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1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156쪽 | 198g | 128*188*9mm |
ISBN13 | 9788936424527 |
ISBN10 | 8936424521 |
발행일 | 2021년 0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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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56쪽 | 198g | 128*188*9mm |
ISBN13 | 9788936424527 |
ISBN10 | 8936424521 |
제1부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 세례 멍 소라 일기 여자가 되는 방 귀와 뿔 덫 여백 오르골 유리 주사위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눈 깜빡거릴 섬(?) 이팝나무 아래서 재채기를 하면 처음이 될까요 꿈갈피 컬러풀 겨울의 젠가 꿈과 난로 제2부 시간과 그늘 사이 턱을 괴고 달팽이 사육장 1 점(占) 해감 진화 침례 1 도화(桃花) 달팽이 사육장 2 파랑의 질서 주말의 명화 도깨비바늘 신이 우리를 죽이러 올 때 각도의 비밀 묘묘 The Sounds of Silence 로즈 빌 오르톨랑 배꼽의 기능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제3부 소년과 물보라 인면어 밥알을 넘기다 수저를 삼키면 강신무 용서 항문이 없는 것들을 위하여 사람은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숨 쉴 수 없나요 기원 서랍의 배치 소금 달 침례 2 유리의 서 손금 인어가 우는 숲 스노우볼 문조(文鳥) 사랑의 뒷면 수묵 오,라는 말은 제4부 여름의 캐럴 적화(摘花) 겨울 귀 툰드라의 유령 1 툰드라의 유령 2 묻다 거인 소멸하는 밤 늦잠 뱀주인자리 옷의 나라 종언 빙점 목화가 피어 살고 싶다고 소년의 태도 여름의 캐럴 후쿠시마 해설|김언 시인의 말 |
정현우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이 시집은 고해록이다.
생의 여분을 거역할 수 없기에
청년이전의 시간에 대해 고해하고,
태어났으되 갇혀버린 몸과
명점(命點)에 대해 고해한다.
...
이름을 받지 못해 엉킨 채로
서글프게 떠도는 허공의 회로들과
한 몸이 되어 쓰고, 서로를 태우고 살아갈 것이다..
- 이병률
[ 소라일기 ]
수초의 질감이 잠긴 하늘
해변에서 소라를 주웠다.
몇시간째 소라는 나온 수 없다.
기차역 차단기 앞에서 나는 놀라 뒷걸음치고
소라를 놓쳤다.
새들은
나만 빼고 어디로 다 데려가는지
처음부터 혼자는
그렇게 탄생했을지도.
슬픔은 오른쪽이야,
기억을 나사처럼 돌리다가
더이상 돌아가지 않는 오른쪽이야,
돌아갈 집이 없는
소라에게 속삭였다.
[ 여백 ]
기억은 나를 뒤집어놓은 빈집.
머리위로 철새는 세상을 딛고 여백은 죽거나 사라진다.
눈이 오는 소리를 또각, 또각, 발음했다.
일정하지만 오차가 난무하는 곳.
겨울은 점점 깊어지고
구름은 어디까지 우리의 눈을 가리고 가나.
겨울은 수평속으로 사라진다.
너는 새를 보면 가렵다고 했다.
그건 새들의 여백일까, 텅빈 겨울은 밥짓는 냄새가 난다.
부러진 눈송이는 여백을 지우고 있다.
잘못된 것을 봐도 서글퍼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 적화(摘花) ] ; 아오리가 있던 여름
모르는 당신에게 어둠을 돌려주고 오는 길, 서늘한 길은 기울어 잠이 들고,
비오는 과수원이 활시위처럼 나를 당깁니다.
벌레의 눈으로 걸음으로 별을 옮기는 밤, 저의 음색은 낮을 사랑한 별자리입니다.
걸어온 길은 갈변되고, 지키지 못한 사과들이 굴어와, 어둠을 할퀴고, 투신하는 사과속으로 그어지는 연붉은 적화.
형제들과 둘러앉아 노래를 잇지. 모닥불을 피워 악몽을 잊지, 짐을 챙길 즈음 여름이 익고 여치를 튀기면서 가을이 오지.
자세히 보면 추악하고 멀리서 보면 그리운 것.
