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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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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66쪽 | 388g | 120*188*30mm
ISBN13 9788932037981
ISBN10 893203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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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즈음에서야 우리는 왜?의 부재, 그것이 바로 왜?의 답이라는 것을 감지했던 것 같다. 우리의 수사의 정열은 싸늘해졌다. 1년 넘게 지속된 불행의 강렬한 연대는 끝났다. 둘이 할 일이 없어 우리는 그와 나로 분리되었다. 서로 바라다보는 것은 물론, 상대편이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지훈이 대신 그가 살아남아 있는 것이 나는 부당했고 그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동행」중에서

J,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J, 네 덕분에 내 인생에 불필요한 것들이 다 쓸려가버렸으니 오히려 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뭐가 고마운데요? 당돌하게 묻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 앞에 나는 자주 멈추어 선다. 물론 나와 그의 삶은 매일 오후에 거를 수 없는 산책처럼, 산책 후에 마주 앉는 차 마시는 시간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황량하고 견고한 시멘트 바닥에 육체가 부딪치며 내는 둔중한 소리와 동행하는 사람에게 웬만한 쓴맛은 차 한잔에 넘겨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된다.
---「동행」중에서

연락 두절이 두려워 그 자리에 멈추어버렸던 시간과 공간…… 크고 작은 사건은 치통과 관계가 있다. 진통제의 용량을 가감해 통증을 잡는 곡예라면 달인이 되어 있다. 치통은 사랑과 관계가 있다. 고통은 치통과 관계가 있다. 사라진 식구의 실종을 신고하던 오래전 어느 날, 그때부터 치통이 시작되었다. 수년 후 먼 대륙에서 도착한 첫 편지로 치통은 악화되었다. 새로운 모든 사건 앞에서 치통은 재발한다.
---「서울 퍼즐」중에서

정지! 나는 자신에게 경고했다. 과장하지 말 것. 감각을 절제할 것. 나는 벌써 이성적으로 추론을 하기도 전에 K의 삶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가지 말 것. 모르는 것에 대해 상상하지 말 것. 건물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그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해서 K일 리는 없지 않을까. K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알 리가 없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중에서

가늘고 긴 남자의 두 눈이 앞에 앉은 나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받은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떨구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어 내 가슴 한구석에 억류되어 있던 흐느낌의 봇물이 터져 나왔다. 그건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고 같은 거였다. 오열의 파도가 격정적으로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죽이며 난생처음 마주 본 남자 앞에서 나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솟구쳐 나오는 괴성과 함께 몸을 흔들며 흐느꼈다. 5분, 10분…… 시간이 흘러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나의 흐느낌은 정점을 향해 가듯 더욱 강렬해졌다.
---「손수건」중에서

정자에서 본 여인의 얼굴 중 무엇이 J를 생각나게 했을까. 그녀는 여인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놀랐다. 그리고 여인이 두 손가락으로 집어 목덜미에서 떼어낸 거미 한 마리. 벽돌과 같이 단단한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잡초의 끈질긴 싹처럼 J에 대한 생각이 돋아나 있었다. 그래 저렇게 어딘가에서 미쳐 있을지도 몰라. 그래야 마땅하지 그 애는. 오랫동안 J를 떠올릴 때마다 던지던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랬을까. J는 왜 그런 식으로 그 시간을 견뎠을까.
---「울음소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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