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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마다 사라지는 인류의 기억] 『앨리스 죽이기』 고바야시 야스미의 SF 미스터리 소설. 인류의 기억이 10분씩만 유지되는 세상에 적응하는 소시민의 일상과, 장기 기억을 외부 메모리에 담으며 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았다. 기억이 곧 메모리인 사회, 추억도 미래도 없이 육체만 남은 자들을 통해 묻는 인간의 본질. - 소설 MD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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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막간 제2부 해설 |
Yasumi Kobayashi,こばやし やすみ,小林 泰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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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진짜야? 내가, 다중 인격인 거야?
게다가 다른 인격들이 있는 걸 전혀 몰랐다고? 지금, 글을 쓰는 나는 다섯 번째 인격이야? 하지만 이상해. 7시가 지나 밥을 먹고 내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 것까지는, 나도 기억한다고. 그럼 네 번째 인격과 나는 같은 인격인가? 그런데 이상하잖아. 나는 10시 반에 글을 쓴 기억이 없단 말이야. 손글씨 필체는 분명 난데. 일단 진짜 다중 인격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자. 저기요, 다른 인격이신 분, 이걸 읽으면 답장 좀 해줄래요? 나는 유키 리노. 열일곱 여고생의 인격입니다. 겉보기에도 여고생 맞는 것 같은데, 사실은 쉰 넘은 아저씨가 본체이고 그 머릿속 인격일지도 몰라 일단 자기 소개합니다. 잠깐, 지금은, 11시 7분. --- p.10 “과장님, 큰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와 가자미의 손가락에서 냄새가 납니다.” “회라도 집어 먹었나?” “아마도 이건, 오징어를 잡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아,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고? 휴식 중이었으면 특별히 문제가 될 건 없지.” “저희는 오늘 오징어를 잡으러 간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어?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휴식 시간 조금 전, 18시 부근 아닐까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렇다면 긴급 사태 아닌가? 우리는 원자로를 책임지고 있어. 원자로의 안전 확인이 급선무야. 우선 각자가 담당한 설비의 데이터를 점검해야겠지.” “그겁니다. 지금, 저희가 하고 있던 작업을 보세요.” “이건…… 지금, 이미 점검하고 있단 말인가?” --- p.40 “자네가 직접 대리 시험을 보는 게 아닐세. 그저 시험 동안에만 그 메모리를 빌려달라는 거네.” 너무나 오만한 사고방식이었다. 개인의 노력 결과를 돈으로 사려는 것이다. 그러나 제시된 금액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일종의’라고 말씀하신 건가요? 그러나 부정인 건 분명하죠.” “그럴까? 내게는 애매한 경계 지대 같은데. 핵심은 본인이 아니라 메모리의 문제야. 메모리 안의 데이터는 메모리의 성능에 포함되지. 일종의 소프트웨어 같은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 p.142 하루나는 그저 재미있는 농담쯤으로 생각했다. 쌍둥이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실수였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는데 이윽고 점이나 오랜 흉터 같은 몸의 자잘한 차이를 깨달았다. 이건 여동생 하루카의 몸이었다. 하루나는 일어나 병실에 있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봤다. 정말 닮긴 했다. 하루카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아주 작은 위화감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기분 탓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준이었다. 그렇구나. 우리 자매는 이렇게 닮았구나 싶어 감탄했다. 기사가 메모리를 잘못 끼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하루카도 깨어나 자신의 몸이 하루나의 것이 되어있음을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 아이는 조금 둔하니까 의외로 아직 모를 수도 있겠다. 좋아. 모르는 척 하고 있어야지. 하루카가 언제 알아차릴까? 만약 얼굴을 맞대고도 한동안 알아채지 못하면 실컷 놀려줘야지. --- p.166 “아빠?” 아야는 살짝 미소 짓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야는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몇 분만 지나면 끝이리라. 부서진 반도체 메모리는 절대 복원할 수 없었다. 아야에게는 새로운 메모리가 꽂힐 텐데 그렇게 되면 아야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모두 잃을 것이다. 더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상처를 보면서 수십 초 안에 죽음이 찾아오리라 확신했다. 미즈키와 사토루는 어디 있을까? 나는 아내와 아들이 무사하길 빌었다. 아니, 둘은 틀림없이 살았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는 기억과 가족을 잃은 채 살아야 했다. 나는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왜 그때, 충돌을 피하지 못했지? 미즈키가 살았다면 그녀는 나 없이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들과 영원히 기억을 잃은 딸을 키워야 한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가족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 p.200 |
