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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006제1장 보이차의 시작차나무의 후손들이 사는 땅, 운남 …022파달에서 발견된 수령 1,700년 차나무 …026필요할 때마다 찻잎을 따다가 끓였다 …029제갈공명의 전설이 깃든 공명차와 공명산 …034차 덕분에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없으리라 …038tip 야생차와 고수차 …044운남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 「만서」 …046육우는 운남에 가지 않았다 …050대리국 말과 송나라 차를 바꾸다 …056tip 차와 말을 바꾼 송나라 …058운남, 원나라 시대에 중국에 편입되다 …060“운남에는 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062tip 왜 덩어리로 만들었을까? …066보이차는 쪄서 덩어리로 만든다 …068제2장 보이차, 역사의 무대로운남으로 도망친 명나라 마지막 황제 … 074의방차산 왕자산의 내력 … 077북승주에서 차마호시를 열다 … 080보이차, 강희 황실에 진상되다 … 083저항하는 토사들, 피로 물든 개토귀류 … 086황제의 땅이 된 육대차산 … 089사모에 총차점을 설치하다 … 092육대차산의 중심이 된 의방 … 096보이차 한 통은 7편, 운남차법이 생기다 … 100차산으로 몰려온 석병의 한족들 … 104tip 가지치기 … 108보이차에 대한 여러 기록들 … 110메카트니 사절단, 보이차를 맛보다 … 114병배차에 대한 안 좋은 인식 … 120차 세금에 관한 기록, 이무 단안비 … 122두문수의 봉기로 새 출로를 찾은 보이차 … 126개인 차장 전성시대 … 130제3장 맹해차의 전성시대맹해에 입성한 ‘항춘 차장’ … 148끊이지 않는 가짜 차 사건들 … 151원차를 밀어낸 고급 보이차 타차 … 155신루트 개발로 운남차의 중심이 된 맹해 … 160자본가의 모범을 보인 가이흥 차장의 주문경 … 164tip 가이흥 전차는 500그램인가?… 170운남차 보고서 「불해다업개황」 … 172tip 1930년대 맹해에서 보이차 만들기… 175홍콩에서 인기를 끈 육대차산 차 … 180운남에서 중국 차의 ‘권토중래’를 꿈꾸다 … 182중국 최고 홍차 전문가 맹해에 오다 … 186긴차는 티베트로, 원차는 홍콩으로 … 190최첨단 제다 공장을 계획하다 … 194중국 최초 기계식 제다 공장의 완성 … 198제4장 신중국와 보이차공산정권이 들어서다 …206tip 호급보이차 소동 …211지금은 사라진 보이차 가공법 …212대약진운동시대 차나무의 수난 …216tip 홍인은 어디서 만들었나? …220운남차를 익혀 마시는 홍콩 사람들 …2231950년대 홍콩식 ‘발효’ 보이차의 탄생 …226숙차의 아버지, 방품의 큰손 노주훈 …230tip 홍차는 ‘효소’ 작용, 숙차는 ‘발효’ 작용 …234광운공병, 광동에서 운남 원료로 만든 보이차 …2361973년 운남, 발효 보이차를 만들다 …239tip 숙차의 핵심 기술은 미생물-효소-습열 …244발효차를 제조했던 ‘서풍호’ …250tip 햇빛에 말린 모차 vs 기계로 말린 모차 …2541973년 ‘칠자병차’의 탄생 …258생산관리를 위한 로트번호의 등장 …261tip 7542, 73청병은 언제 만든 차인가? …264프랑스로 간 하관 차창 타차 …266운남을 긴장시킨 곰팡이 차 사건 …269제5장 보이차의 화려한 귀환홍콩의 아침을 여는 보이차 … 277홍콩 사람들이 노차를 만드는 방법 … 279대량 생산 방식에 적합한 밀식 다원 … 283tip 씨앗 번식과 꺾꽂이 번식 … 288맹해 차창 8582와 8592의 탄생 비화 … 292반선 라마의 요청으로 다시 만든 긴차 … 295이무의 부활을 알린 진순아호 … 298보이차 시장에 뛰어든 대만 사람들 … 302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기의 보이차 … 308맹해 차창 ‘대익패’ 하관 차창 ‘보염패’ … 312곤명 차창은 정말 망했을까? … 316보이차 버블을 바로잡으려는 노력 … 320숙차와 생차, 보이차 표준 논쟁 … 324오래된 차나무의 수난시대 … 328tip 고수차와 대지차 … 332‘더 멍청한 바보’ 이론과 보이차 … 338어이없는 이벤트, 고텐부르크 호 기념 보이차 … 342운남 원료로 운남에서 만들어야 ‘보이차’ … 345중국 차의 종착점 보이차의 매혹 … 347tip 보이차, 안전한가? … 350참고문헌 … 354찾아보기 …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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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관한 최고의 경전으로 꼽히는 「다경」을 쓴 육우는 당나라 사람이다. 