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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개인의 간격

1미터 개인의 간격

: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리뷰 총점9.3 리뷰 15건 | 판매지수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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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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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410g | 145*210*16mm
ISBN13 9791155401736
ISBN10 115540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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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기 전에 1미터로의 초대
들어가는 글 행복은 1미터의 기술이다

1장 가깝고도 먼 1미터

인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결혼에 실패한 철학자/사랑에는 도덕을 적용할 수 없다/도덕은 자기애를 감춰주는 포장지다/사랑은 현대인의 종교다/사랑의 정체는 타인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사랑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사랑은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사랑의 실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사랑의 본질은 행복의 거래다

2장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1미터

누가 내 몫의 피와 땀을 훔쳐 갔을까?/나의 좋음과 세상의 옳음은 다르다/인간은 다른 인간의 보상이 아니다/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선언하지 않는다/타인의 범위에 정신이 팔리면 나의 영역을 잃는다/세상은 노력을 보상으로 계산해주지 않는다/능력이라는 말의 함정/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 이해하고 내려놓기

3장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1미터

바라고 탐하니까 인간이다/욕망을 위해 욕망을 버리기에 인간은 인간다워진다/복잡한 인간, 단순한 인생의 원리/단순함에서 출발해 다시 단순함으로/단순하기에 강력한 도구, 사랑/인간에게 가장 탐스러운 대상은 인간이다/인생은 만남으로 채워져 있다/만남은 물들임이 아니라 마주침이다

4장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1미터

인간은 강제로 태어나 멋대로 불리고 교육당한다/살아가는 한 억압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우리는 저항군이 아니라 행복의 기술자다/세상으로부터 개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내가 나일 수 있다면 기꺼이 미움받겠다/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의 1미터/행복을 위해 기꺼이 고독해지겠다/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자유는 단단하다

5장 세상에서 가장 쉬운 1미터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나는 평범하면서 비범한 나일 뿐이다/불행은 이렇게 습관이 된다/행복이란 나의 1미터 내부에 집중하는 것이다/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물들지도, 물들이려고도 하지 마라/자신을 조건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무례하다/내 욕망의 바닥과 만나고 화해하기/행복이 당연한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방식/개인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식/구체적으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6장 세상에서 가장 먼 1미터

미워하는 마음은 허물이 아니라 비효율일 뿐이다/부풀려진 증오는 고통도 부풀린다/당연한 존재 혹은 존재의 당연함/모두가 인생은 처음이기에 무기가 필요하다/폭력의 기원/백 년을 천 년처럼 살아야 했던 공간/폭행당하는 자아/지금 여기를 사는 데 대한 원금과 이자/1미터의 반경을 지키기 위해 1미터의 간격을 유지한다

7장 그리고 나가는 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1미터

세상에서 가장 쉽고 짧은 윤리학/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뎌라 /인간은 태어나지만 시민은 만들어진다/애국심이란 등을 맞댄 동료와의 우정이다/시민의 소양은 가치가 아니라 도구다/가장 나쁜 욕망은 욕망을 통제하려는 욕망이다/행복해져라, 그러면 저절로 성숙해질 것이다/필요한 만큼만 견디는 기술/이해를 이해한다는 것/비극 속에서 살아남기/외부를 사랑하는 내부/다시, 행복은 기술이다

참고문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타인은 주문제작품이 아니다. 타인의 특징을 없애야 할 단점으로 인식하면 그를 가전제품처럼 고쳐 쓰려고 한다. 이때 인간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기만한다. … 현대인은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나머지 나를 포함해 누군가와 사랑하는 법은 잊어버렸다.
---「도덕은 자기애를 감춰주는 포장지다」중에서

누군가를 비난할 때 흔히 ‘쓸모없는 놈’ 따위의 말을 한다. 이런 비난에 가슴이 아팠던 분이 있다면 서러움을 내려놓기 바란다. 당신은 태생적으로 쓸모없을 권리를 타고났다. 누군가의 한심함을 보고 ‘저런 인간이 세상에 있어 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은 한 번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그는 당신의 기분을 위해 존재할 의무가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남의 기분을 위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사랑은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중에서

