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그렇게 밥 짓는 사람이 된다
( 시골에서 ) 꽃게탕과 할배들 나의 첫 부엌 이야기 진짜, 나의 첫 부엌 이야기 대파 두 단을 다듬으며 이상한 팬트리의 가시오가피 몰래 온 손님 한여름의 오이지 우리는 한 그릇 식사를 좋아해 카스텔라 경단을 만든 날 도서관과 외식 규칙 글쓰기와 요리 두부와 만두의 날들 시골에서 네 살을 더 먹었다 이삿짐을 꾸리며 1 이삿짐을 꾸리며 2 ( 도시에서 ) 꽃을 파는 마트 NYPD에게 아침을 대접하다 가만가만 살살 어제의 김밥 덕선이들은 물에 말아 먹지 봄의 콩깍지 살찌지 말기로 해 초록 괴물의 역습 공포의 라구 소스 1 공포의 라구 소스 2 엄마를 위한 잡채 끼니를 말할 때 내가 떠올리는 것 에필로그 이것이 나의 레시피 |
김자혜의 다른 상품
|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텅 빈 냉장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아직 저장할 이름도 얻지 못한 빈 문서를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커서가 깜박인다. 뭐라도 써봐. 냉장고가 삑삑거린다. 꺼낼 거 없으면 거 문 좀 닫지 그래? 눈앞이 캄캄하다. 속수무책이 되어버린 내 마음속에서도 알림이 울린다. 이봐 정신 차려! 뭐라도 사다가 채우고 만들어야 먹고살 것 아냐! 깜박깜박, 삑삑!!!
--- p.37, 「대파 두 단을 다듬으며」 중에서 음식의 양뿐 아니라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단백질이 충분한가? 탄수화물과 지방은? 비타민, 무기질, 칼슘은? 완전히 날것의 상태에서부터 출발한 재료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생각한다. 조리하지 않은 채소, 해물, 고기 등 가공되지 않은 재료의 비율을 따져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식사를 직접 준비하는 일의 핵심이라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 p.58-89, 「우리는 한 그릇 식사를 좋아해」 중에서 나는 이곳에서 세끼 밥을 직접 지어 먹는 사람, 꽃과 나무를 가꾸는 사람, 마당의 열매를 거두어 멀리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사람, 자연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도시에서 막연히 꿈꾸던 자연은 고요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자연은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한없이 넓은 아량으로 품어줄 것 같다가도 악악거리며 바람이며 폭우며 번개며 지진 같은 것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밤이면 집에 틀어박혀 산짐승처럼 오들오들 떨면서 앞으로 착하게 살겠다고 기도했다. --- p.89, 「시골에서 네 살을 더 먹었다」 중에서 도시로 돌아온 뒤 식재료 쇼핑에 관하여 길을 잃은 기분이 되었다. 어쩐다. 먼저 집 근처 창고형 마트에 갔다. 베개만 한 고기 덩어리, 우리 집 식탁만 한 피자를 파는 거대한 세계였다. 몇 년 만에 돈의 냄새를 맡고 흥분한 나는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열정적으로 구경하다가 연어초밥 한 접시를 사 들고 나왔다. 말이 한 접시지, 밥이 두 덩이씩 들어 있는 초대형 초밥이 열세 개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길에 심한 멀미를 했다. --- p.113, 「꽃을 파는 마트」 중에서 음식을 남기지 않는 건 매우 기쁜 일이다. 그보다 더 기쁜 건 재료를 싹 해치우는 일이고. 2,000원짜리 달래 한 봉지를 사다가 깨끗하게 다듬어 속눈썹 길이로 썬 뒤 물과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통깨만 넣어 달래장을 만들고, 잡곡밥에 반숙으로 부친 달걀 두 개 얹은 뒤 넣고 슥슥 비벼 먹는다. 남은 달래장은 큐브치즈만 한 크기로 자른 두부 위에 얹어 야식으로 먹고, 그렇게 먹고도 버릴까 말까 고민될 만큼 자박자박 남았다면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 날 꺼내 바삭한 김에 갓 지은 밥을 둘둘 싸서 찍어 먹으면 된다는 것. 그런 걸 배웠다. --- p.134, 「어제의 김밥」 중에서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먹고 싸던 시절이 있고, 그 시절을 지켜준 사람이 있다. 먹이고 등을 두드리고 배설물을 대신 처리하고 그중 어느 것이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른 날엔 전전긍긍하던 사람. 집에서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은 자라나는 동안 자신을 먹인 사람을 생각해보게 하는 일이다. 먹이는 자의 일상을 헤아려보는 일이다. 열심히 저녁을 만들어 한 상 차리고 마침내 식구들이 둘러앉았을 때, 엄마는 왜 자주 입맛을 잃은 표정이었는지. 뾰로통한 사춘기 딸들과 무심한 남편에게 왜 자꾸만 짜냐고 안 짜냐고 맛있냐고 맛이 없냐고 물어보았는지. --- p.177-178, 「끼니를 말할 때 내가 떠올리는 것」 중에서 |
|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 자기 자신을 굶주림에서 구조하는
영웅들이 사는 세계, 부엌 이 책은 ‘시골에서’와 ‘도시에서’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패션지 에디터로 오래 근무해온 김자혜 작가는 어느 날 불현듯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부근의 시골 마을로 내려간다. 1부 ‘시골에서’에는 지리산으로 내려가 살기 위한 준비 과정을 담은 전작 『조금은 달라도 충분히 행복하게』 이후 펼쳐지는 진짜 삶이 담겼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부엌의 탄생’을 알리는 시초가 되었다. 이유식을 먹던 아주 오래전으로부터 줄곧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자라났고, 어른이 되어서는 전화 한 통, 아니 터치 한 번으로 문 앞까지 도착하는 세계 각국의 음식 덕분에 삼시세끼를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불철주야 바쁘게 일하며, 세계 각국으로 출장을 떠나는 일도 많은 패션지 에디터의 삶에서 배달 음식이란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의 식사였으니까. 그러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가까운 치킨집은 차로 25분 거리, 배달은 꿈도 꿀 수 없는 곳. 동네 마트는 저녁 8시면 문을 닫고, 편의점이라고는 치킨집보다 더 멀리 위치한 어느 리조트 1층에 있는 곳이 전부인, 깊고 깜깜하고 조용한 산골 마을. 