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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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258g | 115*205*14mm |
ISBN13 | 9788937442698 |
ISBN10 | 8937442698 |
발행일 | 2022년 0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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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258g | 115*205*14mm |
ISBN13 | 9788937442698 |
ISBN10 | 8937442698 |
MD 한마디
[능청스러운 환상과 단단해진 마음들] 2019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한 임선우의 첫 소설집. 능청스러운 환상을 매개로 삶을 단단하게 가꿔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이상해질 대로 이상해진 세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가 발생하는 기적같은 순간들을 만나본다. -소설 MD 김소정
유령의 마음으로 7 빛이 나지 않아요 33 여름은 물빛처럼 73 낯선 밤에 우리는 107 집에 가서 자야지 139 동면하는 남자 177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205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 235 작가의 말 261 작품 해설 마음을 살려 내는 이야기_황예인(문학평론가) 264 추천의 글_박솔뫼(소설가) 279 |
빛이 나요. / p.70
자기 주장이 강했던 청소년기와 이십 대 초반 정도 무렵에는 인상이 안 좋게 각인이 된 사람이면 곧 죽어도 안 보고 인연을 끊었다. 어떻게 보면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스타일이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에 미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게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호불호도 그랬다. 내 성향과 맞지 않는 작가나 장르는 곧 죽어도 보지 않았다. 남들은 왜 이렇게 음식처럼 책을 편독하냐고 말하기는 했지만 듣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의 선호 장르는 소설보다 비소설, 비소설 중에서도 철학과 심리학을 비롯한 인문사회 관련 도서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성격도 나름 유해져서 사람도 세 번 이상은 보고 판단해야 하며, 마음에 들지 않은 점이 있더라도 참는 습관이 생겼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언제나 마음 맞는 사람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탓이다. 또한, 독서 취향도 다양한 간접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그동안 읽지 않았던 장르를 읽어가고 있다. 그게 대표적으로 SF 소설과 한국 현대 소설, 해외 고전 작품이 그렇다.
이 책은 임선우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관종이라는 주제로 읽었던 소설집 중 임선우 작가님의 한 작품이 실렸다. 전체적으로 좋게 기억에 남았지만 강렬하게 남은 작품들이 많다 보니 그 작품이 뇌리에 크게 남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도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상대적이고도 개인적인 감상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다시 읽고 싶어 찾던 중 단편집을 보았다. 편독을 고치고자 같은 작가님의 작품 세 번 정도는 읽자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이전에 읽었던 단편 소설 <빛이 나지 않아요>를 포함해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다. 반가운 마음으로 재독을 하기도 했고, 새로운 소설은 신선했다. 인물들의 상황 자체는 너무나 현실적이고도 절망스러워서 크게 공감이 되었지만 큰 틀 하나씩은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비현실적인 전개여서 호기심을 가지고 후루룩 읽게 되었다. 특히, 소설 페이지 수 자체가 얇고, 책 자체가 작은 편이어서 부담 없이 가볍게 읽기에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집에 가서 자야지>와 <커튼 콜, 연장전, 라스트 팡>라는 작품이 가장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집에 가서 자야지>는 애완 도마뱀을 매개로 친구가 된 세 남자의 이야기이다. 조와 화자는 친구이며, 조가 키우는 김재현이라는 이름의 도마뱀이 화장실 하수구로 사라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는 윗집의 정우라는 남자가 도마뱀을 보았으며, 이를 처리하기 위해 방역 업체를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청소 업체 직원으로 위장한 화자와 조는 정우의 집에서 김재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였으나, 도마뱀 김재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김재현을 도마뱀 이상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조의 마음에 집중을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어 깊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김재현을 찾기 위해 조와 화자가 정우의 집에 방문했을 때에는 그야말로 쓰레기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될 정도였는데 정우는 조와 화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인간으로서 다시 살아가게 된다. 비록 김재현의 행방은 찾지 못했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친구에게 다시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조가 의도와 다르게 가족 김재현이 아닌 친구 정우를 살리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거기에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결말로 끝나게 되어서 그것도 뭔가 느낌이 묘하게 남았다.