그에게 사랑의 대상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사랑이 일 대 일의 마주 보는 거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상대를 거래의 주체로 대하지 못하고 자기애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 삶 앞에 사랑을 놓을 때 인간은 사랑의 종이 된다. 자신을 희생하기 싫으면 타인을 희생시킨다. 반경 1미터의 경계가 정확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를 침공하거나 또는 침략 당한다.
---「사랑의 실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중에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이 삶의 태도인 사람은 쉽게 분노한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느라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람들은 수험의 보상이어야 할 직장생활이 더 불행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학교는 돈을 내고 다니고, 직장은 돈을 받고 다닌다. 이 차이를 생각해보면 무엇이 더 힘들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의 1미터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둘째, 노력이 보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우주적 질서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의 질서는 물리학적이지 인격적이지 않다.
---「누가 내 몫의 피와 땀을 훔쳐 갔을까?」중에서

노력하고 또 인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이들은 힐링을 통해 위로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괜찮아’라고 긍정해주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사람은 괜찮다고 되뇔 필요가 없다. 자기 삶의 방식에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사람은 사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지금 행복하면 된다”는 말에는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잠재적 행복 간의 관계를 ‘이거 아니면 저거’ 식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착각이 숨어 있다. 즉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 현재가 불행해진다는 기계적인 사고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선언하지 않는다」중에서

탈모의 폭풍우가 몰아치면 몸매를 관리하고 옷을 고르는 노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탈모인의 유일한 취향은 수북함이기 때문이다. … 머리카락이 없는 남성과 마주쳤을 때를 떠올려보자. 속으로 ‘옷차림에 신경 쓴 대머리다’라고 하시는가? 그냥 ‘어? 대머리다’라고 한다. 물론 나는 ‘앗, 동지다’라고 하지만, 대머리는 그냥 대머리다. 이제 탈모인에서 대머리로 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 문장을 쓰는 글쓴이의 미래는 밝다. 이 책이 출간될 때쯤에는 이미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욕망을 위해 욕망을 버리기에 인간은 인간다워진다」중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게릴라가 아니라 기술자여야 한다. 순응하면 나름의 행복과 고통이 1미터 안에 유입된다. 저항해도 행복과 고통은 서로 경쟁하듯 함께 들어온다. 갈림길 앞에 섰다면 답은 단순하다. 행복이 고통보다 큰 쪽을 선택하면 된다. 비겁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억압은 그저 억압일 뿐이다. 옳고그름의 가치판단에 휘둘리면 억압에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강박은 나를 위한 판단이 아니라 나를 착취하는 판단이다. 내가 아닌 강박 자체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게 한다. 신념과 자존심은 소중하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소중한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저항군이 아니라 행복의 기술자다」중에서

자기연민에는 자연의 원리인 우주와, 인간의 관계망인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착각이 도사리고 있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과대평가할 필요도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다. 자기애와 자기연민은 스스로를 두둔하기 위해 1미터 울타리 언저리에서 급조한 장치다. … 자기비하적인 사람이야말로 이글거리는 자존심을 숨기고 있기 마련이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과도한 자존심이나 자기경멸은 정신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나는 평범하면서 비범한 나일 뿐이다」중에서

자동차의 가격으로 남자를 평가하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남성이야말로 좋은 차를 욕망한다. 그는 값비싼 차를 구매하면 여성을 조수석에 태울 테지만, 그때부터 자신을 대하는 여성의 태도에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하는 처지에 놓인다. … 타인의 욕망은 반경 1미터 외부의 세계에 속한다. 그러므로 타인의 욕망에 따라 차를 산 사람은 자신의 반경을 이전보다 확장한다. 넓어진 울타리는 타인, 즉 조수석에 탄 여성을 삼켜 그를 백성으로 삼는다. 그리고 영지 안의 백성을 감시한다.
---「자신을 조건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무례하다」중에서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는 한계령 위령비가 있다. 한계령 도로를 내는 공사에 동원되어 변변한 안전장치도 없이 작업하다가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고자 세운 비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시대였다. 그 덕에 전국의 학교에 강원도산 우유가 급식으로 전해져 국민의 평균 신장이 늘어났다. 개인이 희생하면 체제는 살찐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포기했던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운 좋은 후배들에게 ‘꼰대’라고 불린다. 후배들은 그들을 꼰대라고 부르면서 자신들도 꼰대가 된다. 꼰대란 누군가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업화든 민주화든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오와 열을 맞춰 달려가는 대가로 개성을 상실하는 시절을 보냈다. 나의 세대는 그렇게 만들어진 토양 위에서 성장해왔다.
---「백 년을 천 년처럼 살아야 했던 공간」중에서

