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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영문 옮긴이의 글 문장 하나 유치장에서의 첫날 밤 거울과 의사 교사 핑크색 폴더들의 공동묘지 부정 시간과의 조우 내 감방 주변에서의 여행 꿈 연쇄 살인범 메리엠 자기 자신의 운명을 써 내려간 소설가 심판 재판관의 걱정 나무의 정령들 공고 수갑 새 작가의 역설 옮긴이의 글 |
Ahmet Al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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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불의 근원은 때때로 죽음에서 얻어질 것이고, 때로는 내가 마음속으로 쓰는 이야기들에서, 때로는 내 이름 위에 겁쟁이라는 낙인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에서 비롯될 것이고, 때로는 가장 과격한 상상을 풀어놓는 섹스가, 때로는 평화로운 몽상이, 때로는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뜨겁게 달아오른 두 손으로 세상의 진실을 잡아당기고 비트는, 작가들에게 고유한 분열증이, 때로는 희망이 그 근원이 될 것이다.
이 두 개의 장벽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르는 동안 내 삶은 지나갈 텐데, 나는 그 심연의 가장 끄트머리에서, 내 정신 속에서 자라는 나무의 가지에 매달려서, 제정신을 잃게 만드는 나약함에 투항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을 것이다. --- p.37~38 그러나 나는 그가 느꼈을 것을 느끼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체취를 훔치는 쥐스킨트의 주인공처럼 나는 그 젊은 교사의 모험을 취해 나만의 감정으로 채우고 그의 기억으로부터 나를 둘러쌀 몽상의 망토를 직조해낸 뒤, 그걸 뒤집어쓰고 그 안에 숨었다. 나는 눈 내리는 바깥에 서 있었다. 나는 얼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의지로 나를 둘러싸고 있던 껍질을 깨고 나온 자였고, 이 세계의 쾌락을 버려 둔 채 영원을 향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자였다.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생생하게 살아나 그 탈주에서 오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충일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삶과 죽음으로 만들어진 날개들을 벗어던지고 날개가 없는 몸으로 영원 속으로 날아가는 현기증 나는 경험을 했다. --- p.73 상상력이 돌아오고 있었다. 내게 이야기를 들려줄 세헤라자데가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머릿결이 헝클어지면서 물결쳤다. 프레스코 벽화들이 움직였다. 오아시스의 수면이 흔들리면서 다시 생명이 돌아왔다. 나는 먼지에 불어넣어 삶에 생명을 부여할 성스러운 숨을 되찾았다. 나는 다시 한번 생명과 시간의 창조주가 되었다. 나는 신을 탄생시켰다. 닷새 후에 그들은 나를 그곳에서 끄집어냈다. 나는 웃으면서 걸어 나왔다. 나는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처럼 웃었다. 지금 나는 수천 개의 감방 중 하나의 감방에서 살고 있다. 이 방에는 플라스틱 틀 때문에 초록색 꽃처럼 보이는 시계가 걸려 있다. 나는 더 이상 절대 시간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 속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세지 않아도 된다. 감옥 안에서 나는 시간의 두 가지 모습, 온전한 절대의 그것과 나누어진 그것을 재발견했다. 지금 나는 내 안의 상상과 내 시계를 모두 갖고 있다. --- p.105~106 오래전, 문학이 삶과 맞닿아 있던 곳, 표지판도 없고 수수께끼 투성이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땅에서 헤매던 시절에 나는 내 운명과 만났지만 그걸 알아보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나는 그 운명이 다른 누군가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썼다. 내가 소설에 써넣은 그 운명은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지금 내가 오래전에 만들어낸 주인공처럼 갇힌 몸이 되어 있다. 그가 그랬듯이 나 또한 나의 미래를 결정지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가 그때 모르고 있었듯이 어쩌면 이미 결정되어 있을 내 운명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가 겪었듯이 나는 깊은 무력감에서 오는 가련한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마치 저주의 예언처럼 이미 오래전에 나는 그것이 내 것인 줄 모르고 내 미래를 미리 보았다. --- p.153~154 “가석방 없는 종신형.” 우리는 길이 4미터, 폭 3미터짜리 감방 안에서 남은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매일 하루에 한 시간만 밖에 나가 햇볕을 쬘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사면되지 못할 것이며, 교도소에서 죽을 것이다. 그게 선고의 내용이다. 나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 받았던 것과 똑같은 선고를 받았다. 나는 나 자신의 미래를 썼다. 내가 양손을 내밀었고 그들이 수갑을 채웠다.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시는 중정의 담장들로 구획되지 않은 하늘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죽음의 영토로 내려가고 있다. 나는 자신의 운명을 써 내려간 신처럼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내 주인공과 나는 나란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 p.156~157 나는 태풍의 한가운데 있다. 나는 싸울 것이다. 나는 용감할 것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스스로를 경멸할 것이다. 나는 나의 내적 갈등으로 인해 상처 입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오디세이》를 쓰되 이 좁디좁은 감방 안에서 내 목숨으로 쓸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그랬듯이 나는 영웅성과 비겁함, 진실성과 교활함을 갖고 행동할 것이며 패배와 승리를 모두 맛볼 것이다. 나의 이 모험은 오직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야 끝날 것이다. 나는 내가 꿈꾸는 페넬로페를 가질 것이다. 나는 쓸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싸우기 위해,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실패들을 용서하기 위해. --- p.167~168 소설가는 자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지식은 그의 마음속, 직관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밀 저장고에 보관해 두고 있다. 그 저장고는 너무나 잘 숨겨져 있어서 소설가 자신조차 그 안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 잘 모른다. 열대 과일의 안에 있는 주스를 얻기 위해서는 무겁고 폭이 넓은 칼로 힘차게 내리쳐서 그 단단한 껍질을 쪼개야 하듯이 소설가도 글을 쓰다가 그 숨겨진 저장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을 쪼개야 한다. 자기 자신을 해체하고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스스로도 놀랄 만한 비밀들을 얻게 된다. 