식재료는 대체로 읍내 마트나 근처 오일장에서 구입해야 했고, 가끔 차를 타고 40분을 달려서 근처 시내로 나가는 날에는 고기나 생선, 치즈나 버터, 양식 소스 등을 사 왔다. 샴푸, 휴지, 세안제 같은 공산품도 이때 함께 구입하는 등 상황에 맞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노하우도 점점 쌓였다. 저자는 시골에 내려가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현지인의 텃세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아슬아슬한 통장 잔고도 아닌, 끼니”였다고 설명한다. 직접 부엌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당의 잡초를 뽑고, 이웃 할머니들이 집 앞에 놓고 간 참나물을 무치거나 감자를 쪄 먹기도 하고, 파와 마늘 같은 기본 재료들을 손질하고 소분하여 냉장고에 넣어두는 ‘부지런한’ 삶이 시작되면서, 역설적으로 ‘여유로운’ 식사가 가능해졌다. 우당당탕 어설프지만 진짜 나의 부엌이 된 공간은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더욱 주도적으로 살아갈 원동력이 되었다. 단지 거주 공간이 바뀌었을 뿐인데 삶에 대한 태도가 변한 것이다. 2부 ‘도시에서’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년간의 시골살이를 마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서의 생활을 담고 있다. 삶은 다시 바쁘고 촘촘해졌지만 더 이상 부엌에서 헤매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남에게 묻지 않는다. 나의 한 끼를 위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대충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의식적으로 끼니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시골살이에서 몸에 익힌 그대로 고스란히 도시에서도 이어진다. 여전히 “혼비백산과 허둥지둥의 반복”이지만 그럼에도 부엌이 있는 삶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충만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가령 커다란 “가을무 한 덩이가 나의 냉장고에 머물며 조금씩 작아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일이란 근사한 경험이 되었다. “하나의 무가 깍두기 한 통과 소고기뭇국 두 그릇과 어묵탕 한 냄비, 그리고 메밀국수에 올리는 무즙으로 변신하는 모든 과정을 목격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조금씩 늘어나고, 미처 먹지 못하고 상해 버리는 음식을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일평생 손에 물 마를 날 없었을 이 땅의 모든 엄마를 생각한다.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그런 말들로 딸들을 적극적으로 부엌에 들이지 않았던 엄마.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식구를 먹이던 엄마가 육십이 넘어서야 겨우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아빠의 식사를 걱정하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가정. 우리가 그동안 무수히 먹어온 평범하지만 따뜻한 집밥은 고강도 노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직접 밥을 차려 먹는 사람이 되어서야 뒤늦게 깨달아간다. 작가가 시골에서 내려가 지냈던 과거에도, 그리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 바쁜 일상을 이어가게 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 내내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만의 부엌이 탄생했다는 것일 테다. 이제는 부엌 안의 살림살이 규모와 냉장고 안의 식재료 상황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면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주체적인 끼니를 해결해나가는 기쁨을 이 책은 온전히 담고 있다. 무력감과 외로움, 피로와 분노, 그리고 사랑과 자부심… 부엌에서 성실하게 쌓여가는 ‘오늘 배운 것’ 그렇게 별안간 부엌에 ‘내던져진’ 사람에서, 생존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여전히 서툴지만 그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매일매일 ‘부엌에서 배운 것’이 쌓여간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마다 정리된 한 줄 요약은 이 책만의 독서 포인트. 그것은 두꺼운 요리책에서나 볼 수 있는 비법도 아니고, 유명한 요리 연구가의 비책도 아니며, 엄마의 잔소리 섞인 가르침도 아니고, 온전히 스스로 탄생시킨 빛나는 부엌에서 스스로 깨우쳐 몸에 익힌 생활 속 작은 교훈이다. 그리고 비단 요리뿐만 아니라 인생에 적용시켜도 무리 없이 읽히는 것들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랩이고 물안경이고 다 소용없다. 파를 썰 때는 광광 우는 수밖에. ● 다 못 먹은 채소는 절이자. 어떻게든 되겠지. ●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무턱대고 만들어보자. 오늘처럼! ● 변덕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 아침에 단백질을 꼭 먹자. 달걀, 달걀! ● 무의 흰 부분과 초록 부분을 구분해서 사용할 것. ● 시금치는 끓는 물에 넣고 휘휘 젓고 바로 건질 것. 다시 끓어오르면 이미 늦었다. ● 밥 먹고 최소 두 시간 뒤에 운동하자. 험한 꼴 보지 않으려면. ● 싸준다면 군말 없이 싸 오자. 싸 왔다면 남김없이 먹자. ● 구구절절 생색을 내자. 우쭐거리자. 어쩐지 웃음이 나는 문장도 있고, 수첩에 적어두고 싶은 문장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모인 ‘오늘 부엌에서 배운 것’의 가장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 무수히 실패하자. 그리고 다시 시도하자.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어색하고 서툴러도 계속 하다보면 조금씩 발전이 있다. 그렇게 탄생한 부엌에서 우리의 삶도 다시 태어난다.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