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천도교의 사상은 단순한 민족주의나 저항운동을 넘어서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고민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대화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다. 특히 그들이 지향한 ‘지구적 민주주의’와 ‘지구적 공화주의’는 오늘날 한국이 나아가야 할 ‘민주공화’의 정치이념이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pp.37~38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시민사회에 접어들면서, 원불교에서도 공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의사소통, 집회 등을 통해 각종 시민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북 분단의 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이나 원불교 성지인 성주 소성리의 사드배치 반대, 전 지구적 위기로 치닫는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방역 활동 등을 교단 전체에서 대처하고 있고, 자연과 환경, 인간을 동시에 살리기 위한 우주적 공공성을 강화하고 있다.
---p.106
대종교의 범퉁구스주의는 전 인류의 구제를 지향하는 보편주의의 계기도 되었다. 원래 단군신화에는 ‘홍익인간’이 단군 이념·사상으로 강조되었고, 초창기 대종교는 제국주의·자본주의적 세계에서 사람들과 나라들의 욕망 갈등이 극에 달함으로써 결국 모두 멸망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그것을 그냥 좌시하는 것이 아니라 태백산백두산] 남북의 ‘7천만 형제자매’가 먼저 ‘천조의 무극대도’에 감화되고 나서 ‘일체 인류’에게 차례로 보급함으로써 세계를 구한다는 것이다.
---p.182
서구 문명의 한계와 은폐된 사상적 의도를 일찍이 파악한 근대 한국종교들은 각 종교 나름대로 이를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한편, 다양한 전통 관념으로 세계를 새롭게 전망하였다. 그 사상 속에는 국가와 세계시민성에 관한 깊은 사유도 엿보인다. ... 실제로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현대문명의 병폐는 이러한 동양의 사유가 집약된 한국종교의 사상 속에서 해법의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p.220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적 공공가치를 시민적 공공성으로 재해석하며 시민윤리 나아가 세계시민윤리로 연계시키는 이론적 진전이 필요한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한국의 전통윤리와 가치 가운데 세계적 시민윤리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미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이를 토대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시민윤리의 재정립을 모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51~252
손병희가 최제우의 ‘시천주’적 인간관을 ‘신관’ 중심으로 해석했다면(自神), 이돈화는 그것을 ‘영성’이나 ‘신앙’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영성적 신앙’). 그리고 이후에는 ‘사람성’ 개념 등이 애용된 점을 보면, 점점 ‘인간관’으로 관심이 이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장래의 종교」는 최제우와 손병희 그리고 이돈화 사이의 사상적 차이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사이의 사상적 연속성과 계승성을 강하게 말해 주기도 한다. 최제우가 하늘님의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서 동학의 체계를 완성해 나갔다면, 손병희는 최제우의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구축해 나갔다.
---p.277
레비나스가 사유했던 절대적 타자, 그리고 원불교의 포월적 존재로서 여성관에 근거해 볼 때, 여성의 진정한 ‘ 타자화타자화’는 남성에 대립되는 이원론적 존재로 여성을 개념화하는 타자화가 아닌 아무도 동화시키거나 변모시키거나 해석할 수 없는 존재, 즉 완전무결한 진리의 단면인 ‘일원’으로 수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요즘 발생하는 여성혐오, 그 기저의 타자화 문제는 주체를 중심에 둔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을 절대적 타자 또는 일원이 아닌 ‘맘충’, ‘된장녀’ 등으로 보거나 여성을 그저 신체화 하고 마는 것은, 여성을 하나의 어휘 또는 이미지에 수렴시킬 수 있다고 보는 자아 중심적 사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p.281
사실은 우리가 이미 100년 전, 150년 전부터 알게 모르게,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워 왔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공을 들여왔고, 새로운 세상을 위한 민관협치 전통을 착실하게 쌓아온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런 위대한 전통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거부해서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서 이 우주 안의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열린 민족주의’, ‘지구적 생태주의’입니다. 그 뿌리가 바로 동학 정신이고, 우리의 보물입니다.
---p.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