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9월 16일 |
---|---|
쪽수, 무게, 크기 | 244쪽 | 410g | 145*210*16mm |
ISBN13 | 9791155401736 |
ISBN10 | 1155401735 |
발행일 | 2020년 09월 16일 |
---|---|
쪽수, 무게, 크기 | 244쪽 | 410g | 145*210*16mm |
ISBN13 | 9791155401736 |
ISBN10 | 1155401735 |
들어가기 전에 1미터로의 초대 들어가는 글 행복은 1미터의 기술이다 1장 가깝고도 먼 1미터 인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결혼에 실패한 철학자/사랑에는 도덕을 적용할 수 없다/도덕은 자기애를 감춰주는 포장지다/사랑은 현대인의 종교다/사랑의 정체는 타인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사랑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사랑은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사랑의 실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사랑의 본질은 행복의 거래다 2장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1미터 누가 내 몫의 피와 땀을 훔쳐 갔을까?/나의 좋음과 세상의 옳음은 다르다/인간은 다른 인간의 보상이 아니다/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선언하지 않는다/타인의 범위에 정신이 팔리면 나의 영역을 잃는다/세상은 노력을 보상으로 계산해주지 않는다/능력이라는 말의 함정/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 이해하고 내려놓기 3장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1미터 바라고 탐하니까 인간이다/욕망을 위해 욕망을 버리기에 인간은 인간다워진다/복잡한 인간, 단순한 인생의 원리/단순함에서 출발해 다시 단순함으로/단순하기에 강력한 도구, 사랑/인간에게 가장 탐스러운 대상은 인간이다/인생은 만남으로 채워져 있다/만남은 물들임이 아니라 마주침이다 4장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1미터 인간은 강제로 태어나 멋대로 불리고 교육당한다/살아가는 한 억압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우리는 저항군이 아니라 행복의 기술자다/세상으로부터 개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내가 나일 수 있다면 기꺼이 미움받겠다/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의 1미터/행복을 위해 기꺼이 고독해지겠다/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자유는 단단하다 5장 세상에서 가장 쉬운 1미터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나는 평범하면서 비범한 나일 뿐이다/불행은 이렇게 습관이 된다/행복이란 나의 1미터 내부에 집중하는 것이다/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물들지도, 물들이려고도 하지 마라/자신을 조건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무례하다/내 욕망의 바닥과 만나고 화해하기/행복이 당연한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방식/개인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식/구체적으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6장 세상에서 가장 먼 1미터 미워하는 마음은 허물이 아니라 비효율일 뿐이다/부풀려진 증오는 고통도 부풀린다/당연한 존재 혹은 존재의 당연함/모두가 인생은 처음이기에 무기가 필요하다/폭력의 기원/백 년을 천 년처럼 살아야 했던 공간/폭행당하는 자아/지금 여기를 사는 데 대한 원금과 이자/1미터의 반경을 지키기 위해 1미터의 간격을 유지한다 7장 그리고 나가는 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1미터 세상에서 가장 쉽고 짧은 윤리학/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뎌라 /인간은 태어나지만 시민은 만들어진다/애국심이란 등을 맞댄 동료와의 우정이다/시민의 소양은 가치가 아니라 도구다/가장 나쁜 욕망은 욕망을 통제하려는 욕망이다/행복해져라, 그러면 저절로 성숙해질 것이다/필요한 만큼만 견디는 기술/이해를 이해한다는 것/비극 속에서 살아남기/외부를 사랑하는 내부/다시, 행복은 기술이다 참고문헌 |
1m 개인의 간격
행복을 늘리고 불행을 줄이라. 어디에? 자기 영역 1m 반경에 말이다. 나는 줄곧 책을 읽으면서 1m 반경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행복의 요소들을 가져오고 슬픔과 괴로움과 같은 불행의 요소들을 버려야 할 그 1m 말이다. 책을 읽고서 다시 주제와 부제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니 드디어 답이 나왔다.
스피노자 욕망과 정서의 철학자의 1m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작가는 네덜란드의 공화파 창시자인 스피노자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가 내린 사랑에 관한 정의와 욕망에 대하여 작가가 말한 창을 통해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내린 철학적 사상이 유교적 사상에서 찌들어 온 나의 삶을 비추어볼 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니 마음속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을 통해 자유를 얻었던 그의 말처럼 나 또한 그러고 싶은 욕망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 같았다.
우울한 우리의 삶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환경에 던져진 것이다. 우주라는 공간에 작은 점 하나로 말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불평할 이유도 원망할 이유도 없다. 내가 불공평하게 태어난 것을 누구에게 원망하랴. 늘 돈 때문에 걱정하고 돈 때문에 좌절했을지라도 원망할 이유도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래 봤자 불행의 끈이 온몸을 휘감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리고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면 되는 것이다.
나의 기회비용을 행복의 요소들을 나만의 반경 1m 안에 채워보자. 행복은 우연히 찾아온다. 소소한 나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 더 실망스러운 인간들 때문에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자기들의 욕망에 취한 것도 어쩌면 스피노자가 인정한 그들만의 삶이었으리라. 그를 내쫓고 추방한 유대인들을 원망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말이 갑자기 뇌리를 스쳐 간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좋은가?’, ‘나는 어떤 사람일 때 좋은가?’ 불현듯 나의 욕망의 소리가 나를 깨운다. 어리석은 나의 삶이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욕망이 뭐야? 대체 욕망이 뭐지?” 생각해보면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았던 나이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내 삶의 욕망에 귀 기울일 차례이다. 나만의 반경 1m 안에 말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무쓸모의 감정이란, 참 말로 하기 어렵다. 인생을 살면서 무쓸모의 감정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인생의 가치는 쓸모에 의해서 성장한다고 믿는 세계관에서는, 쓸모란 존재의 이유이자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인생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쓸모란 내가 아니라 남과 조직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내리는 쓸모의 정도를 갖고 내가 왜 그것에 얽매여야 하지? 나는 나, 너는 너. 쓸모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다소간은 위안이 되는 순간이다.