그대를 껴안고 얼굴을 묻지. 좋은 맥주에선 흡내가 나고,
좋은 사람에겐 흙내가 나지. 호기로운 건배로 인사를 하자.
벌써 옛일이다.
재가 날리네, 박차에 찍힌 말은 놀라 달리고,
들판의 달빛은 녹아가는 빙하같지.
텅빈가지들이 눈을 가리는 누군가의 긴노래
아오리가 익어가. 툭, 툭 등 뒤로 사과꽃이 떨어져.
두눈이 붉어지는 것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라.
오래도록 저물어야 알게 되는 늦여름의 일이라, 누군가는 금방 잊게 되는 묽음,
누군가는 부푼 계절을 붙들고 오래 살고 싶은 붉음.
과육을 도려내듯 칼끝을 숙여
그리움의 알몸을 베여내고
사과 반쪽을 입속에서 입속으로 옮기면
내안의 붉음이 넘실거려
단물을 입속에 오래 맡깁니다.
나는 변치 않는 물빛을 바스러 뜨리고,
발목을 걷고
당신 모르게 입술에 핀꽃까지
톡, 톡
따주고 싶은 적심(赤心)
[ 스노우볼 ]
앞지르려고 한다
나의 늙은 개가
헐떡이며 눈길을 걷는다
눈동자 안 유리속으로
수많은 기억이 쌓이고
더이상 견디지 못할 때
콰직- 깨져버리는 세계
사람이 죽게 되면 함께 살았던 것은
우르르 달려나와
멀리서 눈빛만 보고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입김은 서두르지 않고
누군가를 버리고 가는 마음은
울기 직전의 눈썹
가장 살고 싶을 때의 표정으로
우리는 두 발이 움푹
눈밭의 깊은 곳에 살자고 했었지
젖은 당신의 눈가를 떠올린다
눈이라는 단어를 지우면
나는 완성될 수 없는 문장
괄호 안이 비워진 마음으로
눈이 먼 다정한 손으로
무엇인지 모를 것들을
둥글게 뭉쳐 던진다
왈칵~~~ 쏟아져 버릴
유리의 세계로
당신은 안녕하신가
나에게 스노우볼은 이거다..
→ 저렇게 산삼과 겨우살이로 채워진..
저안에서 서서히 술이 익어가고 있다
[ 늦잠 ]
죽은 할머니와 고양이가
눈 밟는 소리에 깼다
눈곱을 떼며 문을 나섰다.
늦잠이 없는 것들은 벌써 일어나
가버렸나,
저 눈 고개를 넘어 주검 속을
다녀올 수 있다면
내가 서두를 수 있다면
미안, 내가 많이 늦었다고
인간에게 잠이 없다면
어떤 이별도 없겠지.
나는 잠이 들때마다
그곳에 갈 수 있다.
잠이들면 꿈에서 만날 수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소금달]
잠든 엄마의 입안은 폭설을 삼킨 밤하늘,
사람이 그 작은 단지에 담길 수 있다니
엄마는 길게 한번 울었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꺼내지 못했다.
눈물을 소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슬플 때의 맛을 알 수 있을텐데.
둥둥 뜬 반달 모양의 뭇국만
으깨 먹었다.
오늘은 간을 조절할 수 없는 일요일
[ 손금 ]
가지를 부러뜨린 자리
눈송이가 손바닥에 걸린다.
꽃을 걸고 맹세했던 자리
겨울 가지 끝에서
손금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깊어질수록 어긋나는 저쪽
젖은 달을 몰고 온 까마귀는
필기체로 앉는다.
처음부터 오른손의 가지와
왼손의 가지는 다르게 적힌다.
운명을 문지르듯
부러뜨린 즉시 돋아나는 해석들
오는 너는 안녕,
사랑을 실패할 운명,
손금은 지나간 사람을 움켜쥐려다
흩어진 겨울의 천변.
손 흔들며 안녕,
그의 손바닥을 들여다 볼 때
손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해 금 간 손바닥을
내게 천천히 맞추어보는 것.
빛나는 슬픔을 훔쳐보는 것.
원래의 너는 안녕.
실패한 마음도 사랑 할 운명
[ 겨울의 젠가 ]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
우리는 목조 계단을 쌓아올렸습니다.
