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액체를 사랑한다. 온몸을 물로 흠뻑 적시거나 욕조에 가득찬 물에 푹 잠겨 있을 때의 행복감은 경이롭다. 병에 담긴 액체비누며 샴푸, 컨디셔너, 크림, 치약이 주는 풍요로움이 없는 욕실을 제대로 된 욕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우린 이런 절묘한 재주를 가진 액체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해롭지는 않을까? 암을 유발하지는 않을까? 혹시 환경 파괴범은 아닐까? 액체를 향한 환호와 함께 의심의 눈초리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기체도 고체도 아닌 것이, 무엇인가 신비롭고 짐작하기 힘든 변덕쟁이라서일까.
--- 「프롤로그 : 기묘하고 놀라운」 중에서
액체가 흐를 수 있는 것은 그 구조 때문이다. 액체는 혼돈 상태의 기체와 정적인 상태의 고체 사이의(분자의 경우) 중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체는 분자들이 충분한 열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서로 떨어진 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기체를 역동적으로 만든다. 기체는 스스로 팽창해 주어진 공간을 가득 채우지만 구조가 없다. 고체의 경우 원자와 원자, 분자와 분자 사이의 인력이 원자, 분자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열에너지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그들끼리 서로 결합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고체는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자율성은 거의 없다. 어떤 그릇을 하나 집어 들면 그릇의 모든 원자는 이미 뭉쳐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있다. 액체는 이러한 기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다.
--- 「폭발적인 : 등유」 중에서
물이 뭉쳐서 흐르게 될 때는 그 크기가 중요하다. 작은 연못 위에 바람이 불면 마찰이 생겨 바람은 느려지고 물을 밀어붙인다. 이로 인해 수면이 오목해지고, 마치 고무줄이 늘어나면서 저항이 생기는 것처럼 물의 표면장력이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바람이 멈추면 중력과 함께 장력이 풀리면서 고무줄처럼 수면이 원래 형태로 회복된다. 이때, 하나의 물 분자가 다른 물 분자의 자리로 이동하고, 또 다른 물 분자가 다른 물 분자 자리로 이동하는 것처럼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는 물결이 발생한다.
--- 「깊은 : 바다」 중에서
손가락뿐만 아니라, 요즘은 접착제가 세상의 많은 것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시속 800km로 난기류를 견디며 날고 있는 이 비행기가 충분히 보여주었듯이, 앞으로 더 많은 것이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접착제로 붙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밖에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다른 생명체가 얼마나 강하고 끈적끈적한 다양한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여러 과학자들이 거의 매일 식물이나 조개류 또는 거미가 사용하는 새로운 접착제들을 발견한다.
기내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휙휙 넘기다가 [스파이더맨]을 발견하고는 멈칫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끈적거리는 것은 정말 일종의 초능력이야.’ 그리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 「끈적끈적한 : 접착제」 중에서
다시 먹는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인간에게 있어 침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음식을 적시고 미끌거리게 만들어 삼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활 작용이 없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친구들과 ‘크래커 많이 먹기’를 해보면 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마시지 않고 1분 안에 크래커를 최대한 많이 먹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조한 크래커 하나에 침이 너무 많이 흡수돼서, 두 개째 먹으려면 입안이 긁히거나, 건조하고 부스러진 혼합물을 거의 삼킬 수 없게 된다. 다행히도 침이 음식의 극심한 건조함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그래서 보통 음식을 먹을 때 액체를 함께 마시곤 한다. 버터, 마요네즈, 오일, 마가린과 같은 스프레드를 건조한 음식에 발라 먹을 수도 있다.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본능적인 : 침」 중에서
다양한 종류의 액체비누는 모두 합쳐서 1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되었다. 우리는 세제를 사용하여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향기가 나도록 하고, 옷은 물론 머리카락까지 청결하게 가꾸고,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액체비누야말로 인구 밀도가 높은 세계에서 우리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고 질병의 확산을 막아주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구매할 때 지불하는 비용의 대부분은 마케팅 비용이다. 세제의 필수 성분인 세정 성분 자체는 저렴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열대 지역의 숲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욱 생각해야 한다.
나는 고체비누를 좋아한다. 손에 딱 잡히는 크기에, 이것을 사용하여 씻을 때 걱정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그 촉감을 즐긴다. 그렇다. 고체비누는 시장성이 떨어지지만 사실 나는 그래서 고체비누를 좋아한다. 비누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누를 사는 것이지, 비누가 우리를 더 성공적이고 더 바람직하거나 섹시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씻어내는 : 세정제」 중에서
이 책을 여기까지 읽어온 당신에게, 이런 액체의 거동이 그리 놀랍게 느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액체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기체도 고체도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무언가다.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고 강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법자이고 조금은 무서운 편이다. 그게 그들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체를 통제하는 우리의 능력은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장담하건대, 21세기 말쯤이면 ‘랩온어칩’의 의료 진단과 값싼 물의 정화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액체를 기대 수명을 연장하고 집단 이주와 갈등을 예방하는 주요 발명품으로 환영할 것이다.
--- 「에필로그 : 수상한 액체의 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