이 「다경」에는 보이차 혹은 운남차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찾을 수 없는데, 중국 본토에서는 차의 제조법과 음다법까지 생길 정도로 차문화가 번성했을 시기에 야만의 땅이라 불리던 운남에서 차는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 1장에서는 보이차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보이차가 역사의 무대에 오른 때는 청나라 시대인데 황제가 직접 시를 써서 보이차를 언급했던 기록이 있다. 북경에서는 황제와 귀족들의 총애를 받았고, 티베트인의 육체적 고통을 해결해 주는 음료로 각광 받으면서 산업적 발전도 이룬 시기를 2장에서 다룬다. 청나라가 망한 후에도 보이차는 살아남았는데 티베트행 신루투가 개발되어 폭발적인 수요에 부응할 수 있었다. 이때 차 산업의 중심지가 오늘날 7542 병차로 유명한 맹해 지역이다. 3장에서는 ‘호급차’라 불리우는 개인 차장을 중심으로 보이차 산업을 일군 인물에 대해 알아본다. 신중국이 들어서자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과거 차장을 운영했던 사람들을 자본가로 분류했다. 이 시기 운남에서는 보이차를 거의 만들지 않고 보이차 원료만 생산해서 광동을 거쳐 홍콩으로 보냈다. 홍콩 사람들은 운남에서 온 보이차 원료를 자기 입맛에 맞는 스타일로 재가공했다. 제4장에서는 생차만 제조하던 운남 사람들이 발효 ‘숙차’ 제조법을 익혀서 홍콩으로 역수출하게 된 사정을 다룬다. 1990년대 들어 보이차는 큰 변화의 물살을 겪는다. 골동 보이차라 하여 빈티지 개념을 들고온 대만 사람의 등장이다. 오래 묵힐수록 비싼 차, 투기 수단으로 여긴 자본이 유입되면서 보이차 시장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출렁거렸다. 특히 1970년대, 1980년대 만들어진 ‘인급차’에 대한 인기가 많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면서 본토에서도 귀한 차 대접을 받고 있는 현재를 5장에서 다루고 있다.저자는 보이차가 중국차의 최전선에 서게 된 것에 대해 두 가지로 진단한다. 하나는 차마고도로 알려진 티베트 루트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차란 고상하고 우아한 취향의 음료가 아니었다. 유목민의 고질병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차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차를 찾았다. 기꺼이 말 한 마리와 차를 대등하게 교역했다. 그런 수익성은 산업을 이끌고 상인들은 끌어모았다. 상인들은 영리하게도 여러 지역의 소비자들의 기호를 파악하고 그에 딱 맞는 차를 만들어 팔았다. 좋은 원료로 고급 보이차를 만들어 중국 내지에 공급하고, 그보다 못한 원료로 만든 차는 홍콩에 보내고, 너무 거칠어서 골라낸 큰 잎과 두꺼운 줄기로 만든 차는 티베트에 보냈다. 이렇게 보이차를 성장시켰던 수익성과 차상은 어떤 면에서는 독으로도 작용했다. 대만 사람들이 보이차의 가치에 눈뜨면서 보이차는 싼 가격이 장점인 일상의 차에서 마실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고, 최고의 차가 되었다. 동시에 가장 어둡고 혼탁한 차가 되어 결국 꼬꾸라 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재기했다. 보이차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흑수저 출신의 보이차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탓에 자료의 진위를 가리는데 저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보이차 현장에서 매년 현지 농민들과 소통하며 보이차를 제조한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책 한 권, 논문 한 편씩 차곡차곡 읽으면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운남을 떠난 보이차가 중국 내지와 한국 등에 퍼져나간 길고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난한 출신의 아이가 조금 자라 고향을 떠났고 멀리 낯선 세계를 주유하며 어른이 되고 인생을 배웠다. 그리고 서리가 내린 머리와 완숙한 얼굴로 고향에 돌아온 사람말이다. 산업적인 목적에서 든 순수 애호가든 보이차의 매혹을 경험한 독자라면 놓칠 수 없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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