신체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손에 쥔 적 없는 마음을
밀어 넣으면서
눈을 마주 보면서
팔과 다리로 탑을 쌓았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사이
폭설을 내려주시어
들어갈 수 없는 길을 알게 하소서
한토막의 슬픔으로
무너진 사람이
혼자 걷는 눈길이
사랑이라고 말하게 하소서
눈과 눈 사이 거스를 수 없는 빛을
눈빛이라 부릅니까.
서로의 눈을 닫으면
슬픔만을 가져갈 수 없음을
기쁨, 그것은
불탄 혀로 슬픔을 핥고
입술이 겹쳐
죽을 힘을 다해 외롭게 허물어지는 것.
사랑과 기쁨이 되어
타오르지 않는 발화점이 되어
시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이.. 슬퍼보였습니다..
그 마음을.. 그 눈빛을 왠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입니다.
지금 내 눈빛이 그럴 것 같습니다..
옆에서 그대가 나를 본다면..
... 소/라/향/기 ...
I
모든 시집들을 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창비 시선은 종종 '어나더 커버'라고 해서 원래 표지 위에 또 하나의 표지를 덮어 씌운 시집들을 출간한다. 이 경우엔 보랏빛의 '어나더 커버'를 원래 표지(원래 표지도 같은 계열의 색을 썼다)에 덧씌웠는데, 전반적으로 겨울 느낌과 슬픔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런데 시들을 읽다 보면 딱 이 표지 같다. 첫 눈을 볼 때의 정서. 아름답지만 언젠간 녹거나 때가 탈 걸 알기 때문에 슬플 수밖에 없는. 그런 양가적 감정이 지배적인 시집이다.
II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는 이 시집의 1부의 제목인데, 1부에 실린 시들이 하나같이 다 좋아서 한 편의 시만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쌀쌀한 계절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정도다.
1부의 시들도 좋았지만, 2부의 시들도 한결같이 좋다. 등단 6년만에 나온 첫 시집이다 보니, 시인도 고심해서 시들을 추린 걸까? 주변에서 이 시집을 많이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정현우 시인은 시인이면서 가수이기도 하단다. 밴드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시들은 어떤 면에선 화가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시각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파랑의 질서」라는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브 클라인(Yves Klein)이 블루로 작업한 다양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물론 정현우의 시풍에는 이전의 화풍에서 신성시되었던 블루의 느낌도 있지만(예를 들어 성화에서 예수나 마리아의 옷은 블루이다), 그보다는 좀더 모던한 느낌이랄까.
모든 질서는 왜 파랗게 질려 있는가?
양파와 질서 사이를 열고
몽상을 꺼낸다.
(...)
파란이 파랑보다 먼저 쓸려가고
액자 속이 잠잠하다.
두꺼운 멜랑꼴리가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고 있다.
- 정현우, 「파랑의 질서」 부분
III
대체로 '첫 시집'을 내는 시인들은 젊을 가능성이 크고, '젊은 시인'들의 '첫 시집'은 그들의 모든 가능성과 심혈을 가득 담아 새롭고도 난해하고 낯설고도 도전적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첫 시집'을 읽는 건 그런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첫 시집'이나 '첫 소설'을 읽는 건 감각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늙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측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경우 취향에 맞아서 읽는 경우보다는 공부하듯 읽는 경우도 다분하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가 MZ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듯 말이다.
그런데 정현우 시인의 시들은 시를 읽는 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마치 동년배의, 친구의 이야기를 듣듯이 시를 읽자마자 저절로 흡수되고 이해된다. 그 정서나 감정, 그가 표현하는 방식 등을 이해하는 데 따로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읽자마자 바로 '느끼게 된다'.
그런 점이 참 좋다.
IV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만 만나려고 하는 게 이해를 하고 이해를 받는 데 수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아마 정현우의 시는 거의 모든 세대가 보편적으로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을, 역시 모든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과 언어로 전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본인에겐 그게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타의 젊은 시인들과 같지 않다는 측면에서), 이건 시인만이 가진 큰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도 장벽 없이 그의 시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
3부의 시로는 「서랍의 배치」를 들고 싶다.
