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2011년 6월 11일~12일 양일간 프랑스의 ‘Le Zenith Arena de Paris’에서 있었던 SM타운의 K-Pop 공연이 유럽에 한류의 물결을 크게 일으킨 사건 때문이었다. 한국 아이돌 대표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동방신기 등을 앞세워 ‘한국 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파리에서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하루 공연을 기획했다가 연장 요청으로 2회 공연을 했고, 일반석 177,000원, VIP석 352,000원인 입장권은 15분 만에 동이 났다.
다음 날 Le Monde지는 헤드라인에 “La vague pop coreanne gagne l’Europe”라고 달았다. “한국의 K-Pop 파도가 (파리가 아니라) 유럽을 삼켰다”이다. Le Figaro지는 “La vague coreanne deferle sur le Zenith”라고 썼다. 즉 “한국의 파도가 제니스를 덮치다”라고 쓴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너무도 감격하고 기뻐서 우리 국민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략)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영화 이야기부터 떼창, 그리고 떼창의 뒤에 숨어 있는 한국적 복합 정서인 한·흥·정과 기질적 특성인 끼가 우리의 대중예술 성취와 어떻게 관계되는지도 심리학적으로 살폈다. 우리가 지금 글로벌하게 이룩해가고 있는 대중예술적 성취에 과연 우리의 문화 DNA라는 인자가 결정요인으로 작용하는지도 따져보았다. 그리고 지금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의 정신 치유력과 해한력(解恨力)에 대해서도 파고 들어가 보았다. 결국 이 해한이란 것이 심리치료인 셈이다. 여러 방송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트로트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다분히 트로트의 그런 치료 효험이 증명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비단 음악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예술양식이 다 이런 치유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을 기록을 중심으로 엮어보았다. 마지막의 예술과 엑스터시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지향하는 바는 행복이니까, 행복의 극치가 바로 엑스터시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 「책머리」 중에서
우리 한민족의 정서의 특징을 표현하여 “한(恨)의 민족”이니 “흥(興)의 민족”이니 하고 말하기도 하고,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고도 한다. 한은 심층적 정서이고, 흥은 표층적 정서이다. 한은 부정적 심적 에너지요, 흥은 긍정적 심적 에너지다. 정이 많다고 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정서를 중요시한다는 말이다. 이런 표현들은 물론 배타적 표현이 아니다. 우리 민족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는 상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더욱이 오늘날같이 지역 간에 왕래가 빈번할 때일수록 도그마는 있을 수 없다.
여기서는 한과 흥이 우리 문화의 특징과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문화는 그 문화를 만들고 오랫동안 향유하며, 그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와 떼어놓을 수가 없다. 정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다루기로 한다. 한과 흥은 제대로 풀어내야 비로소 삶에 대한 활력을 얻게 된다. 우선 한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따져보자. 몇 가지 스토리를 제시한다.
가수 조영남 씨가 화가를 겸업하고 있었는데, 그림 대작(代作) 사건으로 사기죄로 고발되어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에서 나오면서 그는 “이 일로 한이 맺혔다”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로 한이 풀어진 것은 아니다. 앙금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그 심리는 복잡한 것이다. 이 한을 심리적으로 풀려면 굿을 하든지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어서 풀어야 한다. 고발자에 대한 원한의 심리도 있을 터이고, 자기의 행위가 100% 떳떳하지 못한 점에 대한 뉘우침도 있을 터이고, 보도 매체에 대한 원망도 있을 터이다. 그간 그가 쌓아 올린 명성이 크게 손상된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을 것이다. 아주 복잡한 감정이 ‘한’이다.
--- p.67~68
이런 뜻의 서양 말에는 엑스터시(ecstasy)라는 말이 있다. 마약 이름에도 있는 용어이다. 황홀경이나 무아지경을 말하는데, 원래의 그리스어 어원을 보면, ‘ekstasis(밖에 서다)’라는 말에서 발전한 말이다. 즉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육체의 영향에서 벗어난 경지이다. 그것이 무아지경이다.
엑스터시를 종교에서 사용하는 용법으로 보면, 종교적 신비 체험의 최고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법열(法悅), 기독교에서는 은총(恩寵)을 입은 상태나 성령 강림한 상태를 말하고, 무교에서는 신내림을 받은 상태를 말한다. 신에게 사로잡혀야 그 신이 내려주는 신탁(神託)으로 고객을 위해 서비스할 수 있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이 그려져 있다. 이슬람의 수피파의 전통에서는 ‘회전춤’을 통해 신과 일체가 되고 황홀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그 밖에 선이나 요가, 신비 경험을 통해서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고, 반복된 춤과 노래나 동작, 주문(呪文) 외우기, 고행, 약물 복용 등을 통해서도 엑스터시에 이를 수있다. 그리고 예술적 경험도 여기에 들어간다.
---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