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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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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14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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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53*225*20mm
ISBN13 9791158965013
ISBN10 11589650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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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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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산골에 들어가
외딴집 낙숫물 소리에 이끌려
너에게 편지 썼는데
그 빗소리 그치고 나면
휘휘해서 어쩌지

어제는 대숲 그늘에서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따라
너에게 편지 썼는데
그 바람 소리 그치고 나면
그리워서 어쩌지

오늘은 달빛 아래서
달빛에 반짝이는 귀뚜라미 소리에 이끌려
너에게 편지 쓰는데
그 귀뚜라미 소리 그치고 나면
적막해서 어쩌지

이제 아득히 눈이 내리고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묻히는데
아무리 너를 불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사무쳐서 어쩌지
---「너 없으면」중에서

일부러 돌아오는 해질녘 듣는
새소리 같은 것
풀벌레 소리 같은 것

어느새 붉어진 단풍들이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과하는 편지처럼
노을빛에 흩날린다

하루하루 짧아진 해가
아득히 먼 길을 재촉하는
풀벌레 울음을 안아 들고
서쪽으로 사라진다

적막하다, 적막하다,
새들은 울면서 서쪽으로 날아가고
어두워오는 하늘을 향해
홀로 외치는,

일부러 돌아오는 해질녘 듣는
물소리 같은 것
바람 소리 같은 것

기울어져 가는 석양빛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짚어가는
내 발걸음을 앞서간다
---「해질녘」중에서

기울어져 가는 양철지붕에서
너와 같이 피하던
그날의 빗소리 들리지

넌 멀리 떠났지만
난 아직도 그 양철지붕을
후드득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어

네가 없는 텅 빈 자리를
가득 채우는
빗소리는 세상을 적시고

흘러내린 눈물처럼
비에 젖어 늘어진 큰 오동잎이
내 가슴에 떨어지고 있어

기울어져 가는 양철지붕에서
너와 같이 피하던
그날의 빗소리 들리지

넌 멀리 떠났지만
난 아직도 그 양철지붕을
후드득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어
---「그날의 빗소리」중에서

3·1운동 100주년 해에 이육사 연작시를 썼다. 독립투쟁 역사를 시로 표현하기에는 내 힘이 부족했다. 육사는 온몸으로 시를 썼지만 나는 다만 손으로만 시를 썼기 때문이었다. 내 몸과 정신이 큰 강줄기를 따라갈 수 없었다. 육사가 태어난 원촌 일대와 낙동강 상류를 수없이 오르내렸다. 그런 어느 날 새벽 강에 뛰어오르는 은어처럼 캄캄한 북경감옥에서 새어나오는 광야의 별을 보았다. 독방의 어둠 속에서 외치는 만세 소리가 들렸다. 정신은 아득히 멀어지고 물질만 넘치는 이 시대에 마지막 남아 있는 시가 피에 젖은 육사의 흰 옷자락을 적셨다
---「광야의 별」중에서

대한 추위가 몰려오는 겨울 저녁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백합꽃 한 다발을 안은 할아버지가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찬 바깥공기를 따라 백합꽃 향기가 버스 안에 확 퍼졌다. 책가방을 멘 여학생이 백합꽃을 얼른 받아들고 할아버지를 부축한다. 그 여학생을 보고 작업복 입은 아저씨가 웃고, 그 아저씨를 보고 콩나물봉지 든 아주머니가 웃는다. 나는 또 슬며시 그 아주머니를 보고 웃는다. 차창엔 혹한이 휘몰아치는데, 달동네 비탈길을 오르는 마을버스 안은 온통 훈훈한 사람 향기로 가득하다.
---「사람 향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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