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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거닐다
숨어 있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책길 34곳
박여진백홍기 사진
마음의숲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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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의 말 4

기억한다는 기적 11
지렁이의 보은 20
날것의 낭만 32
비사벌의 소녀 40
늪지대를 날아서 48
번역가의 산책 57
골목길의 봄 67
아스팔트 위에서 생일을 81
구불구불 찬란한 91
유한한 날들, 무한한 기억 101
벗에게 가는 길 112
의외로운 구역 121
느리게 흐르는 강 133
숙성된 시절 142
산성의 표정 150
소멸에 이르기까지 157
침묵의 호수 167
순간을 기억하는 법 178
적당한 거리 188
틈의 숨결 197
순순한 붕괴 207
낯선 이들의 익숙한 표정 215
옛것의 시간 224
말랑한 비애 231
알아야 보이는 것들 240
숲의 언어 250
불시착의 미학 259
지난 바다로부터 268
포말의 섬 278
매화의 비극 291
눈의 침묵 300
저물고야 마는 저녁 308
기억의 뜸 314
모두의 첫 순간 321

부록 산책길 정보 330

저자 소개 2

번역가이자 에세이 작가다. 옮긴 책으로는 《의미 수업》,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픽사 스토리텔링》 외 수십 권이 있고, 저서로는 《토닥토닥, 숲길》, 《슬슬 거닐다》, 《푸른 소나무의 땅 이야기》 등이 있다. 번역가들의 작업실 ‘번역인’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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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백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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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아야 해서 월간지 기자가 되었고 하고 싶어서 사진가를 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사진회 ‘포토청’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 석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저서로 『토닥토닥, 숲길』이 있고 [아파트 연가]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 활동 및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448g | 135*190*20mm
ISBN13
9791162850930

책 속으로

몇 년 전, 누군가 내게 우포늪에서 어떤 코스를 걷는 게 좋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생태관에서 출발해 대대제방과 사지포제방, 소목마을, 목포제방, 산밖벌을 지나 다시 생태관으로 회귀하는 9.7킬로미터가량의 코스를 추천했었다. 하지만 지금 누가 내게 다시 묻는다면, 천천히 걷다가 마음을 사로잡는 늪 앞에서 지도를 펼쳐 그 늪의 둘레를 오래도록 구석구석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 p.52, 「늪지대를 날아서」 중에서

나는 바다향기로를 걸으며 떠올렸다. 깜깜한 항구 아스팔트 위에 덩그러니 펼쳐져 있던 작고 낡은 텐트와 그 안에 납작하게 누워 생일을 축하하던 우리를. 모래 알갱이처럼 잔뜩 쪼그라들어 ‘싯가’를 확인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라면 세 봉지로 삶의 허기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미미했던 우리를.
--- p.90, 「아스팔트 위에서 생일을」 중에서

“느그들도 참 좋고, 나도 참 좋고, 여 참 좋제?”

할머님의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시처럼 번졌다. 가슴이 분홍색 매화처럼 환해졌다. 2월의 해가 소나무 사이로 옅게 출렁였고 새들이 쉬지 않고 지저귀고 있었다. 문득 먼 훗날 이 순간이, 어느 아름다운 노인이 ‘너희들도 좋고, 나도 좋고, 여기도 좋다’고 시처럼 읊조리던 2월이 우리의 화양연화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00, 「구불구불 찬란한」 중에서

우린 조금 울컥했다. 서로에게 잊히는 건 아무래도 너무 슬펐다. 우리는 멈춰 서서 돌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모반듯하게 정리된 돌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시시한 농담과 특색 없는 식사를 한 오늘이 그냥 이렇게 저물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히려 별것 아닌 날들이 가파르게 요동치는 생의 그래프를 완만하게 이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평범한 날들이, 보통의 우정이, 시시한 농담들이 그토록 애틋하고 소중한 건지도 모른다.
--- p.148, 「숙성된 시절」 중에서

하지만 이제 보기 시작했으니 제주도의 반짝이는 바다와 푸른 마을, 검붉은 밭담을 지날 때마다 그날의 역사가 보일 것이다. 보일 때마다 기억하려 한다. 이 짧고 사소한 추모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더 깊은 바다가, 더 오래된 마을이, 더 아픈 밭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시를 읽게 될 것이다.
--- p.248, 「알아야 보이는 것들」 중에서

말을 참거나 소리를 없앤다고 침묵은 아니다. 발화되지 않은 언어들은 침묵보다는 말에 가까운 지대에 놓인다. 말들이 가득 고여 있는 시끄럽고 어수선한 지대. 내가 원하는 건 그 언어들마저 빈 고요의 공간이다. 말들이 시끄럽게 뒤엉키지 않고 그저 일생처럼 흘러가는 곳.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붙잡을 필요가 없는 곳. 그곳을 침묵이라 믿는다.

--- p.301, 「눈의 침묵」 중에서

출판사 리뷰

▶ 갈 때마다 다른 옷을 입는 신비한 산책길!

‘산책’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일 것이다. 그저 어딘가를 거닐며 부지런히 호흡하고, 시선을 움직이며 밀려드는 상념에 젖어드는 이 이상한 움직임에는 설명할 수 없는 목적이 있다.
저마다 다를 ‘산책의 목적’ 가운데 저자는 끊임없이 길을 걷고, 단상을 옮겨 적는다. 국내 곳곳에 숨어 있는 산책길을 찾아 걸으며 간신히 잡아낸 확신이 있다면, 산책의 목적이 걸어갔던 길의 모양처럼 ‘매 순간 달라졌다’는 것뿐이다.