여기 나의 1미터가 있다. 그 밖은 타인들의 반경이다. 안과 밖의 결코 합치될 수 없는 이 간격을 심드렁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거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1미터는 점점 멀어진다. …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나인 사람은 쉽게 증오에 빠진다. 그러나 반경 1미터 안의 기준에 맞춰주는 1미터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다 보면 나를 따르지 않는 세상을 저주하는 습관에 빠진다. SNS는 매일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 운동이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견디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똘레랑스tolerance는 관용으로 번역되지만, 원래 뜻은 인내에 가깝다. 삶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남이 어떤 존재든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타인에게 허락하는 공간만큼이 나의 터전이 되기 때문이다.
---「1미터의 반경을 지키기 위해 1미터의 간격을 유지한다」중에서

나는 반경 1미터 안에 침공해 똬리를 튼 비극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떨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관리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 이 어두운 덩어리에게 모양과 움직임을 입혔다. 이 그림자는 몇 발짝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다닌다. 이놈을 가끔씩 물끄러미 바라본다. 잊기도 하고 의식하기도 한다. 언제나 거기에 있지만 등에 업히지 않도록 지켜보며 살아간다.
---「다시, 행복은 기술이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사람이 소음처럼 느껴지고 내가 지겨워지는 시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터넷 뉴스나 SNS를 보면 악다구니가 들리는 것 같아 숨이 막힌다.”
“텔레비전에 특정 연예인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까닭 없이 화가 치민다.”
“내 주변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없고 늙은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세상은 불합리하고, 타인은 지옥인 사람들에게 보내는 덤덤한 조언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냉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이 소음 같을 때 쓸 만한 간단한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나의 1미터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팔이 닿는 1미터라는 고유한 영역을 확인하고 지켜나가는 것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1미터로 유지할 것
그리고 딱 1미터만큼만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관조해볼 것

왜 개인인가?
“어느 날 벼락 맞은 것처럼 개인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거리 두기’가 강조되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새삼스럽다.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 경계를 마련해 선을 긋는 행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나 ‘혼자’라는 구호는 유행을 지나 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근래 우리가 ‘거리’에 대해 민감해진 까닭은 간단하다.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타인에게 침범당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단절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있어왔던 것처럼 이야기되는 ‘개인’은 사실 가까운 과거에 탄생한 인위적인 발명품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개인주의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러하듯 길어봐야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날 너무 갑자기 개인이 되었고, 그래서 개인으로 살 수 있을지 불안하고 개인으로 살아도 되는지 불안하다.

『1미터 개인의 간격』은 가장 개인다운 개인이었던 스피노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날 개인으로 사는 기술에 대해 풀어낸 결과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미터라는 단위를 상징으로 삼아 나다움의 범위와 행복 그리고 타인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주체가 세상의 중심에 ‘나’를 위치시킨 존재라면, 스피노자의 개인은 타인도 나와 같음을 인정한 존재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지만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이와 같은 우주들이 70억 개가 넘게 존재한다. 그래서 개인이 개인으로 존중받고 또 존중하며 살기 위해서는 편리하면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1미터라는 경계의 안팎을 절묘하게 넘나들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왜 1미터인가?
“냉담한 이기주의자가 아닌 상냥한 개인주의자로 사는 기술”


영화 〈GO〉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복싱을 배운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한 팔을 뻗은 채 몸을 돌려 원을 그리게 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이 원 안에 아무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싶지 않니?” 반경 1미터는 힘껏 팔을 뻗었을 때의 범위로 근대 이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된 고유한 영역이자 최소한의 범위다. 인격, 자존, 자유의지 모두가 이 1미터 안에 있다. 개인에게는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1미터를 지켜야 하는 순간들과 만난다. 바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욕망을 따르는 법, 다른 존재의 침략과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법, 그럼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법이다. 그리고 팔을 뻗었을 때 닿을락 말락한 1미터는 상대와 소통할 때의 거리이자 누군가와 싸우기 전에 확보해야 하는 간격이기도 하다. 그보다 멀어지면 고립되고, 그보다 밭아지면 타인과 겹쳐지면서 나를 잃거나 반대로 타인의 범위를 잡아먹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1미터를 유지해야 하며 이 간격을 잃은 사람을 가리켜 외로워 보인다거나 또는 무례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1미터는 나와 거울 사이의 거리다. 우리는 스스로의 1미터를 지키는 데 집착한 나머지 그 안에 갇혀 자신을 잃게 되거나 또는 1미터보다 멀찍이 떨어진 채 스스로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 1미터를 넘어서는 법은 먼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뤄진 자기객관화, 스스로와 거리두기는 타인에게 다가서는 첫 관문이다. 나를 이해해야 남을 이해할 수 있고, 나와 화해해야 타인과 타협할 수 있다. 모두 ‘내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이란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을 견디며 살아가는 자세를 의미한다. 1미터는 바로 사회적으로 살기 위해 확인해야 하는 범위이자 넘어서야 할 거리다.