쓸모의 세계관에서는 대가를 만든다. 쓸모를 위해 내가 희생했으니 반대 급부로 어느 정도의 성취는 받아야 하겠다, 그런 생각에 자기 중심적이 되고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하지만 우주는 그러한 쓸모의 세계관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우주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동등했다.
우주는 내가 알 수 없는 가치를 초월해 있지만, 그 가치를 발하는 이유는 나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고 내가 느끼게 해줄 뿐이다. 왜 그렇게 남을 평가하고, 그렇게 쓸모를 따지고, 그렇게 집착하고 상처를 주고 힘들어 했을까. 결국 인간의 미덕은 행복해지는 것 뿐인데.
자연은 '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낫다고 할 만한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미터, 개인의 간격>.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1미터 안의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일 때 좋을지를 따지는, 그저 '좋음' 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졌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아는게 좋아졌고, 내가 아는 것을 다시 모르게 되는 것이 좋아졌고, 앞으로 맞이할 것을 기다리는게 좋아졌다. 어떠한 습관도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음'을 표현할 수 있는 행복감을 조금은 더 느껴보고 싶다.
가장 두렵고 힘든 것은 보이지 않는 관념의 괴물이다. 관념의 괴물은 상상에 의해 증폭되고, 왜곡에 의해 더 두려워진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상대는 고통을 증폭시키는 관념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나의 1미터 안으로 들어오자. 1미터 안, 나만의 '좋음'이 있으니까.
이해하려고 했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쓸모를 따졌을까. 지난 날 후회되는 일도 많다. 슬픈 날도 많았고, 분노한 날도 많았다. 앞으로는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간절히 바란다. 그저 그러면 좋을 것 같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파괴를 부정하고자 하는 본성을 욕망이라 봤고, 본성을 있는 그대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과연 스피노자의 일생을 행복했을까? 그는 렌즈 가공하는 일을 좋아했고, 철학을 연구하는 일에 행복했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그랬으면 됐고, 그래서 의미있는 철학자가 되었나 보다. 그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그 일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랬으면 됐다, 고 말할 수 있었으면.
나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현명한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내 마음 속의 사랑과 미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 과연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6-)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고, 남에게 사랑받을 수 도 없다. 1미터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리다. (-9-)
'즐겁다'는 것은 즐거움이 반경 1 미터 안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괴롭다'는 것은 괴로움이 반경 1미터 안에 들어왔다느 뜻이다. (-44-)
가치중립적인 세계는 '그렇다'와 '아니다'로 이루어진다.
가치판단적인 세계는 '옳다'와 '그르다'로 이루어진다. (-57-)
1미터 밖에서 일어난 타인의 성고은, 나에 대한 세상의 배신행위가 아니라 풍경이다. 풍경은 반경 1미터 안의 사정과는 무관하다. 보고 싶으면 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눈을 돌리면 된다. (-66-)
"누군가에게 책을 헌정해야 한다면,나는 내 책을 오직 진리 그 자체에만 헌정하겠습니다." (-133-)
내 부모님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처음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신이 특별히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이때 우리는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고 한다. (-162-)
증오가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 현명한 사람은 증오하는 대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인간이 살면서 미움을 가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나 또한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들을 생각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을 용서하거나 잊을 생각도 없다. (-179-)
가령 나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독립국에 살고, 민주화 투쟁을 하지 않았음에도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 당대의 노동자들을 처참한 나락에 떨어뜨린 영국 산업혁명의 도움도 받고 산다. 우리는 지난 세대와 역사의 결과물 위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환경이자 조건이지 옳고 그름이 아니다. (-202-)
쾌락이 있다.욕망과 욕구가 충족되는 상태다.
불쾌가 있다. 욕망과 욕구가 좌절되는 상태다.
선은 모든 종류의 쾌락, 그리고 쾌락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다.
악은 모든 종류의 고통, 그리고 고통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다. (-212-)
이해는 이해할 수 있는 대상에 쓰기에는적합하지 않은 모순적인 말이다. 다 이해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냥 안다고 한다.
이해의 노력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해라는 말의 올바른 용례는 '이해했다'가 아니라 '이해한다'다. (-233-)
홍대선의 <1미터 개인의 간격>의 느낌은 배신감읻가. 여기서 배신감이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이다. 그건 나 자신의 고정관념,나의 현재의 생각과 관점,생각과 행동 패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되고,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그 문제의 근원이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무언가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옳고 그르다로 판단한다.그래서 우리는 행복은 옳고 , 불행은 그르다고 생각하고 있다.누군가가 나 가까운 곳에 다가와 공격적인 말을 토할 때,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불쾌하다. 그럴 때,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즉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의 약점을 잡고 물어 뜯을 때, 내가 할 수 잇느 방법은 두가지이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1미터 이내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상대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응징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지만, 나또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그럴 때,이 책에 나오는 간격의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즉 우리는 누군가 내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 위협을 할 거라고 생각할 때,1미터 이내에 누군가 들어올 때,나스스로 1미터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이다. 즉 상황과 조건에 다라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거나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나를 상처와 아픔,발목잡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상대방에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나를 지키는 법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앞에 놓여진 억울한 상황이 만들어질 때 ,그 억울함에 대해서 누군가의 잘잘못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그럴 때, 상대바의 잘못이 아닌 나의 잘못으로 보면서,상황과 조건을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즉 스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지키고,상황과 조건이 나에게 불리하다고 느껴질 때, 최대한 자기 스스로 벗어나는 요령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