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가격
68,800
68,8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 [POD] 주문 제작 도서로 주문취소 및 변심 반품이 불가하며, 발송까지 3일 정도 소요됩니다.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관련 상품

수서 경적지 (큰글씨책)
[도서] 수서 경적지 (큰글씨책)
위징,영호덕분 등저/권용호 역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78,000
수서 경적지 (큰글씨책)

이 상품의 시리즈 13

이 상품의 시리즈 알림신청
뷰타입 변경

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권32 지27 경적 1 경(經)

역(易)
서(書)
시(詩)
예(禮)
악(樂)
춘추(春秋)
효경(孝經)
논어(論語)
경위(經緯)
소학(小學)

권33 지28 경적 2 사(史)

정사(正史)
고사(古史)
잡사(雜史)
패사(覇史)
기거주(起居注)
구사(舊史)
직관(職官)
의주(儀注)
형법(刑法)
잡전(雜傳)
지리(地理)
보계(譜系)
부록(簿錄)

권34 지29 경적 3 자(子)

유(儒)
도(道)
법(法)
명(名)
묵(墨)
종횡(縱橫)
잡(雜)
농(農)
소설(小說)
병(兵)
천문(天文)
역수(曆數)
오행(五行)
의방(醫方)

권35 지30 경적 4 집(集)·도경(道經)·불경(佛經)

초사(楚辭)
별집(別集)
총집(總集)
도경(道經)
불경(佛經)

부록 : 『수서(隋書)』 전체 구성과 전체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3

魏徵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이다. 자는 현성(玄成)이고, 거록군(巨鹿郡) 하곡양현(下曲陽縣) 사람이다. 일찍이 수(隋)나라의 위공(魏公) 이밀(李密)을 따라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당(唐) 고조(高祖) 무덕(武德) 원년(618년)에 당나라에 귀순했다. 정관(貞觀) 원년(627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비서감(秘書監) 등을 지냈고, 고적(古籍)을 정리하고 『수서(隋書)』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후에 시중(侍中)·태자태사(太子太師)에 임명되었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직언을 잘했고 왕도정치를 주창했다. 태종(太宗)을 보좌해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룩했다. 정관 17년(643년)에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이다. 자는 현성(玄成)이고, 거록군(巨鹿郡) 하곡양현(下曲陽縣) 사람이다. 일찍이 수(隋)나라의 위공(魏公) 이밀(李密)을 따라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당(唐) 고조(高祖) 무덕(武德) 원년(618년)에 당나라에 귀순했다. 정관(貞觀) 원년(627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비서감(秘書監) 등을 지냈고, 고적(古籍)을 정리하고 『수서(隋書)』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후에 시중(侍中)·태자태사(太子太師)에 임명되었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직언을 잘했고 왕도정치를 주창했다. 태종(太宗)을 보좌해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룩했다. 정관 17년(643년)에 세상을 떠났다. 저작으로는 『수서』를 비롯해 『정관정요(貞觀政要)』·『군서치요(群書治要)』 등이 있다.

위징의 다른 상품

등저영호덕분

관심작가 알림신청
 

令狐德?

당나라 초기의 대신이자 사학자다. 자는 계형(季馨)이고, 의주(宜州) 화원(華原) 사람이다. 문학과 역사를 두루 섭렵했고 글을 잘 지었다. 수나라 말에는 약성현령(藥城縣令)으로 있었다. 당 고조 이연(李淵)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에게 귀순했고, 예부시랑·태상경(太常卿) 등을 지냈다. 당 고조에게 양(梁)·진(陳)·북주(北周)·북제(北齊)·수(隋)나라의 정사를 편찬할 것을 처음으로 주청했고, 직접 『주서(周書)』의 편찬을 맡기도 했다. 당 고종(高宗) 이치(李治) 건봉(乾封) 원년(666년)에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작으로는 『오대사지(五代史志)』·『태종실록(太宗實錄)』·『능연각
당나라 초기의 대신이자 사학자다. 자는 계형(季馨)이고, 의주(宜州) 화원(華原) 사람이다. 문학과 역사를 두루 섭렵했고 글을 잘 지었다. 수나라 말에는 약성현령(藥城縣令)으로 있었다. 당 고조 이연(李淵)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에게 귀순했고, 예부시랑·태상경(太常卿) 등을 지냈다. 당 고조에게 양(梁)·진(陳)·북주(北周)·북제(北齊)·수(隋)나라의 정사를 편찬할 것을 처음으로 주청했고, 직접 『주서(周書)』의 편찬을 맡기도 했다. 당 고종(高宗) 이치(李治) 건봉(乾封) 원년(666년)에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작으로는 『오대사지(五代史志)』·『태종실록(太宗實錄)』·『능연각공신고사(凌煙閣功臣故事)』 등이 있다.