왜 기술인가?
“행복은 노력 끝에 닿는 보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축적하는 기술이다.”


이 책에서는 행복을 복잡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행복은 기술’이라는 것이며, 앞에서 설명한 1미터는 그 기술의 방법론이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언젠가 도달해야 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행복이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처럼 조금씩 정진해 한 번 닿으면 다시 내려갈 필요 없는 어떤 이상에 가까운 것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친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리 삶에서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익숙해진다고 하더라도 행복을 그리워할 뿐인 환상이라고 한다면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행복은 차라리 평생 곁에 두고 다듬어야 하는 일상에 더 가깝다. 마치 반복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반대로 잠시 손을 놓으면 조금씩 무뎌지는 일상적인 흐름에 속하는 ‘기술’처럼 말이다. 어딘가 모호한 이야기 같지만 행복을 1미터의 기술로 파악한 다음 마스터한 사람이 인류 역사상 실제로 존재했다. 바로 바뤼흐 스피노자다.

왜 행복인가?
“내 차가우면서 따뜻한 친구 스피노자가 알려주는 나답게 산다는 것”


스피노자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교를 거부해 동포들에게 온갖 저주를 받았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끝까지 지켰다는 이유에서 전 유럽 사람들에게 갖은 멸시와 비난을 당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가업을 포기하고 기꺼이 가난해졌으며, 렌즈 세공이라는 노동의 기쁨을 누리다 폐질환으로 요절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평생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비장한 각오로 투쟁하듯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무리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느라 누군가를 불행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평생 자신이 설정한 1미터 내부를 사랑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또 다른 1미터인 타인을 존중했으며, 1미터 밖의 세상을 소음으로 치부하고 벽을 치는 대신 그 자체로 인정하며 살아갔다. 그에게 행복이란 평생 쉬엄쉬엄 그러나 결코 놓치지 않고 꾸준하게 반복하는 기술이었다.

스피노자는 나무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꽃을 피우지 않듯이 인간 또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비루하지만, 그렇게 존재해도 괜찮다.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개인은 ‘이 자체로 괜찮은 나’다. 냉담한 이기주의자가 아닌 상냥한 개인주의자로 살고 싶은 지금 여기 많은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삶의 태도다.

언젠가부터 세상을 악의에 가득 찬 소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당연해졌다. 스스로를 지켜나갈 자신이 없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가장 멀면서 또 가장 가까운 나를 이해하고 행복해지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1미터 개인의 간격』이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는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회원리뷰 (15건) 리뷰 총점9.3

혜택 및 유의사항?
1미터 개인의 간격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호*대 | 2020.09.17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1m 개인의 간격   행복을 늘리고 불행을 줄이라. 어디에? 자기 영역 1m 반경에 말이다. 나는 줄곧 책을 읽으면서 1m 반경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행복의 요소들을 가져오고 슬픔과 괴로움과 같은 불행의 요소들을 버려야 할 그 1m 말이다. 책을 읽고서 다시 주제와 부제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니 드디어 답이 나왔다.   스피노자 욕망과 정서의 철학자의 1m에는 무엇이;
리뷰제목

1개인의 간격

 

행복을 늘리고 불행을 줄이라. 어디에? 자기 영역 1반경에 말이다. 나는 줄곧 책을 읽으면서 1반경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행복의 요소들을 가져오고 슬픔과 괴로움과 같은 불행의 요소들을 버려야 할 그 1말이다. 책을 읽고서 다시 주제와 부제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니 드디어 답이 나왔다.

