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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불임의 세월]
25장 추억의 세 기둥 26장 수렁에서 27장 그 겨울의 끝 28장 잠과 마비 29장 새벽 어스름 속에서 30장 불만의 계절 31장 그 문(門) 안 32장 거슬러 부는 바람 33장 그 하루 전날 34장 피의 화요일 35장 그 봄 하루 36장 4월의 끝 |
Lee Mun-yol,李文烈,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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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비슷하게 조차 삶을 채우지 못했지만, 내 형님 또한 죽는 날까지 그 성취를 갈망하고 동경했던 것 중의 하나는 시(詩)였다. 소년 시절의 끄트머리에 어쩌다 한 번 미소를 보낸 적이 있을 뿐, 끝내 그를 받아들여 주기를 거부한 그 비정한 마음의 연인에 대한 형님의 절절한 그리움은 지금도 때묻고 찌든 한 권의 필사(筆寫) 시집으로 어설픈 소월풍의 가락을 전해 준다.
--- p.9 불빛 아래 드러난 명혜의 얼굴이 뿜어내는 눈부신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물기로 더욱 검고 반짝이는 머리칼과 하얗게 빛나는 이마, 발그레한 볼.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내쏘는 어떤 아름다움의 빛이 이목구비의 단정한 선을 느낄 겨를도 없이 철의 시각을 아뜩하게 만든 것임에 틀림없었다. --- p.31 우리는 분열된 세계 제국의 변경인(邊境人)이다. 이 두 세계 제국의 뿌리를 동서 로마제국의 분열에서 찾든, 너무 익은 서유럽 문명의 자기 분열로 보든, 우리는 오랫동안 그 제국의 판도 밖에 있었다. 그러다가 이 세기에 와서 겨우 그 제국에 편입되었으나 이번에는 단순한 주변이 아니라 변경이었다. 주변과 변경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그저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 다른 하나는 그 경계선 너머에 또 다른 적대 세력 또는 세계 제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 p.101 점점 가까워 오는 그들을 보며 명훈은 먼저 습관적인 부러움에 빠졌다. 그 두려운 정부와 경찰에 대해 그렇게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그들의 신분이 그 어떤 특권보다 더 눈부시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억제당하고 뒤틀려 있기는 했지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 성향은 멀지않은 변혁의 예감과 더불어 그런 행렬에 섞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까닭모를 불안과 슬픔까지 느끼게 했다. --- p.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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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변경(邊境)』 은 총 12권에 달하는 대하소설이자 30여 년 동안 출간, 절판, 재출간, 그리고 다시 현재 완성작을 내놓기까지 집필부터 출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파노라마와도 같은 작품이다. 『변경』의 출간 역사를 살펴보면, 그의 나이 서른아홉에 집필을 시작하였고, 쓰기 시작한 지 12년 만에 겨우 작품을 마쳤다. 그때 그의 나이 쉰하나로 이문열의 40대가 이 작품을 쓰는 동안에 지나갔다. 『변경』이 오랜 인고의 시간을 지나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1998년 문학과지성사에서였다. 집필 기간 12년, 1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은 이문열의 집필에 대한 고뇌와 애정이 담긴 ‘필생의 역작’이라 불리며 『변경』에 대한 문학적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디지털 포퓰리즘의 첨병들과 가망 없는 진지전을 벌여야 했던 이문열은 그 우울하고 참담했던 봄날, 『변경』의 절판을 결정하게 된다. 그로부터 다시 십여 년이 흘러 이문열은 변경의 재출간을 선언하며 그 출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80년대 없는 오늘을 상상할 수 없듯이 60년대 없는 80년대는 허구일 뿐이다. 나는 처음 80년대의 뿌리를 더듬어 보고 싶어 60년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제 80년대를 다시 시작하려고 보니 절판시킨 『변경』의 60년대를 살려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한 세대를 넘겼으니 80년대 이야기도 지역감정과 이념의 검열에서 자유로울 때가 되었다.” 그렇게 2014년에 두 번째로 민음사 판이 출간되었고, 다시 6년이 흐른 현재 이문열의 모든 책을 알에이치코리아(RHK) 출판사로 옮겨 내게 되면서 『변경』 열두 권도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 2021년 『변경』 완성작을 출간하는 그는 이번 책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마땅히 마지막 결정판에 걸 맞는 추고와 개보가 있어야 하나, 어수선한 세월에 탈기(脫氣)라도 했는지, 이번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내 날이 더 남아 한 번 더 온전히 손 볼 날이 있기를 빌며 여전히 불만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알에이치코리아 『변경』을 다시 세상으로 띄워 보낸다.” 『변경』의 집필을 시작한 지 30여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내놓는 이 책은, 그동안 표현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수정에 수정을 더하고, 사투리 등 어려운 말은 순화해 넣었으며, 한 개 장(章)의 순서를 바꾼 완성의 완성작이다.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격동의 60년대를 살아간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속 이면을 들여다본 거대한 파노라마 이문열이 말하고자 하는 ‘변경’이란 무엇인가.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변경’은 시간적이기보다는 공간적 개념으로 거창하게 말하면 일종의 지정학적 장(場) 이론에 거칠지만 통시적인 제국주의론을 얼버무린 나 나름의 시대 인식 틀이다. 얼핏 보면 정적이고 닫혀 있는 듯하지만 적어도 5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한 세대 우리가 헤쳐 온 세계를 조망하는 데는 매우 유용한 인식 틀일 수도 있다. 그 세월 분단된 이 땅의 남과 북은 각기 아메리카와 소비에트 두 제국의 가장 끄트머리 변경이 되어 두 제국의 이념적 우위를 선전하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전시장으로 기능했다.” ‘변경’의 상황에서 월북을 선택한 아버지, 그리고 남한에 남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족. 그들은 연좌제라는 업보와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기 힘든 고통스러운 삶 속 세 명의 주인공 명훈, 영희, 인철의 이야기가 『변경』에 주효하게 담겨있다. 4.19와 5.16 등 시대적 상황을 조명하는 등 우리 시대의 60년대 정치경제, 사회문화에 내재된 부조리를 엿볼 수 있다. 이문열의 변경은 총 3부로 『1부 불임의 세월』 『2부 시드는 대지』 『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태생부터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던 주인공들의 인생을 통해 부조리한 시대를 읽는, 이문열의 역작 중의 역작 『변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