짧고 간결한데 힘이 있다. 수묵 정물화를 보듯 시 앞에 오래 시선을 두게 된다.
이 시집의 마지막 챕터인 4부의 시들 역시 시집을 끝내는 게 아쉬울 만큼 한 편 한 편이 아름다웠다.
한동안 끝까지 못 읽고 중간에 만 시집들이 많았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대체로 다 좋아서 기쁘다.
전반적으로 보라색처럼 여리고 슬픈 정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을 승화한 뒤의 훼손되지 않은 인간성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게 이 시인의 가장 큰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4부의 제목은 '여름의 캐럴'인데, 같은 제목의 시를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다.
V
이 시집은 김언 시인의 해설로 마무리된다.
시인의 첫 시집의 해설을 김언 시인이 썼다는 것도 시집의 의미랄지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병률 시인이 추천평을 쓰고 김언 시인이 해설을 썼는데, 각각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가 떠오르는 시인들이지 창비가 연상되는 시인들이 아니다. 그런 두 시인이 (자발적이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꺼이') 이 시인과 시집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집과 시인이 가진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의 첫 시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김언의 해설은 아니나 다를까 '정현우의 시에는 유독 ‘슬픔’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로 시작된다. 시인의 말대로 이 시집은 슬픔에 대한 시이다. '슬픔'이라는 단어 자체도 많이 나오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을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단어들로 표현하고 드러내고 말한다. 그래서 그 감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깝고 익숙한 것인지 새삼 깨닫고 느끼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래 지속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그래서라도 이 시집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감정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위로가 된다. 카타르시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된다.
김언 시인의 표현대로 아름답고 슬픈 시집이다. 슬프기도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정화는 아마도 이 두 감정이 함께 하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서점에서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아무래도 신간 코너일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소설 그리고 교재 위주로 한바퀴 돌아본다. 아무래도 시집이나 에세이 코너는 그렇게 쉽게 가는 그런 코너는 아니다. 그럴지라도 이 시집은 지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표지가 살며시 손을 내미는 듯한 그런 느낌. 동생이 예전에 그랬다. 이 운동화가 나를 불러서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그때 몰랐던 그 마음을 이 시집을 보는 순간 이해할 것도 같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은 각 장의 제목마저도 시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 시간과 그늘 사이 턱을 괴고, 소년과 물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름의 캐럴까지 이 제목만 봐도 시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슬플 때 운다. 슬픔을 울다라는 표현도 충분히 시적인데 그 모든 슬픔을 한번에 울다니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충격을 느끼게 된다. 내가 느낀 슬픔이 제대로 된 감상이었다는 것을 해설을 보고서야 알았다. 유난히 많은 작가의 시 속에 담겨져 있는 느낌. 그 슬픔이 표지의 보랏빛으로 승화되어 드러나는 것 같아서 그 표지의 컬러가 더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시는 전형적이지 않다. 보통의 내가 알고 있는 그런 시도 있지만 한 연에 새로운 제목을 붙인 느낌이 드는 형식의 시가 있는가하면 행이나 연의 구분없이 한편에 짧은 산문마냥 죽 이어가는 글들도 있다. 물론 그 길이가 길지는 않아서 이게 무슨 시인가 하고 어리둥절할정도로 파격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또한 남성과 여성처럼 성에 관한 비유적인 표현도 많이 눈에 뜨인다고 생각했는데 해설에서도 역시나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어서 더 반가움이 표현되었다. 단순하게 이해한 것과는 달리 조금은 더 심오한 표현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시에는 어느 정도 문외한인 내가 느낄 정도였다면 다른 사람들은 조금 더 그 의미를 파악하고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달팽이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비유와 묘사 그리고 감정과 섬세함이 모조리 공존하는 한 권의 시집. 한번에 휙 읽어서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며칠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곱씹어가면서 시를 읽고 그 감상을 삼켰지만 여전히 내게는 소화되지 않은, 아니 아직 목에 걸려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집이다. 소처럼 진득하니 꺼내서 또 씹고 또 씹어서 그 맛을 소화해내리라.
마지막으로 <소금 달>의 첫 행을 인용해 본다.
잠든 엄마의 입안은 폭설을 삼킨 밤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