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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K의 미필적 고의

형사 K의 미필적 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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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306g | 130*200*20mm
ISBN13 9791191262100
ISBN10 119126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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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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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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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입증과 증거만이 중요하다. 허위 신고가 허위이건 자백이 허위이건 진실처럼 보이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
---「형사 K의 미필적 고의」중에서

겨우내 얼어 가는 콘크리트 온도는 영하 10도 이하이지. 그 속의 수도 배관도 흐르지 않으면 금방 영하로 떨어져서 얼어 버리지. 미세한 충격이나 작은 온도 변화에도 금세 얼어 버리는 게야. 아무도 모르게 동파될 준비가 되어 있는 거지. 이미 얼어 버린 수도를 녹이려면 배관뿐 아니라 주변의 콘크리트까지 녹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노인은 직사각형의 잿빛 콘크리트 덩어리를 아득히 바라보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이 얼음창고를 지키는 창고지기처럼 어쩐지 을씨년스럽게 보여 오싹 소름이 돋았다.
---「동파」중에서

관사 옥상에 원장 아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양팔을 벌리고 괴성을 지르는 사내의 아우성은 폭우 소리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K가 내려오라고 소리쳤지만 그 소리도 빗소리에 사그라졌다. K는 차양 밑에 서 있는 간호사에게 구조 요청을 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간호사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관리인」중에서

마스터 김은 폭력 없이 얻은 것은 진짜 얻은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리고 피를 보면 주머니가 열린다는 갱스터들의 격언을 영원불변의 잠언으로 여겼다. 유저를 모으기 위해서는 투견장이 피범벅 되는 이벤트가 필요한 것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중에서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런데 어딘가 미치도록 가렵다. 손을 더듬어 가려운 곳을 찾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날카롭게 자란 송곳니가 잡힌다. 조련용 곤봉을 들고 투견장으로 달려간다. 누구를 향해 곤봉을 휘두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마른 나무 위에서 하이에나 떼로 뛰어드는 늑대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잠시 떠올랐을 뿐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중에서

그녀는 행복이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맞은편의 부자가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다. 노년에 카라반을 몰고 두루 여행 다니는 삶도 괜찮겠어. 남편은 달려드는 연기를 피하면서 실없는 말을 던졌다. 남편은 만약 여윳돈이 생기더라도 카라반을 사는 무모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카라반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여느 유형자산과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허세가 싫지 않았다. 미란의 말처럼 그들이 불을 끄고 눕기 전까지는 번잡하지 않고 편안한 바캉스였다.
---「카라반」중에서

왕성한 소화를 끝낸 내장처럼 기계 속은 뜨거웠다. 강은 덜 익은 소화액 같은 매캐한 매연 냄새를 맡으며 깊숙한 곳을 향해 한 발씩 내딛었다. 스산한 기분이 들어 뒤돌아보았을 때 사위는 어둠뿐이었다.
강은 2인치의 점검창에 플래시를 비췄다. 누군가의 눈동자가 보였다. 플래시 불빛이 반사되었는데 주저하는 눈치 없이 어둠 저편으로 사라지는 눈동자. 강의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피터의 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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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것이 야구라면 끝나도 끝나지 않는 것이 소설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독특한 솜씨를 지닌 작가가 이춘길이다. 그의 소설은 예측불허일 뿐만 아니라 복기 불가이기도 하다. 그의 서사는 단선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단층적이지도 않다. 나의 삶이 수많은 ‘미필적 고의’에 휘둘리는 것 이상으로 나의 ‘미필적 고의’가 타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기도 한다는 진실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형사 K와 나와 형, 꼬리를 문 이들의 미필적 고의를 끝까지 쫓아가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파괴된 고정관념이다. 우리는 소설책을 덮고 나서야 적확하고 정교한 문장과 문장으로 직조된 그의 소설이 우리를 끝까지 긴장시키는 힘은 상투적 시선을 용인하지 않는 강인한 산문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 방현석 (소설가, 중앙대 교수)
이춘길의 인물들은 대개 행정 처분을 기다리거나 기다렸거나, 계약에 얽혀 있다. 즉 법리적 문장들이 욕망에 선행해 있다. 때로 그들은 이런 사회적 문장에 떠밀리기 전까지 스스로를 모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언제나 서식화가 발생하는 순간이란, 세계에 사건들이 누적될 대로 누적된 이후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문장들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늦다니. 늦어 버린 자들의 서글픔. 많은 예술가들은 이 서글픔을 서술하고 싶어 하지만 또 그게 쉽지만은 않다. 눅눅해지거나 상투적 레토릭이 되기 때문이다. 그걸 피하려다 보면 치기 어린 냉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이춘길은 건조하게 그렇지만 냉소적이지 않게, 그러면서도 ‘뿜’ 하고 ‘빰’ 하게 그려냈다.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까 연탄불 뺀 자리 같은 기억도 이춘길이 쓰면 꽉 조여진 세련된 문장이 된다는 말이다.
- 임승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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