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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스토리 세계문학-0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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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420g | 142*202*20mm
ISBN13 9788998934088
ISBN10 8998934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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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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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수진
프랑스 리모주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생테티엔 장 모네 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석사 과정 중이며, 프랑스어와 영어 도서 및 잡지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이상한 인터넷 상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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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온 전보를 받았다. ‘모친 사망. 장례는 내일 치를 예정임. 삼가 조의를 표함.’ 이것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어제였나 보다. --- p.9

그다음은 모든 일이 순식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생각나는 일은, 마을 입구에서 담당 간호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곱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가 기묘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너무 천천히 가면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빨리 가면 땀이 나서 성당에 들어갔을 때 오한이 날 수 있죠.” 간호사의 말이 옳았다. 해결책은 없었다. --- p.25

멀리 건물 입구에서 살라마노 영감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그는 허둥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는 개와 함께 있지 않았다. 노인은 사방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빙빙 돌고 어두운 복도를 들여다보려 애쓰면서 두서없이 중얼거리더니 빨갛게 충혈된 작은 눈으로 다시 거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레몽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영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혼잣말로 “더러운 놈, 냄새나는 놈”이라고 중얼거리는 걸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초조하게 왔다 갔다 했다. 개가 어디에 있느냐고 내가 묻자 노인은 나한테 느닷없이, 개가 도망가버렸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p.50

그러자 그는 삶의 변화에 흥미가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도 삶을 바꿀 수는 없고, 어디에 살든 결국은 그게 그거이며, 나는 이곳에서 사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장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항상 핵심에서 비껴나는 대답만 하고 야망도 없으며 사업을 할 때 그런 성격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일하러 돌아왔다. 나는 사장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삶에 변화를 주어야 할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나도 학생일 때는 야망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학업을 그만두어야만 했을 때 그런 것들이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 pp.54~55

그리고 그 순간 아랍인은 일어나지 않은 채 칼을 꺼내 햇빛 속에서 나에게 겨누었다. 금속에 반사된 빛이 마치 긴 칼날처럼 내 이마를 베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혀 있었던 땀이 한꺼번에 흘러내리며 눈꺼풀에 미지근하고 두터운 막을 씌웠다.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눈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이마를 때리는 심벌즈만 한 햇살과 마치 창날처럼 내 앞을 날아다니는 칼의 눈부신 반사광뿐이었다. 모든 것을 불사를 듯한 빛의 칼날이 내 속눈썹을 물어뜯고 고통스럽게 눈을 쑤셔댔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이 비틀거렸다. 바다는 두텁고 뜨거운 숨결을 실어왔다.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불비를 쏟아 내리는 것 같았다. 내 온몸은 바짝 긴장했고 권총을 손에 꽉 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손잡이의 매끄러운 배를 느꼈다. 건조하면서도 귀가 멍해지는 폭발음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 pp.74~75

나는 나도 다른 수감자들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를 그렇게 대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을 감옥에 가두는 거죠” 하고 간수장이 말했다. “그것 때문이라니, 무슨 뜻이죠?” “자유 말이에요, 그게 이유죠. 당신에게서 자유를 빼앗은 거예요.”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군요. 그것 말고 벌이랄 게 뭐가 또 있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렇죠, 당신은 이해하는군요. 다른 수감자들은 이해를 못 하거든요. 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죠.” 그렇게 말하고 간수장은 돌아갔다. --- pp.95~96

그때 검사는 내 쪽으로 돌아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비난을 퍼부었는데, 사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을 별로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검사가 그토록 가차 없이 몰아붙이는 것에 놀랐다. 나는 그에게 다정하게, 거의 애정을 담아서 나는 그 어떤 일도 진심으로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오늘 혹은 내일, 앞으로 일어날 일만을 생각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아무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었다. 내게는 다정하게 대하거나 선의를 보일 권리조차 없었다. --- p.122

다른 사람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신이 말하는 신이 결정했거나, 살아 있는 사람들이 결정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운명이 결정했거나, 내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내가 이런 운명을 맞이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처럼 ‘내 형제여’라고 지껄여대는 수많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도 이런 운명에 처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는가? 모든 사람은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 세상엔 특권을 가진 사람밖에 없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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