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식물, 사물 같은 개별 존재 양태와 우주 질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같이’ 살아 호흡하며 움직이는 양상을 나무와 새와 돌, 나아가 현실과 역사의 ‘바닥’을 살고 있는 존재들을 통해 숨 쉬고 번져가고 다시 태어나는 세계로 표상해 온 시인은 ‘나’에게서 새로운 미학을 발견한다. 대부분의 시가 거대한 우주적 질서 속에 존재하는 인간과 사물을 노래했다면 ‘나’에 대한 시편은 비 오는 날, 내 발자국의 끝없는 소멸을 보는 작은 세계를 노래한다. 그렇다. 우주 질서를 보는 눈도 결국은 나의 발자국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세계로 넓어진 원심성의 눈이 ‘나’라는 구심성의 세계로 귀착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은 물 위를 떠도는 소금쟁이라는 것, 그러나 소금 한 짐을 짊어진 아슬한 존재라는 것. 대자연의 질서를 노래하던 울림과, 이 작은 세계를 노래하는 절묘한 균형과 조화가 ‘내적 초월’을 향하여 나아가는 시인의 행로 속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