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년 뒤인 1948년 발표되었다. 드러난 주제는 대단히 선명하다. 전쟁 비용을 평화와 복지에 쓰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 흥미로운 건 캐스트너는 이런 제안을 ‘이성’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는 것이다. “이성이란 어려운 일을 간단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 8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간단한 일을 어렵게 만드는 건 일차적으로 누구일까?
그림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 주인공인 노신사는 에리히 캐스트너다. 노신사가 마주하는 정치 지도자들 중 푸틴은 그 유명한 긴 탁자로 암시되고, 원형 탁자에 앉은 사람들로는 워싱턴과 처칠이 뚜렷이 식별이 가능하다. 이들 뒤로 프랑스, 일본, 러시아, 영국, 미국, 유럽연합의 국기가 보인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서로 다른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은 명료한 초상으로 그려지는 대신, 지폐와 서류, 낡은 장부 조각들과 뒤섞여 콜라주로 표현된다. 이는 그들의 관계가 돈과 권력으로 뒤얽혀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그림들이 캐스트너 글의 현재적 의미를 배가하면서 독자를 향한 질문을 시각화해 주는 것만 같다. 비이성적인 행태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울러 정말 저들만이 간단한 일을 어렵게 만드는 이들일까, 하는 질문들을.
화가의 놀라운 해석 가운데 또 하나는 이성에 대한 그림이다. 묄트겐은 독일어의 ‘이성’을 뜻하는 Vernunft의 V자 안에 복잡한 톱니바퀴를 가득 넣고, 그 아래로 수돗물이 똑 떨어지는 듯 간결한 느낌표 하나로 보여 준다. 이성이란 복잡성을 압착하는 깔때기인데, 그 결론을 단순화하면 느낌표 하나로 표현될 만큼 단순명료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캐스트너 특유의 냉소적이면서 유머러스한 문체는 그 맛을 온전히 살리기가 정말 까다로웠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시각 이미지들이 글맛을 채워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