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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 작품선 1
교회 법규·신앙고백서·교리문답서 7권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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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편역자 서문
일러두기
약어표

베즈의 칼뱅 전기

제네바 교회 설립 시안(Articles de 1537)

제네바 신앙교육서(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1537)

[파렐]의 제네바 신앙고백서(Confession de la foi [de Farel], 1537)

1541년 제네바 교회 법규(Les Ordonnances Ecclesiastiques, 1541)

제네바 교리문답서(Catechismus, 1545)

제네바 콜레주 규정(L’ordre du College de Geneve, 1559)

1561년 제네바 교회 법규(Les Ordonnances Ecclesiastiques de 1561)

저자 소개 2

John Calvin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았던 16세기 종교개혁자요, 종교개혁 사상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해 개신교 신학의 기틀을 다진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 북동부 누아용에서 태어났으며, 독실한 로마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열네 살에 파리로 건너가 라틴어와 수사학 등을 배웠으며, 오를레앙대학과 부르즈대학에서 법학을 수학했다. 그는 여러 곳에서 여러 학자 밑에서 수학하면서 인문주의를 접했고 헬라어와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정확한 일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가 자신의 시편 주석서에서 밝힌 것처럼 “갑작스러운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았던 16세기 종교개혁자요, 종교개혁 사상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해 개신교 신학의 기틀을 다진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 북동부 누아용에서 태어났으며, 독실한 로마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열네 살에 파리로 건너가 라틴어와 수사학 등을 배웠으며, 오를레앙대학과 부르즈대학에서 법학을 수학했다. 그는 여러 곳에서 여러 학자 밑에서 수학하면서 인문주의를 접했고 헬라어와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정확한 일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가 자신의 시편 주석서에서 밝힌 것처럼 “갑작스러운 회심”을 경험하게 된다.
종교적 갈등으로 혼란이 가중되던 당시 프랑스 정황 속에서 쫓겨 다니던 칼뱅은 1535년 마침내 스위스 바젤로 피신했다. 그는 거기서 교회 개혁에 동참하는 신자들에게 기독교 진리를 바르게 알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경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동시에 당시 프랑스에서 박해받고 있던 신교도들의 신앙을 옹호하고자 《기독교 강요》를 썼다. 이 책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개혁하고 진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독교 핵심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1536년 라틴어 초판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1559년에 방대한 결정판에 이르기까지 증보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칼뱅이 직접 번역한 프랑스어판을 비롯해 다양한 언어로 세상에 퍼져 나갔다.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그의 기독교 해석과, 그가 1564년 5월 27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네바에 머물며 그곳을 개혁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 및 사회적 틀들은 유럽과 북미 전역의 개신교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서 칼뱅주의 개신교는 현대 세계를 형성하는 데도 크게 작용했다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장 칼뱅의 다른 상품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 IPT(Institut Protestant Theologie)에서 신학 석사(M. en theologie), 파리 10대학에서 박사과정 수료(DEA), 파리 4대학에서 역사학 박사(D. en histoire)를 취득했다. 오랫동안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퇴임하였다. 저서로는 『칼뱅의 자유사상』, 『자끄 엘륄의 생애와 사상』 등이 있고, 칼뱅 작품 선집을 비롯하여 주로 칼뱅 원전을 번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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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153*224*30mm
ISBN13
9788960926691

출판사 리뷰

편역자 서문 중에서

1990년대 초부터 진행해 온 편역자의 칼뱅 한국어화 작업은 다음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하나는 한국 장로교회의 영적 뿌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고전 인물의 한국어 텍스트가 총서로 묶여 도서관 및 관련된 개인/단체 서재에 꽂혀 있어 활용되어야 할 당위성이다.

활용이라 함은 일례로 논쟁이 되는 사건(세르베투스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을 텍스트로 확인해 보는 일이며, 나아가 2차 자료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지적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칼뱅, 나아가 동아시아의 칼뱅의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는 소망이다. 번역의 정확성도 여전히 미흡한데다, 아직 아무 결과물도 내놓지 못한 채 거창한 주제를 언급하는 것이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이지만, 이것이 편역자가 지금껏 시도해 온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의 궁극 목적이다.

첫째 목적은 텍스트의 분량과 정확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 분량으로 말하면 전집이 아니기에 추가되어야 할 문서들이 더 있을 수 있지만 주요 소품들은 모두 갖춰졌다. 16세기 용어의 정확성은 지속적으로 확인될 필요가 있다. 소품의 내용 확인에 목적을 두었던 편역자에게는 중세와 근대를 아우르는 유럽의 정치와 법을 아우르는 제도사까지 연구할 여력이 없었다.

둘째 목적의 성취 여부는 방법론에 달려 있다. 칼뱅의 『서간집』 1권과 『기독교 강요』(1541) 프랑스어 초판이 청년 칼뱅을 통해 개혁신학의 태동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 칼뱅의 생애를 관통하는 본 소품집은 제네바의 개혁교회와 신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얼마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기독교 강요』 최종판은 당연히 이 과정의 결과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제네바 개혁신학은 유럽과 신대륙으로 이동하는 동안 모판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또한 각 현장의 수용 과정에서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 세계에서 역사적 개혁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며, 비 서양 세계의 다른 토양에서 개혁교회와 신학을 수용하고 확장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로서는 토론만을 양산시킬 뿐인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정당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일이다. 그래도 질문은 계속된다. 제네바 개혁자가 전기 칼뱅과 후기 칼뱅으로 나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소품집에서 칼뱅의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답을 얻으려면 직접 읽어 보는 수밖에 없다.

베즈의 칼뱅 전기 중에서

그는 54년 10개월 17일을 살았고 절반을 거룩한 복음 사역으로 보냈다. 그는 보통 키에 약간 창백하고 거무스름한 안색과 죽을 때까지 맑았던 눈을 가졌고 총명을 타고났다는 말을 들었다. 옷차림은 세련되지도 남루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절제라는 말이 어울렸다. 식사도 절식했으며 허접이나 향락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그는 매우 적게 먹었는데, 많은 햇수 동안 약한 위장 때문에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잠은 거의 자지 않았고 기억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여서 그가 한 번 본 사람은 많은 해가 지난 후에도 즉각 알아보았으며, 구술 도중 종종 몇 시간 동안 혼란이 생길 경우, 알려 주지 않아도 이내 받아쓰던 곳으로 돌아올 정도였다.

또한 자신의 소임 때문에 알아 두어야 할 중대한 것은, 아무리 무한히 많은 업무로 압박을 받아도 결코 잊지 않았다. 판단력은 상담 내용이 무엇이든 맑고 정확해 거의 예언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의 충고를 따른 사람이 방황한 기억이 없다. 그는 말솜씨를 경멸했고 말을 적게 했으나 결코 부적합한 작가는 아니었다. 이날까지 어떤 신학자도 (시샘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 더 맑게, 더 무게 있게, 더 통찰력 있게 글을 쓰지 못했다.

그가 우리 시대나 교부 시대의 누구보다 더 많은 문헌을 작성했음에도 말이다. 그는 이것을 젊은 날의 주야독경과 받아쓰기의 훈련으로 굳어진 예리한 판단력으로 이뤄냈는데, 그리하여 그에게는 언제나 적합하고 신중하게 표현한 뭔가가 없지 않았으며,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이 많이 다르지 않았다. 교리로 말하면 그는 그가 처음에 전했던 것을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고 한결같았는데, 우리 문헌 속에서 이랬던 신학자는 드물었다. 그의 품행에 대해 말하자면, 비록 천성이 그를 신중하게 만들었지만, 공동생활에 있어서 그보다 더 유쾌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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