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소란이 싫어 밤의 고요를 선택한 이들은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생을 실감할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둠 속에서 죽거나 마지막 산책을 나간다. 이것은 어둠으로써 단순한 무너짐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며 견뎌 왔는가’를 어둠 속에서 똑똑히 보고자 하는 것에 가깝다. 밤의 시간에 대해 무지한 이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모두가 잠든 밤 사이에 모든 일이 일어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속으로 고요한 어둠이 쌓인다. 생각해 보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고, 아픈 사람은 계속 아프며,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은 내일도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무너짐 속에도 여전히 삶을 붙잡을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감각. 그것이 홍명진이 독자에게 남기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단단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