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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의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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裵琇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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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신비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어느 날 이런 모든 것들을 기억하면서 죽어갈 것이다.
--- p.13 나는 기억의 처음에 모령의 몸속에서 말한다. 이건 아니야. 이것은 내 처음이 아니야. 해님이 하늘거리는 여름날에 나는 태어나고 싶어. 어머니, 나는 태어나서 흰 그네를 타고 싶어. 나는 어머니의 딸 연연처럼 되고 싶어.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죽기를 원해요. 이제 나는 어머니를 보지 않겠어요. 일생 동안 만나지 않겠어요. 어머니,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 바람처럼 떠나겠어요. --- p.65 “그렇지만 인생을 살다보니 이론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인간이 약하다는 것일까요, 생이 완벽하다면 처음부터 이상이란 없었겠지요. 나, 나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 좋은 인생을 주고 싶거든요.” --- p.142 그들이 본 건 의도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슬픔처럼 생의 어느 순간에 저절로 그렇게 있게 된 하나의 인상이었다. 연필로 그려진 황혼녘 발레리나의 모습과 그리고 아름다운 붓 터치. 사람들은 나와 내 남자아이와 사촌의 생이 한때의 인상으로만 남아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다음에 생은 창백하게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웠다. --- pp.145~146 모령, 나는 낮은 소리로 내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붉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강물 위로 떨어져 이 세상의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 모령, 번개가 치는 산길에서 처음으로 당신과 마주쳤을 때, 보이지 않는 당신의 두 눈 속에 내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남자아이는 산속의 절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잠들었어요. 그 아이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보았고 그래서 나와 함께 도망쳤어요. 그런데 이 세상 끝까지 도망치지는 못했어요. 한 번도 불러볼 일이 없는 그리운 엄마, 나도 마지막에는 그렇게 될까요. --- pp.182~183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나는 밤에 문득 잠을 깬다. 가을바람이 창문을 사정없이 흔들고 지나가고 먼 강에서 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비바람은 슬픔에 싸인 여자처럼 울고 있었다. 나는 나이들고 지쳤다. 바람이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기를 바라며 이제는 꿈속에서도 아무것도 알 수가 없고 이제 조용히, 조용히 죽어가기만을 바란다고 생각한다. 더이상의 일은 생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반드시 그러리라. --- pp.185~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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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의 결정적 순간들을 다시 만난다 작가 배수아는 1993년 등단하여 30년 가까이 ‘한국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로,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허기진 줄 모른 채 허기져왔던 새로운 감각에 눈뜨게 했다. 시공간의 원근을 비틀어 비일상적인 것,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운 것으로 가득한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소설을 읽는 일이 주는 감상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라는 이름의 그 세계에 결정적 장면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네 작품을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만난다. 삼십대에 막 접어들어 펴낸 첫 번째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이듬해 펴낸 두번째 장편소설 『부주의한 사랑』, 마니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품이자 ‘에세이즘적 글쓰기’의 대표격으로 일컬어지는 장편 『에세이스트의 책상』, 여행가의 세계와 에세이스트의 세계 사이에 놓일 독특한 소설집 『훌』이 그것이다. 늙거나 낡지 않은 작품들. 환상적인 불협화음,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 작품들은 배수아의 새로운 독자는 물론, 오랜 독자에게도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소설이란 독자의 감수성과 감수능력과 독서력에 의해 완성된다고 보는 편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함께 요구된다고. 그렇게 완성된 소설이 마침내 살게 되는 거라고. 나는 내 소설이 상상력이 있는 독자를 스스로 찾아가기를,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_배수아, 『악스트』 no.17 송종원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배수아의 소설은 익숙한 정체성의 징표들을 버리고 ‘구별된 나’를 선언했다. 부당한 보편성이나 미리 놓여 있는 공통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단독적인 ‘나’를 재발견하기 위해 배수아의 소설은 여행을 계속해온 셈이다.”(문학평론가 김미정) “암시와 회상, 망각과 착각 사이를 오가는 현기증. 그 현기증 사이로 모든 확실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미끌거리는 느낌. 이것이 배수아의 소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사물들의 세계가 녹아 없어지기 직전에 이르는 재난의 체험이다. 이 재난이야말로 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체험의 입구로 데려다준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문학평론가 권희철) 읽는 이의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고 깨어나게 하는 소설, 국적과 성별과 모국어와 그에 따라 부여되고 당연시되는 역할과 운명들에서 탈피한 소설, 설명되기보다는 체험되는 소설, 그 신비로운 세계로의 입장을 적극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