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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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340g | 140*205*20mm |
ISBN13 | 9791188912919 |
ISBN10 | 1188912917 |
발행일 | 2020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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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340g | 140*205*20mm |
ISBN13 | 9791188912919 |
ISBN10 | 1188912917 |
프롤로그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에필로그 『시간을 건너는 집』 창작 노트 |
'지금 이 시간을 지우고 다른 시간으로 갈 수 있다면' 책 표지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상상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괴로움을 야기한 원인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거나 먼 미래로 이동해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정만으로도 짜릿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상상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판타지이기에 그 매력이 더 배가 된다. 달콤할 것 같지만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환상. 그런데 만약 그 상상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시간을 건너는 집』은 그런 달콤한 상상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소망해보지만 실제로 이뤄질 일이 없는 기회에 발을 디딘 이들은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이다. 그것도 어려운 일을 겪으며 곤란에 처해있는 아이들이다.
우연한 기회로 시간을 건너는 집에 들어선 네 아이들은 원하는 시간대로 건너갈 수 있다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된다. 우연한 기회인 건지 아니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 때문에 특별히 선택을 받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은 반신반의하며 시간을 선택해 건너갈 수 있는 기회에 응하게 된다. 단, 시간을 건너는 집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시간을 건너는 기회를 얻는데도 조건이 주어진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 누구에게도 시간의 집과 시간의 집에 올 수 있게끔 한 하얀 운동화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시간의 집에 나와야 한다.
셋째, 미래로 가든 과거로 가든 '죽음'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지킨 이들만이 12월 31일 오후 5시에 시간의 집 2층에 있는 시간의 문을 선택할 수 있다. 시간의 문은 총 3개로, 과거로 건너갈 수 있는 과거의 문, 미래로 건너갈 수 있는 미래의 문,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고 싶지 않은 이들이 택하는 현실의 문이다. 위의 조건들을 모두 준수한 아이들은 소망노트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 혹은 되고 싶은 모습을 적은 후 시간의 문을 건널 수 있게 된다. 앞서 언급한 조건에서 '죽음'과 같이 바꿀 수 없는 일을 소망한다거나 만수르 같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턱없는 소망을 제외하면 소망노트에 적은 것은 건너간 시간대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다.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하는 엄마를 둔 선미, 왕따를 당하고 있는 자영,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음울해진 이수, 고민 같은 건 없는 완벽한 사람 같지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는 강민. 누군가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시간의 문이 있는 집에 모여들게 된다. 8월에 처음 시간의 집에서 만나게 된 아이들은 시간의 문을 선택할 수 있다는 12월 31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일주일에 세 번, 시간의 집을 방문한다. 서로 성격도, 처한 환경도 판이하게 다른 네 아이들은 처음부터 사이좋게 지내질 못한다.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밝은 강민이 서로 친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이들은 각자 속내를 털어놓지 않은 채 반목하고 서로를 의심한다.
시간을 건너는 집은 매력적인 상상을 소재로 삼아 스토리텔링을 하지만 판타지적인 요소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민, 시간의 집에서 머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이들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다. 판타지라는 세계관 속에서 판타지로 모든 걸 해결하기보다는 스스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마주하고 풀어나갈 수 있도록 시간의 집이라는 판타지적인 공간을 잠시 빌려준 것이다. 한 템포, 조금씩 쉬면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렇기에 집중해서 봐야 할 부분은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판타지가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다. 처음엔 각자 겪고 있는 어려움을 숨긴 채 갈등을 겪던 아이들은 어느샌가 서로에게 고단한 현실을 버틸 수 있도록 손과 어깨를 내어주는 존재가 되어준다. 자신이 다른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됨과 동시에 도움을 받으며 버틸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처음 시간의 집에 왔을 때 움츠러들었던 자영이나 싸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날카롭고 음울했던 이수, 엄마의 투병으로 고단했던 선미, 그리고 한없이 밝았던 강민까지. 약간의 판타지를 빌려 소통하고 각자 가지고 있던 상처를 치유해나가며 편협하게 바라보던 좁은 현실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독자에게도 큰 위안을 선물한다.
서로 돈독해지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선택에 의문을 품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처음 시간의 집에 들어설 때 어떤 시간의 문으로 들어설 건지 내렸던 결정을 철회할 건지 아님 그대로 그 선택을 끝까지 밀고 갈 것인지. 시간의 문에 들어서고 나면 서로 위안이 되어주었던 시간들과 관계를 잊게 된다는 조건 때문에 그러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고민을 하는 와중에 닥친 위기까지. 아이들이 마지막 날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 작가는 그 최종 선택을 끝으로 미뤄두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호기심을 유발한다.
피가 나던 상처가 아물고 나면 딱지가 생기고 곧 새살이 돋는다. 판타지 공간에서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판타지를 선물한 아이들은 소설이 끝날 무렵에는 누구보다도 강인해지고 단단해진다. 처음에 움츠러든 모습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거로 숨어들지도, 미래로 도망가지도 않고 현실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은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을 강인한 힘을 얻게 되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사람은 사람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