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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1988년의 어두운 방 엘리제를 위하여 여섯번째 여자아이의 슬픔 아멜리의 파스텔 그림 인디언 레드의 지붕 검은 늑대의 무리 |
裵琇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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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내가 원하는 것처럼은 하나도 돼주지를 않았으니까. 부모의 사랑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학교에서는 성적도 좋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는 늘 그런 식이다. 그리고 자라서는 불안한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기웃거리고, 남자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기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면서 연한 커피를 세 잔이나 마신 다음에 밤의 카페를 나오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어느 날의 한적한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에서 눈앞을 지나간 고양이는 검은 고양이가 된다.
---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중에서 나는 그때 스물다섯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정말 싫은 나이였다. 나는 열다섯 살처럼 생기발랄하지도 않았고 서른다섯 살의 오후처럼 지쳐 있지도 않았다. 나는 내일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어 항상 불안하였다. ---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중에서 오빠, 네가 아무리 우리 앞에서 잘난 척하고 닭을 잡아도 다리는 네 거고 생전 자기 양말 한번 안 빨면서 큰소리쳐도 너는 내가 집 나가는 걸 못 막는다. ---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중에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날 저녁의 조용하면서도 지독한 흐느낌 같은 어둠의 그림이 종종 생각나곤 하였다. 언제까지나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어머니는 영원히 거기에 앉아 땅콩을 까고 있을 것 같고 이모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그토록 강렬하였던, 나의 집이다. --- 「엘리제를 위하여」 중에서 그녀는 이제 알았다. 선영의 생에서는 결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햇빛이 창백한 불꽃처럼 페이브먼트와 선영의 검은 머리칼에서 타올랐다. 택시가 왔고 선영은 미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그렇게 그들의 생이 흘러갔다. --- 「아멜리의 파스텔 그림」 중에서 “영원한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 포니테일의 여자아이는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말하였다. “그런 게 영화에만 존재하는 걸까. 왜 영화는 사람들이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거잖아. 모두들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거야. 사랑이 영원하기를, 청춘이 계속 아름답기를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잊지 말기를. 그렇지 않아?” 나는 탁자 위의 인디언 레드의 지붕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영원이라는 말은 너무 낯설어. 난 그게 뭔지 몰라. 나에게는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 「인디언 레드의 지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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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의 결정적 순간들을 다시 만난다 작가 배수아는 1993년 등단하여 30년 가까이 ‘한국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로,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허기진 줄 모른 채 허기져왔던 새로운 감각에 눈뜨게 했다. 시공간의 원근을 비틀어 비일상적인 것,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운 것으로 가득한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소설을 읽는 일이 주는 감상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라는 이름의 그 세계에 결정적 장면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네 작품을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만난다. 삼십대에 막 접어들어 펴낸 첫 번째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이듬해 펴낸 두번째 장편소설 『부주의한 사랑』, 마니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품이자 ‘에세이즘적 글쓰기’의 대표격으로 일컬어지는 장편 『에세이스트의 책상』, 여행가의 세계와 에세이스트의 세계 사이에 놓일 독특한 소설집 『훌』이 그것이다. 늙거나 낡지 않은 작품들. 환상적인 불협화음,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 작품들은 배수아의 새로운 독자는 물론, 오랜 독자에게도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소설이란 독자의 감수성과 감수능력과 독서력에 의해 완성된다고 보는 편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함께 요구된다고. 그렇게 완성된 소설이 마침내 살게 되는 거라고. 나는 내 소설이 상상력이 있는 독자를 스스로 찾아가기를,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_배수아, 『악스트』 no.17 송종원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배수아의 소설은 익숙한 정체성의 징표들을 버리고 ‘구별된 나’를 선언했다. 부당한 보편성이나 미리 놓여 있는 공통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단독적인 ‘나’를 재발견하기 위해 배수아의 소설은 여행을 계속해온 셈이다.”(문학평론가 김미정) “암시와 회상, 망각과 착각 사이를 오가는 현기증. 그 현기증 사이로 모든 확실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미끌거리는 느낌. 이것이 배수아의 소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사물들의 세계가 녹아 없어지기 직전에 이르는 재난의 체험이다. 이 재난이야말로 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체험의 입구로 데려다준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문학평론가 권희철) 읽는 이의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고 깨어나게 하는 소설, 국적과 성별과 모국어와 그에 따라 부여되고 당연시되는 역할과 운명들에서 탈피한 소설, 설명되기보다는 체험되는 소설, 그 신비로운 세계로의 입장을 적극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