹』 저자
과거 중국 매체는 국가기관에 의해 통제되고 그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선전기구의 역할을 해왔다. 중국에서 매체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개혁개방 시기 이후라고 볼 수 있는데, 연구자들은 보통 그 시기를 중국 정부가 문화적 역량을 꾀하는 데 집중한 1990년대로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후수리가 1998년에 창간한 재무경제지 『차이징』은 주가조작, 불법 은행업무, 분식회계 등에 관한 획기적인 기사와 과감한 폭로로 ‘암흑과 함정의 폭로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중국 언론계에 혁신을 가져왔다. 중국인은 경제신문의 보도에 ‘상업 보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차이징 보도’라는 말을 쓸 정도였다.
『차이징』은 특히 경제 신문이 지향해야 할 보도 방향과 담론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당시 경제지 기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겉만 핥았던 재무 분석의 경우, 이른바 ‘후수리 사단’이라 부르는 후수리를 비롯한 『차이징』 기자들은 재무제표를 읽고 그 무미건조한 숫자로 구성된 세관 기록의 이면을 파헤칠 줄 아는 능력을 선보였다. 물론 『차이징』이 빛을 발하는 데에는 구성원들의 뛰어난 개인 능력과 후수리의 리더십도 한몫했지만, 『차이징』 창간 당시, 중국 개혁의 새로운 골간이 주식시장, 금융계, 경제정책으로 모아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009년 후수리와 『차이징』 출신 기자들은 차이신 미디어를 만들어 새로운 경제 담론 생산의 장을 마련했다. 후수리와 그의 동료들은 현재 중국 사회에서의 개혁 추진자, 전 세계적인 새로운 경제 대화에서 중국 대표로서의 소임을 수행해나가고 있다(더 자세한 내용은 책 속 부록 후수리와 『차이징』참조).
정세 파악: ‘개혁 담론’ ‘위기 담론’ 그 속에서 중국의 위치는 무엇인가
『중국, 세계경제를 인터뷰하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개혁’과 ‘위기’다. 후수리와 동료들은 2008 세계금융위기가 불러일으킨 경제적 난국 속에서 미국 경제, 유로존 경제, 일본을 위시한 동아시아 경제를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나라인 ‘중국’ 그리고 라이벌 관계에 있는 미국을 소환한다. 그 이유는 경제 대국으로서의 가능성을 각국의 경제 엘리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타진해보려는 것도 있지만,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싼 중국의 움직임이 과연 옳게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려는 차원이기도 하다.
후수리는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와의 인터뷰(「유로화의 가치를 정하다」참조)에서 “미국 경제가 둔화되자 중국과 다른 신흥경제국의 수요가 미국 수요의 감소분을 어느 정도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과의 대화에선 “이번 위기가 지나가면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중국이 더 강대해질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 등을 과감히 던진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그녀는 중국의 올라간 위상을 간접적으로 확인해보려는 시도를 선보인다. 다만 이것은 급부상한 중국 경제에 관한 자만이 아니라 2008 세계금융위기 이후 주목받고 있는 중국 경제의 위상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 것이다.
이런 후수리의 심리는 지나친 겸양보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균형 감각으로 대변되는 냉정한 현실 인식으로 나타난다. 가령 헨리 폴슨에게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미국의 요구 사이에서 엇갈리는 지점이 있다고 그녀가 지적할 때, 폴슨의 의례적인 응답을 “좋게 말하면 한결같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했던 말을 또 하는 것으로 새로운 내용이 없다. 새로운 것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딱 잘라 논평하는 것이 그 예다.