“모든 기억이 10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당신이, 그리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십시오.“ 여고생 리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기억에 이상이 있음을 느낀다. 분명 저녁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그 다음의 기억이 없다. 이상함을 느낀 리노는 자신이 다중 인격은 아닌지 의심하며 컴퓨터에 메모를 남기고, 계속 덧붙여진 메모를 토대로 10분마다 기억이 사라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시각, 인류 전체에게 닥친 기억 장애는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의 뇌에도 예외 없이 찾아온다. 기억에 이상이 있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갑작스레 울리는 경보음. 과연 이들은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상식적인 가치관에 도전장을 내밀며 미쳐버린 세계를 꿋꿋이 그려온 블랙 코미디언 고바야시 야스미의 뒤틀린 생존극 베스트셀러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분리된 기억의 세계』는 ‘인류 전체의 기억이 10분 정도만 유지되는, 이른바 장기 기억 장애가 일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여타 소설과 영화에서 보이던, 엘리트들이 모인 정부 중추나 비밀스러운 군부를 무대로 삼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의 얼빠진 혼잣말과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이 맨손으로 더듬더듬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그려질 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생명체답게 비상사태가 터질 때마다 멋지게 등장하던 히어로는 없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소시민일 뿐이다. 초라하지만 나름 진지하게 위기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리얼한 몰입감과 씁쓸한 웃음을 선사하며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느끼게끔 해준다. 개별 지성이 사라진 인류 진화의 끝은? 옴니버스 구성의 재미와 SF적 상상력을 결합시킨 매력적인 페이지터너 갑자기 찾아온 기억 장애가 계속 이어진다면, 인류 문명은 어떻게 달라질까? 저자는 두 번째 질문을 던지며 제2부의 포문을 연다. 제1부가 갑자기 찾아온 기억 장애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을 통해 그렸다면, 제2부는 시간이 흘러 장기 기억을 외부 메모리에 담는 게 일상이 된 근미래의 기이한 소동을 그린다. 메모리를 복사하는 작업자의 실수로 똑같은 기억이 삽입된 일란성 쌍둥이, 교통사고 때문에 메모리가 파괴된 다섯 살짜리 딸에게 자신의 메모리를 삽입한 아빠, 대리시험을 위해 돈을 받고 자신의 메모리를 빌려준 남자의 이야기 등 각각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구성으로 펼쳐져, 한 권의 단편집을 읽는 듯한 재미를 함께 맛볼 수 있다. 그리고 패닉 SF 블랙코미디인 줄만 알았던 이 작품의 수면 밑에 실은 인류 진화의 끝을 그리는, SF의 왕도라 할 만한 주제가 숨어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추억도 미래도 없는 육체만을 과연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죽은 이의 모든 기억을 재생하면, 그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기억 장애가 찾아온 뒤로 수십 년, 근미래를 그리는 제2부에서, 작가는 블랙 유머를 넘어선 바닥 모를 깊이의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모든 기억이 10분이면 리셋 되는 대망각의 날 이후,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했다. 그들은 자신의 뇌로 장기 기억을 수행한 경험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반도체 메모리에 의존해서 살았고, 그들에게 기억이란 반도체 메모리가 전부다. 장기 기억이 저장된 메모리를 빼는 순간, 더 이상 인간은 지적 생명체일 수 없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본질은 어디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 기억 장애에서 비롯된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논리적인 사고에 따라 진행되면서 얼마나 장대하고 기묘한 세계로 변모하는지, 이 작품은 예측 불가능한 플롯을 통해 기막히게 그려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