생각하면 한 번도 같은 길을 걸은 적이 없다. 같은 길이라도 그때마다 날이 달랐고, 바람이 달랐고, 우리가 달랐다. 걷다 보면 걸어온 길이 과거처럼 따라오고, 걸어야 할 길이 미래처럼 이어진다. 곁길과 에움길과 모퉁이와 도린곁이 씨실과 날실처럼 펼쳐져 있다. 우린 길을 잇는 직공처럼 걷는다. 자신이 직공인지도 모르는 이 영문 모를 산책자들은 아무 말과 상념을 흘린다.

그 곁으로 바람이 분다. 더러는 저녁의 감촉과 빛의 뒤척임이 엉겨 붙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말과 저녁과 바람과 빛이 아로새겨진 길의 담요가 만들어져 있다.
_〈저자의 말〉 중에서

내딛는 발걸음을 통해 길을 잇는 것은 곧 상념을 잇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영문 모를 산책자’들은 소박해도 좋고 한없이 거창해도 좋은 것이 산책이라는 마음으로, 길 위를 부유하며 글과 사진을 통해 자신만의 기록을 남긴다. 마치는 산책마다 다르게 길어 올린 상념, ‘길의 담요’라 불리는 이 생경한 무늬가 선물하는 아늑함을 누리기 위함이다. 그 편안하고 따뜻한 사유를 모아 이 한 권의 책에 고이 개켜두었다.


▶ 한두 시간 만에 힐링할 수 있는 알짜배기 산책길!

여행을 마음먹었을 때 사람들은 대개 맛집이나 숙박시설을 1순위로 두지만, 저자들의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산책길’이 1순위다. 폭넓은 산책을 경험하며 새로운 상념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이들은, 자연이 뿜어내는 장엄한 풍광과 여리고 순수한 미물들을 마주하며 몰입한다. 자신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어떤 감정과 외부로부터 흘러드는 시공간의 경험은 뒤섞여, ‘길의 담요’를 짓는 날것의 실타래로 뭉친다.

숲에 살지 않는 내게 이 숨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몸에 편안히 스몄다. 숲의 숨결이 내 코와 폐를 거쳐 온몸을 돌 때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더운 발과 손가락 마디를 스칠 때마다 익숙하고 편안한 품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아파트에 사는데 왜 숲이 편한 걸까?”
문득 백에게 물었다.
“글쎄, 몸에 이로울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인가? 우리 몸은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산소를 들이마셔야 하는데, 숲에는 아무래도 좋은 산소가 많으니까. ”

“그것보다는 우리 몸 어딘가에 숲이 있기 때문일 거야. 숲과 같은 입자가 몸속에 있어서,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 작은 입자들이 숲의 성분을 만나 반가우니까 그런 걸 거야. 나는 숲이야.”
_〈숲의 언어〉 중에서

여행은커녕 문밖으로 나서기도 쉽지 않은 이 시점에, 산책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동네를 거니는 정도로 국한되어 있던 산책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든다. 산책길의 위치와 산책의 소요 시간 등은 물론, 더 폭넓은 산책을 시작해보려는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꿀팁’을 모아 부록으로 수록했다. 새로운 산책길의 발견과 더불어 문장에 고스란히 녹아든 저자의 사유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당신의 든든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 내 발길이 만들어가는 특별한 산책길!

새로운 길의 발견은 단순히 여행 장소를 변경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걸어가는 곳이 곧 길’이라는 명언처럼, 발길 닿는 대로 만들어진 저자만의 ‘산책 코스’가 중간중간 수록되어 있다. 그 길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산책길 못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저자를 유혹한다.

길은 좋은 시처럼 유려하게 이어졌다. 이름 모를 꽃들이 헤픈 웃음처럼 번진 길이 한 행, 돌담이 가지런히 이어진 길이 또 한 행, 오래된 나무와 들판이 또 한 행을 보탰고 이따금 풀벌레와 새 들이 운율을 더했다. 끝도 없이 걸으면 끝도 없이 좋은 시가 이어질 것 같았다.
길에 홀려 한참을 정신없이 걷고 나서야 우리가 굴 입구를 지나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시 되돌아가야 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서는 또 다른 시들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_〈알아야 보이는 것들〉 중에서

여기에 더해 어흘리 소나무 숲, 머체왓숲길 등 최근에야 개방된 산책길에 대한 경험은 기존에 출간된 도서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이야기인 만큼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반전매력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그 의외로운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이 책을 펼치는 것이다.


▶ 나란히 걸어가는, 비로소 완전한 산책길!

번역가인 ‘나’와 사진가인 ‘백’, 그들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산책의 순간들을 기록해 찬란한 결과물을 얻어낸다. 이렇게 저자들이 정성껏 짜낸 길의 담요를 뒤적이다 보면, 그들이 길 위에서 더욱 끈끈한 관계를 다졌음을,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걸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혼자는 자유롭지만 둘은 따뜻하고 든든하다.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관계를 진득하게 이어나가고 싶은 이에게 동행을 권해보자. 좁지만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가 발걸음으로부터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다시 길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리는 사라졌어도 길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걸을 수 있는 길이 아직 남았기에. 미미하고 고독한 우리는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 이 생의 사소한 순간들을 디디며 살아야 하기에.
_〈소멸에 이르기까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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