 

스피노자 욕망과 정서의 철학자의 1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작가는 네덜란드의 공화파 창시자인 스피노자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가 내린 사랑에 관한 정의와 욕망에 대하여 작가가 말한 창을 통해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내린 철학적 사상이 유교적 사상에서 찌들어 온 나의 삶을 비추어볼 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니 마음속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을 통해 자유를 얻었던 그의 말처럼 나 또한 그러고 싶은 욕망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 같았다.

 

우울한 우리의 삶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환경에 던져진 것이다. 우주라는 공간에 작은 점 하나로 말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불평할 이유도 원망할 이유도 없다. 내가 불공평하게 태어난 것을 누구에게 원망하랴. 늘 돈 때문에 걱정하고 돈 때문에 좌절했을지라도 원망할 이유도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래 봤자 불행의 끈이 온몸을 휘감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리고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면 되는 것이다.

 

나의 기회비용을 행복의 요소들을 나만의 반경 1안에 채워보자. 행복은 우연히 찾아온다. 소소한 나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 더 실망스러운 인간들 때문에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자기들의 욕망에 취한 것도 어쩌면 스피노자가 인정한 그들만의 삶이었으리라. 그를 내쫓고 추방한 유대인들을 원망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말이 갑자기 뇌리를 스쳐 간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좋은가?’, ‘나는 어떤 사람일 때 좋은가?’ 불현듯 나의 욕망의 소리가 나를 깨운다. 어리석은 나의 삶이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욕망이 뭐야? 대체 욕망이 뭐지?” 생각해보면 나를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았던 나이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내 삶의 욕망에 귀 기울일 차례이다. 나만의 반경 1안에 말이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우리는 쓸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D**********f | 2021.08.11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무쓸모의 감정이란, 참 말로 하기 어렵다. 인생을 살면서 무쓸모의 감정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인생의 가치는 쓸모에 의해서 성장한다고 믿는 세계관에서는, 쓸모란 존재의 이유이자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인생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쓸모란 내가 아니라 남과 조직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내리는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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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무쓸모의 감정이란, 참 말로 하기 어렵다. 인생을 살면서 무쓸모의 감정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인생의 가치는 쓸모에 의해서 성장한다고 믿는 세계관에서는, 쓸모란 존재의 이유이자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인생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쓸모란 내가 아니라 남과 조직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내리는 쓸모의 정도를 갖고 내가 왜 그것에 얽매여야 하지? 나는 나, 너는 너. 쓸모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다소간은 위안이 되는 순간이다.

쓸모의 세계관에서는 대가를 만든다. 쓸모를 위해 내가 희생했으니 반대 급부로 어느 정도의 성취는 받아야 하겠다, 그런 생각에 자기 중심적이 되고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하지만 우주는 그러한 쓸모의 세계관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우주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동등했다.

우주는 내가 알 수 없는 가치를 초월해 있지만, 그 가치를 발하는 이유는 나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고 내가 느끼게 해줄 뿐이다. 왜 그렇게 남을 평가하고, 그렇게 쓸모를 따지고, 그렇게 집착하고 상처를 주고 힘들어 했을까. 결국 인간의 미덕은 행복해지는 것 뿐인데.

자연은 '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낫다고 할 만한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미터, 개인의 간격>.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1미터 안의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일 때 좋을지를 따지는, 그저 '좋음' 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아졌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아는게 좋아졌고, 내가 아는 것을 다시 모르게 되는 것이 좋아졌고, 앞으로 맞이할 것을 기다리는게 좋아졌다. 어떠한 습관도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음'을 표현할 수 있는 행복감을 조금은 더 느껴보고 싶다.

가장 두렵고 힘든 것은 보이지 않는 관념의 괴물이다. 관념의 괴물은 상상에 의해 증폭되고, 왜곡에 의해 더 두려워진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상대는 고통을 증폭시키는 관념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나의 1미터 안으로 들어오자. 1미터 안, 나만의 '좋음'이 있으니까.