영호덕분의 다른 상품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고전 희곡을 전공했으며, 위웨이민(兪爲民) 선생의 지도 아래 『송원남희곡률연구(宋元南戱曲律硏究)』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중국 고전 문학의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아름다운 중국 문학 1』, 『아름다운 중국 문학 2』, 『중국 문학의 탄생』, 『고구려와 수의 전쟁』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 역대 곡률 논선』, 『송원 희곡사』, 『중국 고대의 잡기』(공역), 『초사』, 『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고전 희곡을 전공했으며, 위웨이민(兪爲民) 선생의 지도 아래 『송원남희곡률연구(宋元南戱曲律硏究)』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중국 고전 문학의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아름다운 중국 문학 1』, 『아름다운 중국 문학 2』, 『중국 문학의 탄생』, 『고구려와 수의 전쟁』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 역대 곡률 논선』, 『송원 희곡사』, 『중국 고대의 잡기』(공역), 『초사』, 『장자 내편 역주』, 『그림으로 보는 중국 연극사』, 『꿈속 저 먼 곳·남당이주사』(공역), 『서경』, 『한비자 1~3』, 『경전석사』 등이 있고 중국의 정사 『수서』를 13권으로 완역했다.

권용호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734쪽 | 128*188*40mm
ISBN13
9791128854880

책 속으로

경적(經籍)이란 오묘한 이치와 성인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천지를 구분하고 음양을 다스리며 기강을 바로잡고 도덕을 넓히는 데 이용한다. 인애함을 드러내어 만물을 이롭게 할 수 있고, 쓰임을 숨겨 홀로 훌륭해질 수 있다. 이를 배우는 사람은 번창하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퇴보할 것이다.
--- p.3

일국의 역사에 관한 기록은 수십 종에 달하고 전해 오는 말도 다르다. 보고 듣는 것이 기이하고 어긋나면, 그 이치는 중용에서 어긋나고 문사는 핵심에서 벗어난다. 이리하여 천자로 하여금 성실하고 공경한 덕을 갖도록 해야 함에도 사서에는 간혹 빠뜨리는 것이 있고, 신하들이 충직하고 엄숙한 덕행을 갖도록 해야 함에도 사서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폐단을 낳는 까닭이다.

--- p.316~317

출판사 리뷰

<경적지>의 도서 선정과 분류
<경적지>에서 밝힌 도서의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전 목록에 기록은 있으나 내용이 천박하고 교화에 도움이 안 되는 도서들은 모두 삭제했다. 이전 목록에는 기록이 없으나 내용이 괜찮아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는 모두 덧붙여 기록했다. … 비록 오묘한 도리를 탐구하고 그윽한 모습을 궁구할 수는 없지만 대도를 널리 선양하고 교의를 세우는 도서들은 빠짐없이 기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수서』 <경적지>는 도서의 선정과 분류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 『수대업정어서목(隋大業正御書目)』을 기준으로 삼아 수나라의 14,466부(部)의 총 89,666권의 유서들과 대조하고, 여기에 순욱(荀?)의 『중경신부(中經新簿)』·왕검(王儉)의 『칠지(七志)』·완효서(阮孝緖)의 『칠록(七錄)』에 의거해 경(經)·사(史)·자(子)·집(集) 사부(四部)로 도서를 분류했다.

사부 분류법

한나라 때 경전으로 분류되었던 사서(史書)는 위진(魏晋) 시기 들어 수량이 늘면서 그 범주가 점차 세분화되었다. 이후로 ‘사(史)’를 ‘경(經)’에서 독립시켜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중경신부』의 병부에서 사기·구사· 황람부·잡사 네 가지의 소류(小類)로 분류되던 것이 『수서』 <경적지>에서는 정사·고사·잡사·패사·기거주·구사·직관·의주·형법·잡전·지리·보계·부록의 열세 가지 소류로 구분되었을 정도로 사서의 기록이 다양해졌다. 이렇게 되면서 춘추류(春秋類)에 모든 사서를 포함하기 어려워 따로 사부(史部)가 만들어졌다. 사부의 성립으로 춘추류에 실렸던 사서들이 사부에 수록되기 시작했다.

사부가 성립되자, 사부의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경신부』에서 사부에 해당하는 병부는 사부(四部)에서 세 번째 위치에 있었으나 이충의 『진원제사부서목』에서 을부와 병부의 내용이 바뀌면서 사부가 경부 다음의 두 번째 위치로 이동한 것이다. 사부를 경부 다음에 둔 것은 문인들이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자부에 수록된 도서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경·사·자·집의 사부 분류법이 확립되었다. 『수서』 <경적지>의 사부 분류법은 이후 도서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어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까지 줄곧 적용되었다. 중국 정사에서 사부 분류법으로 도서를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수서』 <경적지>에서 비롯되었다.

도교와 불교 경전을 아우른 목록

정사에 최초로 도경과 불경 도서를 수록했다. 도교와 불교는 남북조 시기를 거쳐 점차 중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당나라 때 크게 성행했다. 이러한 사상적, 학술적 영향으로 남북조 시기부터 목록서에 도교와 불교 관련 서목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도교와 불교는 방외의 종교로 간주되어 남북조 시기에 편찬된 목록서인 『칠지』와 『칠록』, 그리고 『수서』 <경적지>에는 하나의 분류 체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록으로만 실렸다. 그럼에도 도경부와 불경부가 정사에 처음으로 실렸다는 점에서는 목록학사상 한 단계 진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이 책은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이십사사(二十四史)』 교점본 중 『수서(隋書)』와 한어대사전출판사본(漢語大詞典出版社本) 『이십사사전역(二十四史全譯)』 중의 『수서(隋書)』를 텍스트로 삼아 번역했습니다.
- 이 책은 『수서(隋書)』 권32∼권35에 해당하는 <경적지>를 번역한 것입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선택한 상품
68,800
1 68,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