표면에 머무는 지식들은 소설가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다. 소설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가장 깊은 바닥에 도달한 진실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놀라게 할 만한 지식을 얻게 될 때, 소설가는 자기만의 소설을 쓰게 된다. --- p.179~180 당신이 이미 눈치 챘겠지만 나는 거의 신적인 교만함을 갖고 있다. 자주 언급되는 사실은 아니지만 이건 작가들에게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고, 지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확신은 문학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서 진주처럼 자라나고 있다. 나는 면책특권을 갖고 있다. 내가 쓴 책들이 철갑처럼 나를 보호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감방 안에서 쓰고 있다. 나는 작가다. 나는 내가 있는 곳에 있지도 않고, 내가 없는 곳에 있지도 않다. 당신들은 나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날 거기에 가둬두지는 못한다. 왜냐면 다른 모든 작가들처럼 내게는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벽을 아주 쉽게 통과할 수 있다. --- p.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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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풍의 한가운데 있다.
나는 싸울 것이다. 나는 용감할 것이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스스로를 경멸할 것이다. … 나는 쓸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싸우기 위해,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실패들을 용서하기 위해.” 2016년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진압하고 반대 세력을 숙청한 에르도안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투옥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작가 아흐메트 알탄, 지식인의 역할과 작가 정신이 주는 희망과 위안에 대해 말하다 2016년 7월 15일 터키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일부 군인들이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주요 국가시설을 장악하고 ‘앞으로 평화의회가 국가를 운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터키 군중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이튿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에 힘입어 신속하게 쿠데타 세력을 와해하고 상황을 정리했다.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규모의 숙청 작업을 벌였는데 수만 명의 군인, 경찰, 공무원이 체포됐고 여러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때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 저명인사들을 함께 체포 구금하고, 쿠데타와 연루하여 옥에 가두었다. 이 책의 저자 아흐메트 알탄과 그의 동생 메흐메트 알탄도 그들 중 하나였다. ‘터키의 밀란 쿤데라’로 불리는 터키 대표 작가 아흐메트 알탄은 한결같이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옹호해왔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정부의 핍박을 받으며 옥살이를 하면서도 자신의 존엄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에 그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모든 억압에 저항해왔다. 저자는 2008년 한 매체에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 피해자들에게 헌정하는 글을 발표한 이래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면 치욕스러워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등 권위주의적인 정권에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악습, 편견과도 맞서 싸웠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건 오로지 언론과 창작의 자유, 생각(사상)의 자유였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정권의 눈 밖에 났던 알탄은 2016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쿠데타 세력에게 ‘은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로 체포 및 기소되었고 이듬해 2월 정부 전복을 시도했다는 죄목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저자는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히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작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고뇌하며 내면의 싸움을 해나간다. 알탄은 옥중에서의 비인간적인 대우와 고립으로 인해 몇 번이나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작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제대로 된 사회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사유하며 스스로를 다잡고 버텨나간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며 ‘그런 동안에는 그 무엇도 자신을 없애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한 상상력을 잃지 않는다면 “그들은 나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날 거기에 가둬두지는 못한다”며 절망적 상황에서도 작가 정신이 자신에게 주는 희망과 위안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이를 통해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사유하는 동시에 자칫 케케묵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작가 정신이 어째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인지를 보여준다. 예술가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가? 글쓰기의 운명, 창작의 어려움, 작가의 내적 원동력과 실존적 고민은 담은 한 예술가의 솔직한 작가 선언 이 책은 한 예술가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저자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방이 막힌 감옥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상상력을 발휘한다. 