이해하려고 했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쓸모를 따졌을까. 지난 날 후회되는 일도 많다. 슬픈 날도 많았고, 분노한 날도 많았다. 앞으로는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간절히 바란다. 그저 그러면 좋을 것 같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파괴를 부정하고자 하는 본성을 욕망이라 봤고, 본성을 있는 그대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과연 스피노자의 일생을 행복했을까? 그는 렌즈 가공하는 일을 좋아했고, 철학을 연구하는 일에 행복했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그랬으면 됐고, 그래서 의미있는 철학자가 되었나 보다. 그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그 일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랬으면 됐다, 고 말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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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개인의 간격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k*******2 | 2020.11.07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현명한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내 마음 속의 사랑과 미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선과 악이란 무엇인가? 과연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6-)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고, 남에게 사랑받을 수 도 없다. 1미터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리다. (-9-)'즐;
리뷰제목


나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현명한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내 마음 속의 사랑과 미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 과연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6-)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고, 남에게 사랑받을 수 도 없다. 1미터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리다. (-9-)


'즐겁다'는 것은 즐거움이 반경 1 미터 안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괴롭다'는 것은 괴로움이 반경 1미터 안에 들어왔다느 뜻이다. (-44-)


가치중립적인 세계는 '그렇다'와 '아니다'로 이루어진다.
가치판단적인 세계는 '옳다'와 '그르다'로 이루어진다. (-57-)


1미터 밖에서 일어난 타인의 성고은, 나에 대한 세상의 배신행위가 아니라 풍경이다. 풍경은 반경 1미터 안의 사정과는 무관하다. 보고 싶으면 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눈을 돌리면 된다. (-66-)


"누군가에게 책을 헌정해야 한다면,나는 내 책을 오직 진리 그 자체에만 헌정하겠습니다." (-133-)


내 부모님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처음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신이 특별히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이때 우리는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고 한다. (-162-)


증오가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 현명한 사람은 증오하는 대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인간이 살면서 미움을 가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나 또한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들을 생각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을 용서하거나 잊을 생각도 없다. (-179-)


가령 나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독립국에 살고, 민주화 투쟁을 하지 않았음에도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 당대의 노동자들을 처참한 나락에 떨어뜨린 영국 산업혁명의 도움도 받고 산다. 우리는 지난 세대와 역사의 결과물 위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환경이자 조건이지 옳고 그름이 아니다. (-202-)


쾌락이 있다.욕망과 욕구가 충족되는 상태다.
불쾌가 있다. 욕망과 욕구가 좌절되는 상태다. 
선은 모든 종류의 쾌락, 그리고 쾌락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다.
악은 모든 종류의 고통, 그리고 고통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다. (-212-)


이해는 이해할 수 있는 대상에 쓰기에는적합하지 않은 모순적인 말이다. 다 이해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냥 안다고 한다.
이해의 노력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해라는 말의 올바른 용례는 '이해했다'가 아니라 '이해한다'다. (-233-)


홍대선의 <1미터 개인의 간격>의 느낌은 배신감읻가. 여기서 배신감이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이다. 그건 나 자신의 고정관념,나의 현재의 생각과 관점,생각과 행동 패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되고,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그 문제의 근원이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무언가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옳고 그르다로 판단한다.그래서 우리는 행복은 옳고 , 불행은 그르다고 생각하고 있다.누군가가 나 가까운 곳에 다가와 공격적인 말을 토할 때,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불쾌하다. 그럴 때,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즉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의 약점을 잡고 물어 뜯을 때, 내가 할 수 잇느 방법은 두가지이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1미터 이내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상대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응징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지만, 나또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그럴 때,이 책에 나오는 간격의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즉 우리는 누군가 내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 위협을 할 거라고 생각할 때,1미터 이내에 누군가 들어올 때,나스스로 1미터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이다. 즉 상황과 조건에 다라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거나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나를 상처와 아픔,발목잡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상대방에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나를 지키는 법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앞에 놓여진 억울한 상황이 만들어질 때 ,그 억울함에 대해서 누군가의 잘잘못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그럴 때, 상대바의 잘못이 아닌 나의 잘못으로 보면서,상황과 조건을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즉 스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지키고,상황과 조건이 나에게 불리하다고 느껴질 때, 최대한 자기 스스로 벗어나는 요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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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2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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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최근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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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 | 2020.10.10
구매 평점5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욕심만 늘어가는 나를 잠시 돌아보게 한 책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송*원 | 2020.09.13
평점5점
처음에는 이 양반이 뭔 소리여 하다가, 읽다보면 무릎을 탁 칠때가 있음. 매력은 그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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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k******7 |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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