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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리커버] 가녀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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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376g | 133*200*30mm
ISBN13 9788954688796
ISBN10 895468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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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새 길로 걸어가는 이 시대의 딸들에게] 이슬아의 첫 장편소설. ‘늠름한 딸’이 주권을 가지는 이 소설은 기존 질서를 당연시해오던 뒤통수를 뜨겁게 만들기도 하고, 귀여운 이 가족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새 길을 걸어가는 대견한 이 시대의 딸들은 물론, 가족들과 ‘가녀장의 시대’가 오긴 할까 대화하고 싶어지는 소설. - 소설 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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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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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生我身 母鞠吾身
부생아신 모국오신

슬아는 야무지게 따라 썼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다. 할아버지는 종이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아버지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내 몸을 기르셨느니라.”
먼 옛날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이렇게 가르치셨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한 그랬을 것이다.
슬아가 잠자코 듣더니 물었다.
“엄마가 저 낳았는데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빠 없었으면 너는 태어나지도 못했어.”
“하지만 직접 낳은 건 엄만데……”
그는 어린 손녀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생각해봐라. 땅만 있으면 거기에서 곡식이 자라겠니? 씨앗을 심어야 자라잖아. 씨앗이 없으면 땅에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야.”
“그치만 씨앗도 땅이 없으면……”
---「태초에 가부장이 있었다」중에서

복희 부부와 자식들이 모든 짐을 챙겨 떠나기 전날,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시아버지는 혼자서 맥주를 여섯 병이나 마셨다. 토끼 같은 손주들을 매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손녀딸을 앉혀놓고 당부했다.
“기지배야, 나를 잊지 마라……”
아홉 살 슬아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복희를 공짜로 누리지 마」중에서

스물두 살의 슬아가 작가로 데뷔했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상인들의 집안에서 작가가 나왔다고 기뻐하였다.
“여류 작가가 되었구나.”
할아버지에게 작가란 기본적으로 남자였다. 슬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슬아의 꿈은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이었다.
---「복희를 공짜로 누리지 마」중에서

“저 타투할까봐요.”
가녀장이 대답한다.
“하고 싶으면 하세요.”
그는 아직 고민이다.
“무슨 모양을 새길지 모르겠어요.”
슬아가 잠시 생각해본 뒤 말한다.
“세 보이려는 타투는 오히려 더 약해 보여요. 아름다운 아저씨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아빠 같은 중년 남자일수록 겸손한 귀여움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에요.”
며칠 뒤 웅이는 슬아가 직접 그려준 도안을 들고 타투숍에 간다. 몇 시간 후 오른팔에는 청소기를, 왼팔에는 대걸레를 새긴 웅이가 집에 돌아온다. 웅이가 즐거운 얼굴로 양팔을 내밀자 복희가 화들짝 놀란다.
“자기야! 너무……”
복희는 고민하며 할말을 고른다.
“너무…… 성실해 보인다!”
가녀장이 서재에서 내려온다. 웅이를 발견하고 한마디한다.
“섹시하네.”
---「아저씨의 아름다움」중에서

슬아는 개미처럼 글을 쓰면서도 된장은 담글 줄 모른다. 복희는 글을 쓸 줄은 알지만 그걸 하느니 차라리 된장을 담그겠다고 말할 것이다. 복희의 엄마 존자는 된장 담그기에 도가 텄지만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복희가 죽으면 어떡하지? 그것은 슬아의 오랜 질문이다. 복희는 영원히 살지 않을 텐데, 복희가 죽으면 된장은 누가 만들 것인가. 중년이 된 슬아가 노년의 복희로부터 된장을 전수받을 것인가. 아니면 마트에서 파는 된장을 사 먹으며 엄마와 외할머니를 그리워할 것인가. 그러다 목이 메어 눈물을 훔칠 것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삼십대의 슬아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로 글을 쓰고 있다.
---「복희는 된장 출장중」중에서

복희가 책을 덮었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웃음이 나고 울음이 났다. 이 자리에 모인 다섯 명은 그 세월을 같이 겪은 이들이었다.
“슬아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들인데.”
윤희가 말했고 영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이 그 세월에 대해 가장 자세히 썼다는 게 신기했다. 존자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청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들려준 글은 딸의 딸이 쓴 문장이었다. 존자 혼자서 푸념처럼 늘어놓던 과거가 삼대를 거쳐 슬아의 버전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존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슬아의 기억과 복희, 영희, 윤희, 병찬의 기억이 뒤섞인 편집본이었다. 존자는 이야기의 주인이 여럿임을 알게 되었다. 존자의 삶은 존자만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존자에 관한 여러 개의 진실이 시골집 거실에 차곡차곡 놓였다. 마당에서는 배추들이 절여지는 중이었다.
---「낭독회는 김장중에 시작된다」중에서

복희는 다시 태평하게 부엌일을 하러 간다. 호르몬보다 더한 무엇이 복희의 전신에 흐르는 듯하다. 그런 힘을 지니고도 그는 어쩐지 가모장 같은 것을 꿈꾸지 않는다. 가부장이든 가녀장이든 아무나 했으면 좋겠다. 월급만 잘 챙겨준다면 가장이 집안에서 어떤 잘난 척을 하든 상관없다. 남이 훼손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가 자신에게 있음을 복희는 안다.
---「이기고 싶은 사람이 있어」중에서

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 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부엌에 영광이 흐르는가」중에서

좋은 이야기를 쓰게 해주세요. 이 일을 계속 사랑하게 해주세요. 어딘가에 독자들이 있음을 믿게 해주세요. 용기 잃지 않게 도와주세요. 절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108배는 슬아가 글을 쓰기 전마다 반복하는 의식이 된다. (…) 밤이 깊어간다.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임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들은 종교의 근처를 배회한다.
---「우리들의 신을 찾아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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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렸다. ‘나’에게서 ‘그’의 세계로 진입하는, 작가 이슬아 제2막의 시작.
- 김초엽 (소설가)
더 가녀장 라이즈! 히어로물처럼 웅장하다.
- 금정연 (서평가)
아름다운 아저씨가 되기 위해 애독중.
- 장기하 (뮤지션)
젊은 천재의 재능에 시기, 질투심이 피어오르다가도 어쩔 도리 없이 팬이 된다. 되고야 만다.
- 박상현 (독자)
낄낄거리며 웃었고, 삼대의 치열한 인생사 속에 드러난 사랑에 눈물지었다.
- 최경아Eugene (독자)
가부장적 질서를 목도하면서도,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균열을 내면서도,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초연하면서도, 결국 이건 대한민국 어딘가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
- 제제 (독자)
누구와도 함께 읽고 싶은 글. 가벼운데 발끝을 돌아보게 하고, 맛있는데 혀끝이 알싸하게 아파오는 이야기들.
- artinlife92 (독자)
지금껏 읽어온 이슬아의 글들 중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까지 살아오며 해왔던 수많은 아찔한 실수들이 떠올랐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그냥 사랑할까, 두려워하며 사랑할까.
- 변연서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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