의중 파악: 협상의 대가들은 어떻게 연기하는가
『중국, 세계경제를 인터뷰하다』의 특성 중 하나는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엘리트들의 명석한 전략을 들을 수 있다는 것뿐 아니라 각국의 협상대표로 활동하는 그들이 어떤 퍼포먼스로 협상 과정이나 대외 행사에서 자신들의 의중을 내비치는가를 후수리와 동료들의 시선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과의 인터뷰에서 후수리와 동료들은 가이트너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왜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런민대 부속중학교 학생들과 농구 게임을 한 것인지 그 의중을 처음 질문으로 택한다. 그리고 후수리는 가이트너의 의중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중앙당학교에서 강연하고 미국산 조명 시스템이 설치된 체육관에서 학생과 농구를 함으로써 가이트너의 ‘인문적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났다. 바로 앞으로 몇 년 안에 국제 무대를 올라서기를 희망하는 중국 지도자와 접촉하고 중국에서 가장 전망이 밝은 젊은이들과 접촉한 것이다.”(68쪽)
룽융투 전 대외경제무역부 수석 협상대표와의 인터뷰는 일반 대중이 뉴스를 통해서도 잘 접할 수 없는 비화가 세세하게 공개되어 있다. 룽융투는 중국의 ‘WTO 가입’ 담판과 관련한 미국측의 불편한 태도를 문제삼으면서 후수리에게 당시의 상황을 거침없이 소개한다.
“그 며칠 동안 있었던 담판은 정말이지 접전의 연속이었습니다. 한순간 희망이 보이다가도 일순간 사라졌죠. 미국 협상대표의 연기 실력은 대단했습니다. 나중에 전 미국인의 연기가 끝내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미국 대표와 오랜 기간 협상을 해봐서 미국인이 쇼를 할 때 사용하는 기교를 잘 알고 있습니다.”(104쪽)
에필로그: 앞으로 10년, 누가 게임을 주도할 것인가를 은밀하되 구체적으로 캐묻다
최근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가운데 향후 10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인선을 발탁하는 양회(전인대와 정협)가 끝나면서 시진핑 정권 기간 중국의 경제를 이끌어갈 경제라인의 윤곽이 나왔다. 『중국, 세계경제를 인터뷰하다』는 특히 후수리의 특별한 관심사이자 전문적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금융시장과 관련된 사안들이 각 장에 배치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본 책에 인터뷰이이기도 한 저우샤오촨 중국인민은행 총재의 유임은 중국 금융개혁의 계속된 추진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러한 정부의 개혁 움직임과 그 지속성은 후수리와 그의 동료들이 이 책을 통해 넌지시 내비치는 주문이기도 하다.
아울러『중국, 세계경제를 인터뷰하다』는 참여 기자들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라는 경제 전망에 자주 제시되는 시선을 고수하면서도, 각국의 경제정책, 이에 영향을 주고받는 기업들의 전략, 금융자본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투자은행을 위시한 금용자본회사들의 다양한 전문가적 전략을 숙지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관점을 표현한다는 특성이 있다. 고로 향후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둘러싼 파워 게임에서 승자가 되고자 애쓰는 국가와 관련 엘리트들의 전망이 ‘세계경제 읽기’에 필요한 전문 용어와 이와 유관한 경제적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유로존 경제의 안정/불안정을 둘러싼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의 긴장 관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서브프라임 위기를 통해 미국인이 ‘구제금융’이라는 개념에 가지는 어떤 반감, 미중경제전략대화라는 협상 과정의 실효성과 미국/중국의 엇갈린 시선, 중국과 미국의 주도적 경제 관계 속에서 유럽식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는가라는 문제의식, 러시아의 현대화 개혁 추진과 세계경제 질서로의 유입과 그 야망, 과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수사로 대변되었던 일본 경제의 흥망성쇠와 결부되어 나타나는 일본우정민영화 전략과 일본의 경제 지식인들이 가지는 일본 금융 재생 개혁의 청사진, 중국 위안화 절상 문제와 환율 제도 그리고 중국이라는 신흥 경제 대국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IMF의 속내 등이 현재 경제 현실 속에서 각국마다 달리 시행하는 통화정책, 환율정책, 재정정책의 거시적 관점과 이러한 정책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경제 심리라는 미시적 관점의 교차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