모든 세속적인 요소를 등진 채 산골 마을에서 살아간 젊은 교사의 사연을 듣고 상상력을 통해 스스로를 그 자리에 대입함으로써 그 순간만큼은 교도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또한 창작의 근원이 되는 꿈을 탐구해 자신의 무의식 안에 감추어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교도소에 책을 넣어달라는 청원을 넣어 톨스토이의 『카자크 사람들』을 받아 들고 감격스러워하며 오랜만에 독서의 재미에 빠져든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읽어온 톨스토이,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조이스 등을 떠올리며 작가가 작품을 쓰는 데 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역설한다. 최종적으로는 자신은 ‘상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씀으로써 몸은 감방에 갇혀 있을지언정 앉은 자리에서도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권력자들이 자신을 감옥에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가둬두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나는 작가다’라고 선언한다. 아흐메트 알탄은 뉴욕타임즈의 로드 노들랜드 기자와 서면으로 비밀리에 진행한 옥중 인터뷰에서 “이 책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가 아무리 대단한 용기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작가란 실질적인 위협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휘둘러서 쉽게 쫓아버릴 수 있는 모기 같은 존재 아니겠느냐”고 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그들은 작가를 죽일 수도 있고,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고, 고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들이 벌레나 되는 것처럼 무언가를 휘둘러서 쫓아버릴 수는 없다. 작가는 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작가를 향해 무언가를 휘두를수록, 그들의 위상은 떨어지고, 작가의 힘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휘두르는 무언가 자체도 모기가 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작가들이 권력자들에게 그토록 강한 분노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나는 내가 쓴 글들이 오늘날 터키를 장악한 정치권력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희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들과 비교하면, 정치권력은 가련할 정도로 허약하다.” 이 인터뷰에서 힘주어 얘기한 것처럼, 아흐메트 알탄에게 정치권은 짧고 위태로운 반면 살아 있는 작가 정신은 그 어떤 권력의 위협에도 굽히지 않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점을, 옥중 수기의 전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신간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는 단순한 옥중 수기를 넘어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글쓰기의 운명, 창작의 어려움, 작가를 작가이게 만드는 내적 원동력과 실존적 고민을 담은 예술가의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알탄은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수형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쓰기 위한 재료를 찾고 상상의 세계와 마주한다. 이는 단순히 고단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넘어 계속해서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자 기록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여러 예술가소설에서 봐왔던 것처럼 창작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내적 원동력과 실존적 고민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한 명의 예술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내면의 싸움을 해나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향해 당신을 둘러싸고 있던 벽들을 열어놓고,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비추는 걸,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어떻게 당신의 자유를 지켜야 할지 그 길을 보여주는 걸 지켜보라. _ 〈워싱턴포스트〉 읽으라. 그리고 다시 읽으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원에 대한 찬란한 경탄, 창작 과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아무리 애써도 파악하기 어려운 그 현상을 가장 완벽하게 분석하고 표현해낸 뛰어난 사례이다. _ 〈더 가디언〉 거침없이 쏟아 부으며 근원적인 충격을 안겨준다. 끔찍하게 부당한 상황 속에서 용기와 품위를 갖고 살아가는 알탄의 기록은 인간의 인내력에 대한 한 증거물로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옥중 수기의 반열에 든다. -〈더 헤럴드 스코틀랜드〉 섬세하면서 동시에 탄탄하다. 이 글에는 독자들이 언어 자체를 넘어서 읽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어떤 서정성이 있다.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너그럽고, 계몽적이고, 삶을 깊이 긍정하는 명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알탄의 회고록은 그의 감금 상태를 극도로 선명하게 드러낼 때조차 영혼을 해방시킨다. -〈아이리시 타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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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메트 알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라! 수 세기에 걸쳐 감옥 속에서 쓰여진 위대한 목소리들 ? 보에티우스, 세르반테스, 그람치, 소잉카, 솔제니친 ? 에 그의 이름을 더하고, 그의 이야기에 눈물과 분노로 답하라. - 아리엘 도르프만 (작가,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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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자신의 투옥에 대한 아흐메트 알탄의 반응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전제정권들은 그들이 작가들을 가둬버리면 그들의 생각까지 가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이런 시도는 언제나 실패할 것이다. - 닐 게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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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의 감옥 시스템이 싸놓은 똥 속에서 정의의 복잡다단함에 대한 명상이, 많은 걸 갖추고 있는 정신의 산물로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때때로 심오하게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출현한다.” - J. M. 쿳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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