<커튼 콜, 연장전, 라스트 팡>은 유령이 된 한 여자의 100 시간을 담은 이야기이다. 화자는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죽게 되고, 비둘기가 날라와 이승에서 머물 100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화자는 바로 저승으로 가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무조건 24 시간은 이승을 지켜야 한다는 규칙 아래 이승의 여기저기를 떠돈다. 그러다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이랑이라는 유령을 지하철 창고에서 만나게 된다. 이랑은 어처구니없게도 청소기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거기에서 나올 방법도 없이 100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화자는 이랑을 어떻게든 구해 주고 싶은 마음에 노력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결국 창고 안에서 이랑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가장 좋아하는 류의 소설 내용이어서 공감하면서 읽었다. 어이없게 간판에 맞아 죽었지만 원래 삶에 큰 미련이 없었던 듯하다. 유서를 작성했었다는 점을 보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죽하면 저승에 빨리 가게 해 달라고 했을까. 그러던 화자가 이랑을 만나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는 지점을 보면서 나 역시 화자에 대한 시각을 다르게 보았다. 어쩌면 화자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기에 미련을 가질 일이 없지 않았을까. 마치 경험을 많이 해 본 사람이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외로웠던 화자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이 안타까우면서도 와닿았던 것 같다.
단편을 쭉 읽고 나니 프라푸치노를 마시고 다음에 핫초코를 먹는 느낌이 들었다. 상황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들의 마음 역시도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이동하는 듯했다. <동면하는 남자>에서 화를 내는 남자에게 침을 뱉으면서도 그를 찾아가는 화자, <빛이 나지 않아요>에서 감정 소모 없이 자신의 업무를 하더라도 김지선 씨를 지키는 화자, <알래스카는 아니지만>에서 들개를 사냥할 생각을 하지만 결국에는 이를 실행시키지 못하는 화자 등 모든 인물들이 상황이나 배경으로 인해 조금은 폭력적이고도 잔인하게 행동하지만 자신들의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동물, 식물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는 점에서 인류애가 충전되는 듯했다. 불안하고도 좌절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삶 역시도 배경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냥 지나갔으면 몰랐을 작품을 이렇게 모아 다시 읽다 보니 그 매력이 한층 두텁게 와닿았다. 전에 읽었던 임선우 작가님의 단편 작품은 대진운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좋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로 크게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놓칠 뻔한 이야기를 새로운 감동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유령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유령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기 때문에 유령이 되고 싶은 마음을 품어본 적은 없지만, 유령처럼 엄연히 그 공간에 있는데도 없는 것과 같은 취급을 당할 때 혹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죽을 용기는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나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지곤 한다.
임선우의 첫 번째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에는 현실에서 유령처럼 살고 있거나 그러다 정말로 유령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표제작 <유령의 마음으로>의 '나'는 빵집에서 일하던 중 자신과 똑같이 생긴 유령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그 전까지 무기력하게 반복했던 일상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손님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지지부진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 어쩌면 그 유령은 나조차 몰랐던, 혹은 나도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마음들이 발현된 총체가 아니었을까.
이어지는 단편 <빛이 나지 않아요>는 가난한 뮤지션인 '나'와 남자친구가 생계를 위해 새로운 직장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몸에 닿으면 해파리로 변하는 변종 해파리가 출몰한 세상. 남자친구는 그 해파리들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나'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해파리로 만드는 일을 해서 그토록 원했던 경제적 안정을 얻는다. 하지만 '나'는 점점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멀어진다.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나를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만드는 느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그걸 안다는 게 슬프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중에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는 작품은 <낯선 밤에 우리는>이다. 난임 클리닉에 다니는 희애는 어느 날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어린 시절 친구인 금옥을 본다. 자기 몸보다 큰 십자가를 지고 전도 중인 금옥을 처음에는 외면하려 했지만, 어쩌다 보니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금옥의 집으로 초대받아 금옥이 해주는 음식을 먹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매주 금옥의 집에서 음식을 해먹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나를 유령 아닌 인간의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타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